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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Jul 16. 2024

본짓과 딴짓

니르 이얄

유튜브에서 우연히 니르 이얄(Nir Eyal)과 어느 유튜버와의 인터뷰 동영상을 봤다. 


니르 이얄은 Indistractable: How to Control Your Attention and Choose Your Life 라는 책을 쓴 저자라고 했다. 검색해 봤더니 우리나라에서도 '초집중'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나와 있었다.


좋은 소설을 줄거리 요약본으로 읽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이런 자기계발서 같은 경우에는 - 니르 이얄은 자기 책이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것을 싫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다 - 굳이 책 전체를 다 읽을 필요가 없다. 핵심만 알면 되고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이다.


니르 이얄은 Digital Detox, Digital Minimalism 같은 주장에 회의적이다. 인터넷, 숏폼, 스마트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숏폼에 중독되어서 일에 집중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하기 싫어서 숏폼을 보게 된다는 것이 니르 이얄 주장의 핵심이다. 나는 그 주장에 100% 동감한다.


니르 이얄은 사람의 뇌는 재미를 추구하는 쪽으로 진화가 된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해결하거나 피하는 쪽으로 진화되었다고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불편하니까 그 불편함이 싫어서 딴짓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distraction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dis는 반대라는 의미를 만드는 접두사다. 따라서 distraction과 반대되는 단어는 traction이다. traction은 뭔가를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끌어 당길 때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향하여' 끌어 당기는 것이다. 그 무엇은 '되고 싶은 나'이다. 되고 싶은 나는, '날씬한 몸을 가진 나'가 될 수도 있고 '돈이 많은 나'가 될 수도 있고 '책을 많이 읽는 나'가 될 수도 있고 '유명한 나'가 될 수도 있다.


그 되고 싶은 나를 향하여 끌어당기는 행동은 '본짓(traction)'이고, 멀어지게 하는 행동은 '딴짓(distraction)'이다.


따라서 어떤 행동이 본짓인지, 딴짓인지를 구별하려면 우선 '되고 싶은 나'가 있어야 한다. 되고 싶은 나로 이끄는 행동은 본짓이 되고 되고 싶은 나로부터 멀게 만드는 행동은 딴짓이 된다. 


나는 몇 달 전부터 생산활동에 쓴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도대체 눈을 뜨고 자는 동안에 몇시간 동안 일을 하는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주 적합한 앱이 있었다. Simple Time Tracker라는 앱이다. 간단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든 기능을 갖추었다. 


처음에는 생산활동을 '수임사건, 투자공부, 운동, 책쓰기'로 나누었다. 수임사건 관련 일을 할 때는 그 앱의 타이머 버튼을 누르면 초시계가 진행된다. 일이 끝나면 다시 타이머 버튼을 누른다. 운동을 시작할 때, 끝날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면 그 날 하루 동안 수임사건에 몇시간 몇 분을 썼는지, 몇시간 동안 운동을 했는지가 섹션별로 기록이 된다. 타이머 버튼을 누르는 일을 종종 잊어버리는데 그래도 걱정없다. 타이머의 시작시간과 종료시간을 수동으로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산활동을 기록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투자공부 때문이었다. 투자는 너무나 막연한 분야이고,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분야였다. 돈을 굴려서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그러나 계속하여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다 보니까 은행에 예금을 넣어 놓는 것은 그냥 앉아서 돈을 까먹고 있다는 것과 똑같다는 자책이 들었다. 그래서 은행예금을 idle money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은 양(量)이 질(質)을 변화시킨다는 원리에 입각하여 투자공부에 시간을 많이 쏟아붓기로 하고 그 시간을 기록하기로 한 것이었는데 운동도 중요하니까 운동을 하는 시간도 기록하기로 하고 수임사건 일도 생산활동임이 명백하므로 그 시간도 기록하고, 책을 꼭 써야 하므로 책쓰기도 생산활동에 넣다보니까 생산활동 섹션이 복잡해졌다.


이렇게 세분화시키는 것은 뭐든지 좋지 않다. 블로그를 만들 때도 메뉴를 세분화시켜 여러 개 만드는 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결국 생산활동을 '수임사건, 투자공부, 운동, 책쓰기'의 네가지 섹션으로 나누어서 기록하던 것을 포기하고 위 4가지 활동 중 한가지를 하면 그것을 생산활동이라고 보고, 즉 4가지 섹션을 1개로 통폐합하여 생산활동에 쓴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생산시간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시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이 미쳤다. 출퇴근 시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운동 후 샤워하는 시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것도 생산시간에 포함된다면 잠자는 시간, 밥먹는 시간도 다 포함해야 하는데 이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책을 읽는 시간은 생산활동에 포함되는 시간이 되는 것인가. 예를 들면 아주 훌륭한 소설을 읽은 경우에 이것은 생산활동 중 책쓰기에 어떻게든 기여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책을 읽는 시간도 글쓰기 섹션에 포함되어야 하는 걸까?


그렇게 따지다 보니까 오히려 허비하는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더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허비하는 시간은  경계가 분명하였다. 멍하게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를 보는 시간, 친구들하고 잡담을 하면서 술을 마시는 시간 등등


그렇지만 일을 하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하고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쉬어야 한다. 몸이 지치면 쉬어야 하듯이 뇌도 쉬어야 다시 작동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텔레비전을 보거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시간도 생산활동과 관련되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니르 이얄은 이런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준다. 틱톡을 보든, 텔레비전을 보든, 술을 마시든, 그것이 원래 그 날의 일정에서 계획되어 있었던 일이라면 '본짓'이 되는 것이고, 좋은 책을 읽더라도 원래 그 날의 일정에 없었던 일이라면 '딴짓'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릎을 쳤다. 


본짓과 생산활동은 정확히 같은 개념은 아니지만 내가 지향해야 할 바는 하루를 '본짓'으로 꽉 채우는 일이었다. 잠자는 것, 양치질하는 것, 먹는 것, 쉬는 것도 모두 본짓에 속한다. 원래 계획에 없었던 일을 하는 것이라면 그 내용이 무엇이든 딴짓에 속한다.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계획이나 일정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는 예외다.


사실 니르 이얄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본짓과 딴짓을 구별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딴짓을 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강의의 핵심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딴짓을 하는 이유는, 지금 하고 본짓이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편한 감정의 내용은 다양하다.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고, 분노 때문일 수도 있고, 지루함 때문일 수도 있다. 


시험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수험생이 오히려 딴짓을 더 많이 하는 이유는, 시험 실패에 대한 두려운 감정 때문이다.


돈 버는 일과 관계되는 모든 일은 불편한 감정을 준다.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운 감정이 생긴다.


나는 유튜브에서 과학강의 동영상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호기심 때문이다. 그러나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아도 괜찮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막상 그 과학강의를 다 듣고 난 다음에 그 강의 내용에 대하여 시험을 봐야 하고 그 시험에 나쁜 성적을 얻었을 때는 심각한 불이익을 입게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과학강의 동영상을 보는 일이 싫어질 것 같다. 그래서 그 강의 동영상 보기를 피하게 될 것이고 본다고 해도 계속 다른 생각이 들 것이다.


니르 이얄은 distraction이 생길 때는 어떤 감정이 distraction을 유발하였는지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라고 한다. 자기의 감정을 찬찬히 살피고 분석하고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노력을 하라고 한다. 우선, 감정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 이 감정에 대한 관리 방법 중 하나는 명상의 일종인 수용과 전념 치료 ACT(Acceptance & Commitment Therapy)가 될 것 같다. (나는 이전에 수용과 전념 치료에 관한 책을 읽고 그 책을 정리한 독후감을 브런치 스토리에 쓴 적이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일이 결국 고통을 관리하는 일(pain management)라고 했다. 달리 말하면 자기 감정을 콘트롤 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정확하게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경험에 의할 때도 그렇다. 재미있는 일을 할 때는 인터넷, 유튜브, 스마트폰 생각이 전혀 나질 않는다. 뭔가 잘 풀리지 않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유달리 딴짓을 하고 싶고, 그 딴짓에 빠지는 순간 본짓으로 돌아가기 싫어진다. 


니르 이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4가지 step을 제시하고 있지만 나는 그런 해결방안을 믿지 않는다.


수많은 다이어트 방법이 나와 있지만 결국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체질상 많이 먹지 않는 말라깽이 스타일 말고는, 적게 먹는 일이 기본적으로 힘들다. 일시적으로 체중을 뺄 수는 있지만 때로는 1년 이내에 또는 몇 년 이내에 지난 수십년 동안 유지해오던 자기 체중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은 모두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distraction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니르 이얄이 말하는 4가지 스텝을 적용해서 손쉽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현실세상에서 비법이나 묘약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집중력이 떨어지는 이유를 찾은 것만 해도 큰 의미는 있다. 니르 이얄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그의 이론이 믿겨진다.


어제 브런치 스토리 사이트에 오래간만에 들어갔다가 좋은 연재물을 봤다. 제목이 '성공의 비밀? 그들이 관리한 건 감정이야' (by 정헌) 라고 되어 있다.  그 글의 주제는 '감정 관리'다. 니르 이얄이 말하는 pain management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빨리 그 분의 글 전체를 읽고 싶지만 아쉽게도 일주일에 한 번씩만 연재물이 올라온단다. 


니르 이얄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면서 많은 부분이 정리됐다. 이제는 나는 생산시간을 기록하지 않고 Distraction 한 시간을 기록할 것이다. Distraction은 그 날 아침에 To do list에 '오늘 할 일'로 입력해 놓지 않은 활동을 하는 것이다.  


끝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되고싶은 나'가 없다면 노력할 일도 없다. 어떻게 보면 편하다. 날씬한 나를 원할 때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고,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할 때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되고싶은 나가 없으면 사는 일이 한없이 지루해진다. 내 절친한 친구 A는 점심식사를 한 후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 "아, 오늘 하루는 무슨 낙으로 사나"


이 친구는 먹는 것이 낙이었고 그 낙을 써버리는 순간, 남아 있는 긴 오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한숨이 나왔던 것이다.


먹는 것, 쇼핑, 섹스, 도박, 마약처럼 즉각 도파민이 나오는 일을 매일, 1년 내내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행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또한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부작용은 엄청나다.


그래서 비록 늙은이가 됐다고 해도, '되고 싶은 나'가 있는 게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야 시간을 덜 지루하게, 나아가서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 사형집행날짜가 오는 것을 두려워 하면서 (어차피 오게 되어 있는데) 매일을 무력하게 살아가는 죄수처럼 살 수는 없다. 사형집행 직전까지도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면서 - 객관적으로는 아무 의미없는 일이라도 -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는게 덜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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