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미국 자동차 여행(004)-6월 5일(목)
2008-06-06 오후 2:39:28
1. 6시 30분경 시끄럽게 울어대는 morning call 전화벨 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 아내는 샤워를 하고 있었다.
2. 네비게이터에 'Philadelphia International Airport'를 목적지로 입력하고, 그녀의 권위 있는 목소리의 지시대로 공항을 찾아갔다.(우리나라 네비게이터의 목소리와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기숙사 사감같은 목소리다.)
석윤이가 어제 비행기가 30분 이상 지연 출발할 것이라고 전화를 해서 아침에 여유를 부린 것인데 그래도 너무 늦은 것 같아서 서둘렀다.
3. 공항에 도착하여 주차를 시키고 터미널로 향하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막 내리자마자 석윤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착하여 baggage claim에서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단다.
석윤이를 만났다.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아서 씩 웃으면서 일어나지도 않고 우리를 맞이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내에게 아이들도 우리처럼 반가워할까하고 물은 적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를 만나는 일이 싫지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설레이면서 기다려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어른들을 만날 때는 일어서서 맞이하는 것이라는 잔소리를 지 엄마에게 듣고 석윤이는 일어섰다. 키가 더 큰 것 같다. 석윤이는 평화스럽다. 말도 느리고 조용조용히 한다.
짐을 찾아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로 향하였다.
4. 호텔 앞 '데니스'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아침 메뉴에 steak이 들어 있는 것이 있었다. 아내가 '아침부터 누가 고기를 먹는담' 하는 순간, 석윤이가 '나, 먹을래'하였다.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을 옮긴다고 한다. 똑똑한 명환이까지 그런 소리를 하길래 그럼 미국사람들은 어떻게 쇠고기를 먹느냐고 물었다. 명환이는 자기 누나와 조카들이 미국에 있는데 전화 걸어서 물어봤더니 미국에 사는 누나와 조카들도 뉴질랜드와 호주산 쇠고기를 먹는다고 하였다.
하하,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황당해진다. 석휘, 석윤이, 학교에서도 호주와 뉴질랜드산 쇠고기만을 식단으로 제공할까? 공립학교보다 훨씬 많은 등록금을 내는데도 학교에서 자기 아들, 딸들을 앞으로 10년 이상 살지 못하게 하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한다면 미국 부모들은 가만히 있을까? 하다 못해 아이들끼리 축구시합만 해도 안전규정을 몹시 따지는 그들은 먹거리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관심한 것일까?
오늘 아침 식당에서 먹는 저 steak도 호주와 뉴질랜드로부터 수입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메뉴 옆에 원산지 표시를 하여야 하는 것 아닐까? 미국산 쇠고기로 스테이크를 만든 것은 1달러, 호주나 뉴질랜드 산은 20달러, 이렇게 가격을 다르게 정하여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 많은 미국 쇠고기는 우리나라처럼 힘없고 불쌍한 나라의 백성들만이 수입하여 오로지 싼맛에 죽음을 무릅쓰고 먹고, 배부른 미국인들은 우아하게 광우병의 위험이 없는 호주산, 뉴질랜드산만 수입하여 먹는 것일까.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 인수위 때도 그의 철없음에 크게 실망했고(노무현 대통령은 무지해서 철이 없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턱없는 자신감때문에 철이 없었다.), 특히, 조각을 하는 것을 보고는 결정적으로 실망했다.
어떻게 평균적으로 그렇게 재산이 많은 사람들만을 골라서 장관으로 선임했을까. 돈 많은 사람이 무조건 문제있다고는 나도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의 정서를 생각해야 한다. 나보다 돈많은 사람이 장관까지 한다면 무조건 기분 나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장관을 선임할 때는, 출신 지역도 고려하고, 출신 학교도 참고하는 것이다. 능력만 있으면 출신지역이 어디든, 학교를 어디를 나왔든, 재산이 있든, 없든, 고려하지 않고(역차별하지 않고) 선발하겠다는 것은 기업적 사고방식이다. 정치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것을 주려고 해도 받는 사람이 기분 나쁘다면 주지 않아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쇠고기를 먹더라도, 그래서, 쇠고기를 먹을 형편이 되지 않아 죽으나 사나 삼겹살만 먹더라도, 잘난 체 하는 미국 낙농가들을 도와주기 싫어서라도 미국산 쇠고기 먹기 싫다고 하면 그 뜻에 따라줘야 한다.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법률가 출신 아니라고 할까봐 사사건건 토론하자고 덤벼들더니 이명박 대통령은 세일즈맨 출신 아니라고 할까봐 무조건 단기간 실적에 목숨을 건다. 이래서, 출신은 못 속이는 모양이다.
누가 그걸 원하는가. 사람들은 같이 가길 원한다. 각자의 목소리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특히, 요즘 우리나라 사람처럼 각자 자존심에 민감한 국민들은 더욱 그렇다.
더구나 인터넷이 발달하여 자기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끼리 - 아무리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 금방 의사소통할 수 있고, 금방 결집하여 세력화할 수 있는 지금은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설득시키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쇠고기 파동을 보면서, 참으로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국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왜 그렇게 자신들이 항상 억압받고, 핍박받고, 기만당하고 있는 민중이라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행동은, 결국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길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뭐라고 자본주의를 부정해도 결국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잃는다. 하지만 시간을 잃어도 할 수 없다.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모두 맛을 봐야, 그 맛을 먹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조치들에 수긍하는 것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와서 석윤이는 자고, 아내와 나는 여러가지 계획을 짰다.
5. 오늘 오후 5시에 석휘의 졸업식 파티가 있단다. 이른바 prom이다. 넥타이까지 맨 정장 차림으로 참석해야 한다고 해서 아내는 한국에서 석휘 양복을 사들고 왔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석휘 나이 또래가 입는 정장은 값도 싸면서도 그렇게 옷 맵시가 있다고 한다. 그게 젊음의 특권 아닌가. 무엇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
석휘로부터 전화가 왔다. 석휘의 파트너는 석휘의 미국 학생 친구 중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Caith의 여동생인데, 여성 파트너에게는 prom 날에 corsage를 주는 것이 관례란다. 석휘는 그것을 준비하는 것을 깜박 잊었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호텔을 체크 아웃하고, 그 corsage를 찾아 길을 나섰다.
6. 아내가 생각할 때는 큰 Grocery Store에 가면 꽃을 파는 코너가 있고, 그곳에서 corsage를 구할 수 있겠다고 하여 네비게이터에 가까운 Grocery Store 나와라 하고 명령하였더니, 우리를 가까운 대형 슈퍼마켓에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하루 전에 주문하였어야 했다면서 고개를 흔든다.
아내는 혹시나 싶어 네비게이터에 가까운 flower shop이 있는지 문의하였더니, 이 똑똑한 네비게이터는 flower shop까지 입력해 놓고 있다가 알려 주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땅덩어리는 어마어마한데, 어떻게 그 넓은 지역의 지리 정보를 모두 기억하고 있으며 조그만 동네의 꽃가게까지 알고 있으니, 태평양을 건너서 나를 태우고 온 거대한 덩치의 보잉 비행기보다 이 조그만 네비게이터가 더 위대하게 보였다. 조그만 어린 천재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천재 네비게이터의 안내로 꽃가게를 찾아 갔다. 꽃가게가 있는 동네는 오래된 유럽의 작은 동네처럼 운치가 있었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 중 하나이므로 이런 동네가 가끔씩 남아 있다.
corsage를 주문하였더니 3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단다. 그 시간 동안 점심을 먹기로 하고, 아까의 대형 슈퍼마켓에 먹을 것을 사러 갔는데 정말 맛없는 것을 사서 거의 남기고 말았다. 그러나 7 달러로 온 가족이 점심을 해결해서 점심값은 굳었다.
7. corsage를 찾아서 석휘 학교로 갔다. 마침, 석휘 학년의 졸업반 아이들은 졸업식 리허설을 막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석휘를 픽업하여 석휘의 정장 구두를 사러 근처의 대형 복합 쇼핑몰 단지인 King of Prussia로 갔다.
prom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쇼핑할 시간이 30분 밖에 없다는 석휘를 데리고, 급하게 그곳으로 갔는데, 석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빠, '살바토레 페라가모'같은 명품 브랜드 중에서 제일 싼 것으로 하나 가지면 안될까? 졸업선물로. 친구들도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어"
나는 이런 제안이 들어오면 설득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딱 잘라서 안된다고 한다. 석휘는 예상하였다는 듯이 "그럼, Boss 브랜드에서 제일 싼 것은 어떨까?"하고 수정 제안하였다. 역시 나는 딱 잘라 거절한다.
나는 석휘가 자기 머리를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색깔로 물들이든, 양쪽 귀에 귀걸이를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의 옛날 기준에 맞추어 불량학생을 정의하기는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 돈으로 비싼 물건을 사서 치장하는 꼴은 못 본다. 얼마나 천박한가.
명품이라는 브랜드를 하나쯤 가지고 싶어하는 요즘 아이들의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안되는 것은 안된다. 그런 명품 브랜드 상품을 가지고 있으면 친구나 이성친구로부터 대접을 받는다면, 그런 수준 정도의 친구 밖에 사귀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욱 비참한 일이다. 이러니 내가 꼰대라고 취급받아도 할 수 없다.
석휘는 쉽게 포기한 후 평범한 브랜드의 130달러 짜리 구두를 하나 사고, 벨트와 정장용 양말도 샀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석윤이에게도 농구화를 하나 사줬다. 석윤이는 2학기 때부터는 미식축구부에 들어서 미식축구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좋은 결정이라고 하였다.
석휘는 별로 좋은 학교도 아니면서 등록금만 무지 비싼 대학교에 가게 되서 아빠에게 미안하다고 하였다. 될 수 있으면 자기가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것은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석휘의 학교에 석휘를 데려다 주었다. 석휘는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준비할 시간이 40분 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부리나케 기숙사 건물로 뛰어 갔다. 하하, 좋은 시절이다. 멋지게 잘 놀아라, 아들아.
참, 석휘는 이 번에 각 분야별로 최우수자 1인에게 주는 상 중에서 보컬상을 받았고, 내일 장기자랑대회에서 듀엣 공연을 한다고 하였다. 몇시냐?하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면서 내일 연락을 주겠다고 하였다.
8. 그 동안 석휘 학교에 올 때는 늘 근처의 Holiday Inn에 묵었었다. 그러나 이 번에는 아내가 다른 곳을 소개받았다면서 그 다른 호텔을 예약하였다고 하였다. 원래 가격이 약간 더 비싼 곳이나 인터넷으로 pre-paid를 하니까 가격이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그 호텔(Homewood Suites)은 학교에서 너무 멀었다. 25분 정도를 달려야 하였다. 그러나, Hoilday Inn보다는 시설이 좋았다. 호텔의 이름대로 방마다 Suite 구조로 되어 있어서 침실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자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밤에 노트북을 쓰거나 책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9. 체크인한 후, 석윤이의 선물을 사주기 위하여 다시 나섰다. 석윤이는 매월 보는 시험에서 평균 90점을 넘은 적이 있어서 우등상을 한 번 탔다. 그 소식을 전화로 알려 주기에 축하선물을 하나 사주기로 약속을 하였었다.
석윤이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게임 팩을 하나 사달라고 하였다. 참 소박한 석윤이이다. Target에 가서 게임 팩을 하나 사줬다.
10. 저녁은 사발면으로 때우기로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로비에 있는 식당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투숙객들에게 스스로 햄앤에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부페를 준비하여 놓았던 것이다. 모두 무료다. 더구나, 맥주까지 공짜로 마실 수 있다!!! 바를 잡아 당기면 두가지 종류의 생맥주가 자동판매기 커피처럼 나온다. 거기에 앉아서 생맥주를 세컵 정도 마셨다. 제법 취기가 올랐다.
11. 방으로 돌아와서 사발면을 먹은 후에 아직 초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졸려서 잠이 들었다.
12. 이곳 시간으로 자정 무렵에 깨서, 이 일기를 쓰고 있다. 아, 다시 자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