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899)
원제 : Migrants- The Story of Us All
저자 : 샘 밀러(Sam Miller)
출판연도 : 원서-2023, 번역서-2023
출판사의 소개에 의하면 저자는 런던 출생이고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와 정치를 전공했고, BBC의 뉴델리 특파원을 지냈다고 한다.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저자의 노트'라는 제목으로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삽입되어 있다. 인도에서 오래 거주하였고 인도 여성과 결혼했으며 인도 외에도 튀니지 등 여러 나라를 이동하면서 살았단다.
저자는, 사람들은 한 곳에 정착하여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고(定住主義) 이주민들을 예외로 취급하고 있지만 실상은 최초의 생명이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후 지금과 같이 전 세계로 퍼져서 살게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에게는 이주의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처럼 국경을 엄격하게 설정하여 이주자들을 배척하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없고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게 된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저자의 박식함은 놀라울 정도다. 네안데르탈인부터 시작해서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 불법입국까지 세계 각국을 아우르며 통사적(通史的)으로 이주(移住)의 역사를 훑는데,아는 바가 넓고 깊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인용하는 것을 보면 이 양반이 메소포타미아 문자 공부까지 했다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 정도다.
이 책은 역사책이다.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이 세계 각국에 노동자로 가면서 겪은 고초도 이 번 기회에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주의 본성이 있고 그 본성을 자유롭게 실현하게 해줘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순진한 이상주의자의 답답한 소리이거나 이 책을 쓰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작년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를 다녀왔다. 식당 내에서도 가방을 훔쳐가므로 조심하라는 소리를 가이드에게 수도 없이 들었다. 난민들을 받아들이면서 발생한 문제다. 난민들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없으니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뉴스나 영화를 통해서 보트 피플의 참상을 보면 누구나 인류애를 느낀다. 각국에서 구박받으며 쫓겨 날 때 아니 좀 받아주지 하는 동정심이 든다.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아름다운 이상이지만 현실에서는 괴물로 변하는 것과 같다.
난민을 받아주는 문제 이전에 자기 나라에 있는 고아들을 여유 있는 집안에서 한 명씩 데리고 가서 키우게 하는 법을 만들면 어떨까? 그 법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1%도 없을 뿐 아니라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제대로 실천되지도 않을 것이다.
넘쳐나는 쓰레기가 없도록 각 가정에서 안쓰는 물건을 국가가 총력을 기울여서 수거하여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양로원, 고아원에게 즉각 즉각 나누어 주게 되는 시스템을 왜 못만들까?
백만장자가 우주에 불과 며칠 또는 몇시간 동안 여행하면서 쓰는 지구 자원을 못쓰게 하고, 혼자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짓을 못하게 하고 그것을 아프리카 사람의 기아를 해결하는데 쓰도록 UN이 국제경찰을 만들어서 감독할 수는 없을까?
저자는 최초에 생명의 씨앗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고 그 생명이 전세계로 퍼져 나갔음을 생각하면 인류는 모두 이주민이었다고 하면서 지금과 같은 철통같은 국경을 원망한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의 국경을 모두 허물어야 한다. 특히 유럽 같은 경우는 불과 수백년전만 거슬러 올라가도 국경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의 특정시점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현재의 기득권층을 무턱대고 계속 유지하자는 뜻은 아니다.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좌파의 존재이유는 분명히 있다. 좌파가 없다면 우리는 지금도 양반, 상놈 시대에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이기주의는 이주 본능보다도 천 배, 만 배 강하다는 점은 논쟁의 여지없이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