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메모(872)
제목 : 고잉 인피니트(Going Infinite)
저자 :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
출판연도 : 원서 - 2023 / 번역서- 2024
우리나라에 권도형이 있다면 미국에는 샘 뱅크먼 프리드(Sam Bankman-Fried)가 있다.
서른살의 나이에(1992년생)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 순위 60위(35조의 자산가)까지 올라 갔다가 하루 아침에 파산하고 사기죄 등으로 기소되어 작년에 재판을 받았다. 기소된 8개의 죄목에 대하여 모두 유죄평결을 받았고 판사는 징역 25년을 선고하였다. 현재 항소심 재판 중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SBF(샘 뱅크먼 프리드는 미국에서 이렇게 약자로 불렸다)를 몰랐다. 이 책을 사게 된 이유는, 후배에게 교보문고 상품권 선물을 받았고 잔액이 남았기에 무엇인가를 사야했는데 마이클 루이스의 신간이 나왔다는 광고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마이클 루이스가 쓴 책이라면 믿음이 간다. 그는 소설 기법을 사용하여 논픽션을 쓴다. 그의 책 중에는 영화로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Money Ball이다. 그 외 Blind Side, Big Short도 있다.
마이클 루이스의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원제 : The Undoing Project)'는 대단한 책이었다. 이런 책은 국민 필독 도서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루이스의 이름만 믿고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채 샀지만 역시 재미 있었다.
SBF는 천재다. 천재인지 여부가 뚜렷이 입증되는 분야는 수학이다. 검증이 쉽기 때문이다.
SBF의 부모는 두사람 모두 스탠포드 대학교 로스쿨의 교수다. SBF는 외톨이로 성장기를 보냈지만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냥 자기 또래의 아이들을 한심하게 여겼을 뿐이다. SBF는 8살 때쯤의 어린 나이에 산타클로스를 정말 믿는 (일부) 아이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하느님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일부)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 놀란다.
SBF는 MIT에 입학하여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하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원래부터 아니었고 물리학에도 흥미를 그다지 느끼지 못하였다.
졸업 후에는 Jane Street Capital 이라는 Trading Company에 들어갔다. 프랍 트레이딩(proprietary trading, 자기계좌거래, 고유계정거래)을 하는 회사다. 즉 고객의 돈을 위탁받아서 운용하여 불려주는 IB(Investment Bank)가 아니라 자기자본으로 거래(투자)를 하여서 수익을 내는 회사다.
자기자본으로 거래하는 것이므로 고객의 돈으로 투자하는 것과는 달리 규제가 없다. 따라서 위험한 투기적 거래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회사는 수학 천재를 뽑는다. 수학 천재는 주식 등 거래대상 자산에 미치는 모든 요소를 변수로 하는 컴퓨터 거래 프로그램(알고리즘 매매)을 코딩한다.
얼마 전에 미국의 고용지표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아시아 각국의 주가가 하루 사이에 10% 가까이 폭락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것도 거래 프로그램의 영향이 크다. 고용지표도 변수 중 하나로 입력해 놓았는데 고용지표가 나쁘다고 하자 프로그램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에 대해서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준다. 신기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다.
예를들면 선거결과가 주가에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른 금융회사들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 금융회사들은 출구조사 결과를 뉴스보도에서 확인하고 프로그램 매매를 한다.
현지 출구조사의 결과가 뉴스에 보도되는데는 단 몇 초라도 시간지연이 있을 수밖에 없다. Jane Street Capital은 아예 직원을 개표소에 파견하여 즉시 보고하도록 하고 이렇게 뉴스보다도 몇 초를 앞서서 정보를 취득한 후 다른 금융회사보다 발 빠르게 거래를 한다.
SBF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커지면 주가가 하락하고,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커지면 주가가 상승하는 추세가 있음을 간파하고 남들보다 앞서서 출구조사 자료를 입수한 후 거래를 하였다.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이 유력하게 되는 순간 오히려 주가가 상승을 하는 바람에 Jane Street Capital 은 무려 30억 달러의 손실을 입게 되었다. (그러나 회사로부터 아무런 책임추궁도 당하지 않았다. 결정과정에서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금융회사의 매매 프로그램이나 그 운용자의 약점, 허점을 분석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일종의 아비트라지(arbitrage, 무위험 차익 거래)로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천재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SBF는 어느날 암호화폐에 대하여 눈뜨게 되었다. Jane Street Capital를 사직하고 퇴직금으로 Alameda Research를 설립하고 암호화폐를 주요 거래대상물로 하여 본격적으로 프랍 트레이딩을 한다.
여기서도 arbitrage 거래를 찾아내서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되는데 초반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이 한국시장이다. 한국에서의 비트코인 가격이 미국에서보다 약 20%나 비싼 점을 이용하였던 것이다. 남이 좋다고 하면 미친듯이 몰려가는 우리나라 사람의 특성에 힘입어 한 때 비트코인의 가격은 한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비쌌다.
이후 SBF는 FTX라는 가상화폐 선물 거래소를 설립하였다. 승승장구하면서 단숨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셀렙(Celebrity)이 되었다.
그러나 암호화폐 가치가 폭락하면서 FTX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 때 밝혀진 놀라운 사실은 수십조원에 달하는 고객의 예탁금을 SBF가 자신의 회사인 Alameda Research로 옮겨서 각종 투자자금으로 마구 썼다는 것이다.
마이클 루이스는 SBF에 대하여 취재할 때 호의적인 입장에서 접근하였다. SBF의 독특한 성격에 그는 매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SBF는 약간 자폐증이 있고 극도의 주의산만형이다. 화상 인터뷰를 할 때 그는 무릎 위에는 게임기를 갖다 놓고 게임을 하면서 한다.
SBF는 이른바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의 신봉자였다. 효율적 이타주의는 어떤 선행이 이 세상에 가장 유익할지를 과학적 방법을 통해 판단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사상으로서 호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주창했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추종했다.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어서 그 돈으로 기후위기 등을 해결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상상이상으로 많이 벌어야 할 것 아닌가. 실제 SBF는 개인적 사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늘 반바지에 늘어진 흰양말을 신고 다녔고 사무실 한구석에 Bean Bag 소파를 갖다두고 거기에서 잤다.
그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관리능력이 아예 없었다는 점이다. 본인은 직책이라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FTX는 엄청난 규모의 사업을 하면서도 회사의 조직도조차 없었다.
암호화폐 가치가 한 때 폭락하면서 고객들은 자기들의 돈을 찾으려고 FTX에 몰려 왔고 그 때 고객들의 돈을 돌려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SBF가 고객들의 예탁금을 알라메다 리서치로 옮겨 놓고 개인 목적의 투자로 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인 마이클 루이스는 암호화폐 가치가 올라가면 모든 고객들의 돈을 돌려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듯 하다. 일각에서는 SBF를 그 유명한 폰지 사기꾼인 버나드 메이도프와 비교하지만 마이클 루이스는 메이도프와 SBF는 전혀 다른 케이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SBF나 메이도프나 모두 유대인들이다. 흑인들이 타고난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듯이 유대인들은 확실히 머리가 좋은 듯하다.
SBF는 결코 교활한 사기꾼은 아니다. 또한 그는 돈으로 사치를 누리거나 여자를 탐한 적도 없다. 그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나쁜 놈인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에게는 공감능력이 없었다. 책임감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SBF가 자폐증을 앓고 있으니 형을 정할 때 참작해달라고 읍소하기도 했다.
머리 좋은 천재가 공감능력이 없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또 하나의 사례를 이 책을 통하여 관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