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llas

한 달간의 미국 자동차 여행(023)-6월 24일(화)

by N 변호사

2008-07-07 오전 9:30:31


텍사스주에 들어서니까 기찻길이 길 옆으로 다니고 있는 것이 많이 눈에 띈다. 텍사스하면 나는 영화 Giant가 생각난다. 저 기차 중 한칸에서 거대한 체구의 ‘록 허드슨’이 정장으로 차려 입은 채 내려 설 것 같다.

그 영화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동부 출신의 신식 여자이다 ‘록 허드슨’은 남부에서 태어나고 자란 구식남자이다.

거대한 목장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록 허드슨은 종마를 사기 위하여 며칠 동안 기차를 타고 저 멀리 뉴욕에 갔다가 뉴욕의 부잣집 딸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만나고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에게 반한다. (만나게 되는 경위나 장소 등은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두사람은 결혼하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남편인 록 허드슨 외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기차로 며칠 거리인 저 멀고 먼 텍사스의 남편 집으로 와서 살게 된다.

록 허드슨과 그의 친구들이 사업 이야기,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끼어들려고 한다. 구식 남자들은 남자들끼리의 중요한 이야기에 여자들이 끼어들려는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신식 여자는 그러한 구식 남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대통령이 된 부시 부자는 텍사스 출신이다. 그 두 대통령의 아내들은 남부 사람들답게 대외적으로 거의 나서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면 남부에는 아직도 그 전통이 남아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미국 동부 출신인 힐라리 클린턴은 남편이 대통령 시절에 남편과 거의 마찬가지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였고 나중에는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섰다. 동부는 그렇다.

지금 미국은 흑인의 피가 반이 섞인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 텍사스주를 비롯한 미국 남부 지방의 고령 백인들은 이런 세태에 대해서 ‘세상이 말세야’하고 탄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폐쇄적 사고, 변하지 않는 사고가 남부를 계속 경제적으로 뒤처지게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텍사스주에 들어서자 마자 나와 아내의 핸드폰은 roaming이 되지 않는다. roaming이 되는 원리에 대하여 나는 모른다. 이곳 텍사스주에서 로밍이 되지 않는 이유는 한국의 이동통신회사가 그곳에는 한국인들이 별로 갈 일이 없다고 생각하여 로밍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들이 관광의 목적이든, 사업의 목적이든, 텍사스주에 별로 많이 가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텍사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40년 전에 같은 가격으로 달라스의 땅을 사고 같은 가격으로 뉴욕에 땅을 샀다면 현재 그 가격은 10배 이상 차이가 날 것이다.

열려야 된다. 그래야 발전한다. 연다고 해서 정체성이 상실되는 것도 아니다. 일본은 2차 대전 이후에 비참할 정도로 미국에게 굽신거렸지만, 그리고 그들의 언어에서 외래어의 비율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지만 일본의 각 지방에서는 아직도 고유의 풍속을 그대로 보존하고 계승시키고 있다. 아이스 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부른다고 하여 민족적 정체성이 유지되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말할 가치도 없는 북한정권에 대한 이야기다.

달라스로 가는 도중 텍사스주의 어느 소도시의 Dairy Queen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소도시에 가면 동양인을 처음 봐서 그런지 의례 그곳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흘끔거리지만 이곳에서는 그 정도가 심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텍사스의 사람들은 신기한 듯이 우리를 계속하여 쳐다보고 있어서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정도는 오늘 오후에 당할 수모의 전주곡에 불과하였다.

기온은 더욱 올라가서 차의 계기판에서 보여주는 바깥 온도는 섭씨 36도까지 가리켰다.

달라스를 얼마 남기지 않은 곳에 Fort Worth라는 도시가 있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광안내 책자에 의하면 Fort Worth에는 서부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town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예정에 없던 Fort Worth로 방향을 틀었다. Fort Worth의 몇 블록 정도의 거리에서 서부시대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이왕 이곳에 온 김에 며칠 전에 아내의 교통위반 ticket에 대하여 작성한 Statement of Explanation을 우편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우리가 받은 ticket에 의하면 그 ticket에 인쇄된 양식에 우리의 죄를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표시하고, 그외 특별히 더 할 말이 있으면 Statement of Explanation를 첨부하여 우편으로 보내라고 하였기에 그것을 이곳 우체국에서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Fort Worth의 downtown에 마침 대형 건물에 US Postal Service라고 써붙여 놓은 것이 보였다.

나와 석휘는 우편물 하나 부치는 데 마치 우리나라의 중앙우체국처럼 너무 큰 곳에서 부치는 것 아니냐하면서 낄낄거리면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우체국 안은 조용하였다. 마치 기차역 내부처럼 컸고 기차표를 파는 창구 같은 곳에서 직원 하나가 서서 우편물 접수를 받고 있었다.

그 ticket에서 우편물을 보내는 방법에 관하여 first class mail with return receipt requested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 중 “with return receipt requested”가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서 그 우체국의 직원에게 물어보기로 하였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고 석휘 혼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자기 차례가 오자 물었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그 백인 남자 직원은 석휘가 물어보는데 계속 딴청을 하면서 매우 귀찮다는 듯이 석휘의 말이 끝내기도 전에 이것 저것 서류나 딱지를 건네주면서 이대로 하면 된다는 식으로 대꾸하였다.

머쓱해진 석휘는 그냥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우리의 의문은 해결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석휘는 다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그 직원에게 물었다. 역시 그 직원은 석휘 얼굴을 보지 않고 계속 딴 곳을 보거나 서류 등을 보면서 건성건성 대답하였다. 얼굴이 일그러진 석휘는 내 자리로 돌아오면서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였다.

순간 다시 영화 Giant의 한장면이 생각났다. 그 영화에서 록 허드슨의 아들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여자와 결혼한다.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하던 중 어떤 식당에 들렀는데 멕시코 여자가 백인들만이 출입하는 식당에 들어 오자 록 허드슨만큼 거구의 식당 주인은 록 허드슨의 며느리에게 나가라면서 모욕을 주고, 이를 항의하는 아들도 제압한다. 분개한 록 허드슨은 그 식당 주인과 치고 박고 결투를 벌인다.

나도 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들을 대신해서 그 우체국 직원과 한바탕 결투를 벌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Giant에서 록 허드슨은 식당 주인에게 묵사발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온 가족이 쫓겨나는 것으로 결말이 났던 생각이 나서 조용히 석휘와 함께 물러났다.

그 직원이 석휘가 장발의 머리에 야구모자를 쓰고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교통 위반 ticket이나 들고 와서 물어봤기 때문에 그랬는지, 아직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의식이 남아 있는 남부의 소도시에서 석휘가 단지 동양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무시한 것인지, 아니면 우체국 하급직원으로 늙어가고 있는 자신의 인생이 한심해서 그렇게 한 것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말을 제대로 하고 듣는 석휘가 저런 대접을 받는데 말도 잘 못하는 내가 만일 이것저것 물었다면 얼마나 더 처참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석휘가 지금까지 캐나다나 미국에 살면서 늘 customer로서 대접받아 왔기 때문에 겪어보지 못했던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경험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석휘는 이 도시를 떠나 큰 도시에서 우편물을 부치자고 하였으나 나는 이곳에서 해결하자고 하였다.

다른 우체국을 찾았다. 이 번에는 비교적 작은 우체국이었다. 그곳에서는 흑인 2명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친절도 면에서는 아까의 우체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그곳에서도 두세 번 물어본 결과 대충 first class mail with return receipt requested가 뭔지는 알 수 있었다.

Return receipt는 상대방이 우편물을 수령하였을 경우에 우편물을 붙인 송신자에게 그 수령사실을 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보통은 송신자가 자기의 회신 주소를 적은 메모지 형태를 우편물 겉봉투에 붙인다. 우편물이 상대방에게 배달되면 우체부가 그 메모지 형태에 그 수령자의 이름 등 수령 내용을 확인하고 그 메모지를 그대로 송신자에게 엽서식으로 부친다. 그러나 요즘에는 인터넷으로도 수령사실을 확인하게 해주는 시스템이 있었다. 그리고, return receipt를 받으려면 따로 2달러를 더 내야 하였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우편물을 부치고 다시 달라스로 향하였다. 차 속에서 석휘와 석윤이에게 물어 보았다. 만일 같은 상황에서 석휘가 깨끗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얼굴에 똑똑한 모습이 흘렀으면 그 우체국 직원들이 그렇게 하였을까? 두 아이는 모두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나 이론상으로는 사람은 평등하다고들 한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세상의 역사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고 선진국이 되어 갈수록 평등의 정도가 높아져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도 계급은 존재한다.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식들이 공부를 잘 하기 바라고 이른바 출세하길 바란다.

외양이 초라하면 무시를 당하기 쉽다. 제일 좋은 싸움꾼은 실제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덩치가 좋은 사람이다. 싸움을 하지 않고 이길 수 있으니까. 외양이 초라한 사람도 막상 싸우면 이길 수 있지만 일일이 피를 흘려야 그것을 입증할 수 있으니 피곤한 것 아닌가.

그 외양은 내공에 의해서 갖추어진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내가 법원에서 어슬렁거리면 변호사 뱃지를 달지 않고 다녀도 수위들은 내가 변호사인 줄 다 안다. 검찰청에 들어가면 수위들은 내가 검사인 줄 알고 경례를 붙일 때가 많다. 허름한 양복을 입고 있어도 이 세계에 오랫동안 몸 담고 있으면 그것이 외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이들은 설교할 기회를 잘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기회를 잡으면 놓치면 안된다. 그래도 조금만 계속하면 다 아는 소리니 그만해라는 표시를 온몸짓으로 나타낸다.

드디어 댈러스에 도착하였다. 댈러스에 들어와도 여전히 로밍이 되지 않았다.그렇게 로밍도 안되는 댈러스를 은근히 무시하였다. 그러나 다운타운에 들어선 순간 댈러스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빌딩들이 모두 품위가 있었다. 거리가 깨끗하고 질서가 있었다.

저녁 먹을 시간에 댈러스에 도착하여서 몹시 배가 고팠으나 다운타운에서 마음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없었다.

남부의 대도시들은 만만치 않은 곳이다.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기에는 부적절한 레스토랑이 많다. Grade가 있다. 창밖에서 흘끗 들여다 봐도 이 더운 여름날씨에 정장을 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네비게이터를 통하여 가까운 곳에 한국음식점이 없는가 하고 알아보았다. Asian Food을 입력하면 주로 중국음식점, 베트남 음식점, 일본 음식점이 나오는데 이런 대도시 같은 경우에는 한국음식점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과연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네비게이터의 화면에 식당이름, 주소와 함께 뜨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이 전화번호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기계음만 나왔다.

할 수 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베트남 식당을 찾았다. 다운타운을 약간 벗어난 곳에 있었다. 미국의 도시들은 다운타운을 벗어나는 순간 험한 지역이 나타난다. 살기 좋은 동네는 모두 다운타운을 한참 벗어난 교외에 있기 때문이다.

이 베트남 지역도 살벌하게 보이는 지역에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밖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베트남 식당의 내부는 그럴 듯 하였다. 음식 맛도 괜찮았다.

예전에 해외여행을 할 때는 만만한 것이 중국식당 아니면 이태리 식당이었다. 그만큼 우리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도 공통적으로 맞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불과 10년 사이에 베트남 식당들이 세계 곳곳에서 무섭게 진출하였다.

배를 불리고 나서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Houston으로 향하였다. 1시간쯤 하이웨이를 달리다가 달리는 차 속에서 네비게이터를 통하여 가까운 lodging을 검색하고, 그 중 Comfort- Inn이나 Best-Inn을 찾아 exit를 빠져나가는 하루의 마감 절차가 오늘도 되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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