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수사관

옛추억

by N 변호사

[2003-05-14 오전 11:49:38]


199*년 *월에 저는 충무지청(지금은 충무가 통영으로 이름이 회복되어 통영지청으로 바뀌었음)으로 발령받았습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검사로 임관되면 대도시에서 초임검사 생활을 2년 내지 2년 6개월 동안 하고 난 다음에 검사들이 한, 두 명 내지 서,너 명 있는 조그만 시골지청으로 내려가서 1년 내지 1년 6개월간을 근무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초임 검사 생활을 마치고 한가한 시골지청으로 갈 때 모두 희희낙낙합니다.


평생을 시골에서 살라고 하면야 싫어할 사람도 있겠지만 젊은 초임검사 때라 아이들도 보통 갓난 아기나 두, 세살 밖에 안되었을 때이므로 학교 부담도 없고 하여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시골에 가서 유유자적하게 1년 남짓 근무하게 되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지요.


통영지청은 초임검사가 의무적으로 가게 되어 있는 지청 근무 중 선호도가 거의 1순위 였지요.


통영 및 거제도의 경치가 빼어나고, 지청들 중에서는 지청장을 제외하고 검사가 4명 근무하는 비교적 큰 편이고(혼자 근무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주말 당직을 도맡아 하여야 하므로 부담이 매우 큽니다.) 또 속된 말로 통영 지청장 자리는 잘 나가는 사람들이 오는 보직이므로,


빽이라는 것이 달리 다른 연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가 모신 상사가 잘 되느냐, 못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을 고려할 때 선호도가 높을 수 밖에 없었지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저는 운 좋게 통영지청으로 발령받았습니다. 사실, 나는 검사 시절에 운이 참 좋았습니다. 항상 검사장이나 부장으로 모시던 분들이 유능한 분들이어서 그분들이 출세가도를 달렸고, 그 분들에게 제가 잘 보였는지 저를 많이 끌어 주셨지요.


통영지청으로 발령을 받은 첫날, 우리 방에 배속된 계장(통칭은 수사관이라고 부르나 정확한 의미를 따지자면 수사관은 국가공무원법상 5급인 사무관 승진 시험에 합격한 사람부터 그렇게 부르고 검사실에서 일하면서 검사를 보조하여 수사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6급 또는 7급 공무원으로서 계장이라고 부릅니다.)을 보니 인상이 고약하였습니다.


조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그 사람 앞에 오면 바로 주눅이 들게끔 생겼더군요.


과학적으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상이 고약한 사람은 수사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요. 수사에 있어서도 wild한 사람이 수사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영리한 사람이 수사를 잘한다는 의미입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도 그 동네 물정에 밝은 토박이 경찰인 송강호보다 멀리 서울에서 온 김상경이 추리력을 동원하여 숨겨진 시체를 찾아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수사에서도 발로 뛰는 것보다 머리를 쓰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


근데 배계장은, 같이 일을 하여보니 수사력이 탁월하였습니다. 검사는 계장을 잘 만나야 합니다. 수사력이 뛰어난 계장을 만나면 검사는 매우 편할 뿐 아니라 나아가 계장 덕택에 유명한 검사까지 될 수도 있지요.


우리는, 나이도 비슷한 지라 아주 금방 친해졌습니다.


당시 통영지청에서는 검사들을 포함하여 아무도 컴퓨터를 쓰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타자기를 이용하여 조서를 작성하던 시절이었지요.


저는 수원에서 쓰던 내 개인 컴퓨터를 가지고 갔는데(그 때만 하여도 국가에서 컴퓨터를 지급하지 않았었습니다.) 배계장에게 배계장도 컴퓨터를 구입하여 컴퓨터로 조서를 작성하라고 하였지요. 이루 말할 수 없이 편리하다구요.


사실 배계장이 컴퓨터를 구입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어제까지 살아온 대로 살아도 아무런 불편이 없는데 새삼스레 뭔가를 배워야 하고, 또 그 때나 지금이나 컴퓨터 값이 그리 만만치 않는데 개인적으로 새로 그 돈을 투자하여 업무를 하여야 한다면 누가 그렇게 선뜻 마음이 움직이겠습니까.


그러나, 배계장은 달랐습니다. 며칠 고민하더니 컴퓨터를 구입하였습니다. 당시 거의 한달치 이상의 월급을 통째로 털어 넣어야 하는 금액인만큼 고민이 어찌 없었겠습니까마는 기꺼이 투자를 하더군요.


남에게 가르쳐주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신이나서 컴퓨터를 키고 끄는 방법부터 시작하여 아래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방법을 강의하였지요. 배계장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워낙 머리가 좋고 집중력이 뛰어난 양반이라서 금방 배우더군요.


검사를 하다보면 계장이나 수사관들과 일할 기회가 많은데 참으로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만, 이 분들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인문계 진학을 하지 못하고 공고나 상고로 진학하였으므로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지요. 배계장은 마산공고를 나온 사람이었지요.


쉽게 말하자면 저도 저희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중학교 때 가정형편이 극히 어려웠으면 공고나 상고를 가는 것이고 그런 경우 노무현 대통령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법시험을 칠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므로 결국 7급이나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검찰의 계장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거꾸로 배계장이 저와 같은 환경에서 태어나 무난히 인문고등학교를 가고 고려대학교 정도를 갔으면 사법시험이 붙었고 검사가 되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검사와 계장은 어릴 때의 환경차이로 입장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배계장 같은 사람을 보면 늘 느끼곤 하였습니다.


어쨌든, 배계장과 저는 공,사 두루두루 명콤비가 되어 일도 열심히 하고 같이 테니스도 하는 등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테니스의 경우도 배계장은 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전혀 치지 못하였을 때였습니다. 저의 권유로 테니스를 치기 시작하였는데 얼마나 열심히 하든지, 내가 통영지청을 떠날 무렵에는 거의 저와 비슷한 실력이 되었지요.


배계장은 원래 근거지는 창원이었는데 순환근무 원칙상 통영에 홀로 와 있었기 때문에 저녁에 시간이 많았습니다. 통영에는 "닷지"라는 독특한 형식의 술집이 있었습니다.


닷지는 선술집 같은 곳에서 얼음 물에 넣어서 차게 만든 병맥주를 파는 곳인데 마신 병의 개수에 따라 술값만 받지 안주값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주는 황홀합니다. 충무에서 나오는 각종 해산물이지요. 생선 구운 것, 파전, 해삼, 멍게 등인데 주방에서 즉석에서 요리를 하여 내놓는 것이라 싱싱하고 맛있는 것이 많지요.


저는 통영에 가기 전에는 사실 회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싱싱한 회맛을 안 것도 통영에 근무하는 동안이었는데 닷지 집에서 공짜로 주는 안주인 멍게나 해삼의 맛도 그 신선도에 힘임어 굉장하였지요.


배계장과 내 옆방 검사실에 근무하는 이계장, 그리고 저, 이렇게 우리 3인은 닷지집에 자주 어울려 가서 맥주를 많이 마셔댔습니다. 테니스를 치고 가기도 하였고, 밤새 수사하여서 질 나쁜 토호세력 하나를 구속하고 나서도 가기도 하였습니다.


배계장은 어느날 저보고 방송대학에 등록하여 다니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나이에 방송대학을 나와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공부를 좀 하고 싶어서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왕 공부하는 것이라면 대학원까지 가서 내친 김에 석사까지 하라고 하였지요. 그리고, 제가 예전에 Harvard 대학에 놀러갔을 때 사온 가죽으로 만든 서류 케이스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나중에 대학원에 입학하여서 석사 공부할 때 쓰라구요.


이렇게 배계장을 표현하니까 배계장이 상당히 학구적이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오해하실지 모르나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자들을 무지 잘 웃기는 재미있는 사람이고, 운동도 잘 하고, 때로는 터프하기도 한, 남자 중의 남자이지요.


같이 지리산 등반도 여러 번 갔습니다. 위에서 말한 이계장은 집이 진주였는데 새벽에 진주의 이계장집에 같이 가서 그의 부인이 해주시는 아침밤을 먹고 반야봉에 올라 갔다가 내려 온 적이 있었는데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기상이 나빠져서 가지고 간 김밥이 얼어붙을 정도로 온도가 급강하되고 눈보라가 몰아쳐 까딱하였으면 황천객이 될 뻔한 일도 있었지요.


어느 덧 1년 6개월의 근무기간이 끝나고 나는 서울로 발령을 받아 서울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정이 담뿍 들었던 배계장과 헤어지게 된 것이지요.


서울에서 1년 가량 근무하다가 저는 미국에 유학을 떠나게 되고, 다녀와서 법무부에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배계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반가와서 어쩐 일이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드디어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참 기뻤습니다.


이 번에는 배계장보고 사무관 승진 시험을 목표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지요.


6급까지는 연한이 차면 자동 승진이 되지만 5급부터는 승진시험을 쳐야 하는데 그 승진시험이 마치 고시처럼 만만치 않습니다. 행정고시를 붙으면 바로 5급 사무관으로 발령받아 오게 되는데 9급부터 출발한 분들은 많은 경우 6급에서 정년퇴직을 하게 되지요.


특히, 검찰이나 법원공무원은 일정기간 이상 근무하다가 퇴직을 하면 법무사 자격증이 주어지게 되는데 사무관 승진을 하지 않아도 법무사 자격증이 나오므로 굳이 승진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배계장은 "그것 합격하면 뭐하능교, 괜히 머리만 아프지" 하면서 더 이상 공부하기 싫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왕 공무원 하는 것, 계급이 높아지는 것이 좋지 않느냐, 높이 오를수록 아는 사람의 범위도 넓어지고 또 신사가 되는 것 아니냐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배계장이 가끔 교육차 서울에 올라오면 우리는 찐하게 술 한 잔 하기도 하였고, 또 내가 통영지원에 사건이 있어서 내려갔을 때는 배계장이 멀리 창원에서 내려와 같이 어울려 한 잔 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변호사 개업 후 2년쯤 지났을 때는 마침 고등학교 후배가 그곳에 검사로 있을 때여서 마음먹고 내려가 그 후배검사와 배계장을 포함하여 예전에 통영지청에 같이 근무하였던 모든 직원들을 불렀는데 여직원들은 그 동안 모두 시집을 가서 애엄마가 되어 있었고 계장들은 이미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사람들도 많았으나 어쨌든 20명 가까이 나와 모두 자리를 함께 해줘서 즐거운 시간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두, 세달쯤 전에 아침에 출근하는데 배계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직감적으로 전화 용건을 알았지요. 그래서, 본인이 말하기 전에 먼저 말하였습니다. "배계장님 사무관 시험에 붙었지요?", "우찌, 알았능교? 어제 발표해서 오늘 바로 전화드리는 것입니더." "축하합니다!, 사무관 승진되면 서울에서 교육을 받을 것이니까 서울에 올라오면 꼭 저한테 연락하십시오."


얼마 후 배계장은 명실공히 배수사관이 되어서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저는 LG 아트센터 지하에 있는 고급 음식점에서 그와 만날 약속을 하였습니다. 창원이나 통영에서는 맛볼 수 없는 뭔가를 선물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배수사관과 저는 그 날 근사한 식사를 하였습니다. 예쁘고 교양있게 보이는 여종업원이 연신 맥주를 주문해 마시는 우리에게 여기서는 맥주값이 비싸니까 그만 드시고 밖에 나가서 한 잔 더하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붙임성 있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세련된 복장으로 써빙하는 그녀에게 배수사관이 촌사람의 어수룩한 표정을 일부러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아이고, 바쁘시지요. 바쁘지 않으면 여기에서 우리하고 한 잔 같이 하면 좋을낀데---"


당황한 그녀는 눈만 멀뚱멀뚱하게 뜨고 아무 말 하지 못한채 배수사관을 쳐다 보았습니다. 저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알딸딸하게 술에 취하여있는데 배수사관이 물었습니다.


"다음에 뭐할까요?"


나는 술김이나 진심으로 말하였습니다.


"이왕이면 박사까지 하시지요."


"박사되면 뭐가 좋은데요? 교수될 것도 아닌데"


"아,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무관이 되면 시간이 많아질 것인데 놀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하면 시간도 잘 가고 좋을 것 아닙니까?"


저는 기대합니다. 또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에 갑자기 배수사관(그 때는 배서기관이나 배이사관이 되어 있을까요?)이 제게 전화를 걸어올 것을.


"저 이 번에 박사학위 취득하였습니더. 학위논문 보낼테니 주소 좀 불러주이소."


***********

[2003-05-17 오후 12:42:44]


세상 참 좋아 졌습니다. 서울의 보고 싶은 얼굴을 남쪽나라 창원에서 화면을 통해 볼수 있으니까요. 정말 남검사님 아무리 생각해도 내 기준으로 미남이고 인간적으로 쾌남입니다. 우리 인연 닿은지 어언 11년이 되었군요


9*. *. 1. 낯설은 객지 통영에 이빨 빠진 진도개가 되어 있을 때 3개월 후에 부임한 검사님은 꼭 맞는 보철 이빨을 끼워 주었지요. 검사와 참여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맥주 1잔에 쩔쩔매던 술에 취약한 검사는 위조 양조 면허를 소지한 참여를 만나 1년 6개월 후 이별할 때는 폭탄 몇잔도 이길수 있는 강성군으로 발전시켰으나 최근 다시 만나 보니 별 다른 조련사를 만나지 못했는지 또 약해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다찌집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놓고 업무를 토로하면서 인간애를 쌓았고, 테니스에 입문하여 이성덕 사부와 치고 있으면 야근을 하고 귀가하면서 운동장에 들러 심판을 봐 주고 호프까지 심심찮게 사 주었으며, 통영지청 최초로 컴퓨터를 거금 250만원을 주고 구입하여 아침 1시간 일찍 출근하여 1개월을 수강받아 업무의 효율성을 높였던 기억, 악덕 사기꾼. 욕지의 토호세력. 농협비리. 항만청 비리 및 각종 수산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힘 모아 정열을 쏟았던 기억등 정말 그 시절이 그립고 아름다왔습니다.


자칭 정에 약한 참여가 반술이 되어 "한잔 더 하자고 졸으면 갈때를 알고 돌아서 가는 그 뒤 모습은 그 얼마나 아름답느냐" 면서 기분 좋게 헤어졌는데 지금도 저는 절제의 미사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검사님은 저를 못 생겼다고 혹평하고 있으나 솔찍히 남자답게 생겼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저는 수사 분서에 많이 근무하고 현장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나름 대로 검사님의 기대에 조금 부응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만 좋게 평가해 주시니 기분은 좋습니다. 저도 좋은 화답을 하겠습니다.


저가 지금껏 참여를 하면서 만난 10 여명이 넘는 검사님들은 한결같이 모두 인간성이 좋았습니다. 정말 그것은 나에게 큰 행운입니다. 검사실에서 하루 8시간 이상을 마음 맞지 않은 사람과 1년 6개월 근무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조직적으로 불행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검사와 참여 사이의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였고 이제는 승진하였기 때문에 참여의 기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남검사님과의 관계는 유독 돈독 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성격이 서로 화통하여 숨김이 없고, 둘째 사람을 잘 믿고 신뢰 한다는 것 세째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 보다도 편하게 대해 주었던 것입니다.


검사가 아닌 어쩌면 친구 같이 대해 주면서도 우리는 업무적으로 명백한 한계를 긋고 본분에 충실한 것이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아는 고수였습니다.


검사님이 홀연히 변호사로 개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분은 오래 검찰 발전과 일반직과의 유대를 위해 더 있어야 했는데 라고 못내 아쉬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은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검사님은 생각이 앞서 있는 리더자로서 나게 많은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테니스를 배워 일등 선수가 되었고, 타자기를 과감히 던지고 전별금을 투자하여 컴퓨터를 구입하여 그 위력을 처음 맛 보았고, Harvard 서류 케이스를 선물 받고 용기를 내어 석사 학위도 받았으며 또 나이 40 중반이 넘어 녹슬은 머리를 딱고 조이면서 허리가 아파 벌침을 몇개월 맞으면서 끝내 사무관 승진 시험에도 합격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내에 필요한 삶의 조건 이였으며 검사님은 한 발짝 앞서 내게 길을 안내 해 주고 충고 해 주었습니다. 사무관 시험 준비를 하면서 힘들때는 합격의 소식을 검사님께 전하고 싶어 마음의 채칙을 들기도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검사님은 저 더러 다시 박사 학위의 좌표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승진 시험 휴유증으로 공부에는 지쳐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마음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심정은 좀 부정적인 편에 기울어 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직 간부로서 앞으로 할 일도 많고 객지 생활도 해야하고 또 내 개인적인 학문 탐구 보다는 내 직분에 충실을 다 하는 것이 공인의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간부가 되면 그 만큼 책임감도 많아 질텐데 두가지 일을 함께 추구 한다는 것이 제 능력과 환경적으로 난처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배움이 배 고팠던 시절을 생각하여 비록 학위 취득은 하지 않더라도 영어와 전문서적등은 계속 보고 틈틈히 교양서적도 보면서 양식을 쌓는데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는 어제 월보로 발행되는 검찰가족지에 "봉침예찬"의 제목으로 저가 승진공부할 때 허리가 아파 벌침으로 치유한 내용의 글을 4장 분량 보냈는데 채택이 될련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몸이 아파 고생을 했습니다. 이제는 완치되었으므로 골프도 하고 싶은데 요즘 공직자에게 부패 관련 제한이 많아서......


이제 맺어야 겠습니다. 동양의 나폴리 통영지청의 아름다운 추억은 저나 검사님의 가슴에 영원할 겁니다. 남검사님을 만난 것은 검사와 참여가 아닌 저 인생에 많은 가치를 부여한 길잡이 등불입니다. 그 빛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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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5. 경에 주고 받은 글이다. 그 배계장은 그 후 검찰 일반직 공무원으로서는 최고위직까지 승진한 후 은퇴하였다. 그리고 다시 선출직 공무원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


아직도 때때로 지방특산물을 보내준다. 지난 번에는 복숭아를 보내주더니 오늘은 감을 보내주셨다.


참 고마운 분이다. 30년이 넘은 옛날 인연인데도 이렇게 가끔 감과 복숭아로 연락을 주시니...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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