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미국 자동차 여행(024)-6월 25일(수)
2008-07-09 오후 10:18:55
점심 무렵에 휴스톤 근처에 도착하였다. 나는 휴스턴이 그렇게 대도시인 줄 몰랐다. 왜 나는 텍사스주에서 댈러스가 제일 크고 휴스톤은 그저 NASA 때문에 유명해진 도시로 잘못 알고 있었을까.
휴스톤이 대도시인 것을 알게 된 것은, 휴스톤 근처에 진입하면서부터다. 대도시의 특징은 주변에 위성도시가 많다는 것이다.
휴스톤도 마찬가지였다. 휴스톤의 다운타운까지 100km 정도나 남았는데도 벌써 도시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서울도 분당과 일산 등 위성도시가 외곽을 에워 싸고 있고 판교 신도시 등 계속해서 서울 area가 확장되고 있듯이 전 세계의 어느 대도시도 마찬가지이다.
어제의 달라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휴스톤은 판이하게 달랐다. 알고 보았더니 휴스톤은 뉴욕, LA, 시카고의 뒤를 이어서 미국에서 4번째로 큰 도시였다.
석윤이의 말에 의하면 super hero가 도시 순서로 강한 것이 나타난단다. 뉴욕에는 제일 강한 헐크, LA에는 그 다음 강한 아이언맨, 시카고에는 셋중에 제일 약한 스파이더맨. 석윤이의 논리를 헐리우드에 연락해서 휴스톤을 배경으로 하는 슈퍼 히어로를 하나 만들어야 할텐데...
Navigator에 특정 주소를 입력하지 않고 단지 도시 이름만 입력하면 네비게이터는 그 도시의 시청까지 안내한다. 시청이 그 도시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도심 진입을 하는 순간 애를 먹는다. 길이 매우 복잡해지고 어느 도시이든 대도시의 사람들은 마음이 바빠서 운전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미국의 대도시의 경우 하나같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하이웨이를 통하여 진입하게 된다. 순간 순간 네비게이터의 지시에 따라 왼쪽 차선, 또는 오른쪽 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해서 다른 하이웨이로 갈아타거나 exit로 빠져 나가야 하는데 보통 편도 5차선 정도의 도로가 되는데다가 뒤에서 오는 차들은 일체의 양보없이 최소한 130km 이상 달려 오기 때문에 네비게이터의 지시를 맹종해서 급차선 변경을 하다가는 황천길로 가기 쉽상이다.
네비게이터의 지시를 놓쳐서 제 때 제 때 다른 하이웨이로 갈아타지 못하거나 exit를 놓칠 경우에는 마치 비행기가 착륙지점을 놓쳤을 때 저 멀리까지 나갔다가 다시 착륙을 시도해야 하는 것처럼 한참을 돌아야만 다시 도심에 진입할 수 있다.
도심에 진입할 때는 네비게이터를 보랴, 뒤에서 진행하는 차의 동태를 주시하랴 정신이 없다. 이 때가 사고의 가능성이 있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도 하다.
휴스톤의 도심에 진입할 때는 다른 문제가 추가되었다. 휴스톤에 무슨 지진이나 홍수가 있었는지 온통 도로 공사 중이었고 exit를 막아 놓은 곳이 많았다. 우여곡절끝에 다운타운에 진입하여 일단 차로 한바퀴 둘러 보았다.
미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미국 도심의 풍경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헐리웃 영화를 통해서이다.
실제로 보면 그 빌딩들의 웅장함이나 세련됨 내지 화려함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화강암 같은 단단한 재질로 외관을 만들고 내부는 대부분 대리석이다. 건물마다 독특한 아름다움과 개성이 있다.
도심 한가운 데에 all day parking을 시켜 놓고 점심을 Chipotle라는 멕시코 음식 체인점에서 먹었다.
우리 가족은 걸어 다니면서 휴스톤의 다운타운을 감상하였다. 휴스톤의 빌딩들도 대단하였다.
그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이었다. 규모가 있으면서도 멋이 있는 그 건물은 Jessi Johns라는 사람이 사랑하는 휴스톤 사람들을 위하여 30년 전쯤에 기부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휴스톤 사람들은 그 제시 죤스에게 감사한다는 내용이 빌딩 입구 바닥에 새겨져 있었다.
여행을 할 때는 두가지 목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견문을 넓히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휴양이냐이다.
견문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면 몸 고생을 할 각오를 해야 한다. 제한된 시간에 많이 봐야 하니까. 기회가 된다면 유럽의 파리, 런던, 로마, 베니스는 꼭 구경을 하여야 한다. 영화나 소설 중 절반이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휴양을 위한 목적이라면 돌아다닐 생각을 하지 말고 한자리에 퍼져서 relax하여야 한다. 인도네시아의 발리 같은 곳을 갈 때는 좋은 호텔이나 리조트를 고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발리 같은 좁은 섬에서 뭘 보겠다고 돌아다니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우리처럼 한달 남짓한 기간에 미국 대륙을 돌겠다고 할 때 그 목적은 견문을 넓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점만 찍고 돌아 다녀도 한 달 안에 미국 대륙의 일부라도 본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절대 부족하다.
우선, 이동하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 먹는다. 우리 가족이 한 때 살았으므로 주요 장소에는 모두 가봤기 때문에 이 번 여행 때는 서부지방은 생략하였고 대평원에서 뛰노는 버팔로 말고는 별로 볼 것이 없다고 하는 중부지방은 건너 뛰었는데도 우리가 일주하는 거리는 약 1만 마일(1만 6천 킬로미터) 정도이다.
그렇다면 매일 평균적으로 500km는 다녀야 한다는 것인데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에 서울, 부산 간의 거리인 500킬로미터를 다니면서 남은 시간에 관광을 한다는 것은 시간에 쫓길 수 밖에 없는 일정이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 여행의 또하나의 목적이기도 하므로 놀기 좋은 곳에서는 며칠씩 머물면서 느긋하게 휴양의 시간도 보내야 한다.
그러다보니 특별한 의미가 없는 대도시의 경우에는 시간 배정을 많이 할 수가 없다.
여행안내 책자에 의하면 대도시의 관광 포인트로 설명해 놓은 곳은 미술관, 공원 등인데 나는 워싱턴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에 있는 것 외에는 그런 박물관이나 공원을 들르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 하였다.
우리 부부나 우리 아이들이 그림이나 예술에 평소 특별히 소양이 깊어서 그 도시의 미술관에만 있는 특별한 그림을 봐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도시마다 있는 미술관에 들르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큰 의미가 없다.
공원도 대체로 그게 그것이다. 처음 미국에 가는 사람들은 미국의 국립공원 같은 곳에 가면 그 웅대한 자연에 감동을 받지만 몇 번 가다보면 옐로우스톤 조차도 그게 그것이다. 하물며 도시의 공원이야 뭐 더 할 말이 있으랴.
어느 도시이든 꼼꼼히 살펴보면 그 나름대로의 멋과 재미가 있겠지만 우리 같은 일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리다.
도시별로 특색과 향기는 다르다. 다운타운을 돌면 느껴진다. 우리처럼 하루 건너서 새 도시로 가게 되면 앞의 도시와 비교가 되어서 더욱 도시마다 다른 특색이 느껴진다.
미국처럼 넓은 땅의 경우에 지역마다 완전히 특색이 달라지기에 그 건축양식의 차이를 즐기는 것도 주요 감상 포인트이다.
휴스톤의 다운타운을 걸어서 1시간 정도, 그리고, 차를 타고 다니면서 한 번 더 둘러보는 것으로 끝냈다.
오늘은 사실 특별한 일정이 있었다. 아내의 교회 성가대 후배가 바로 얼마 전에 영국사람과 결혼을 하였는데 그 신랑이 이곳 휴스톤에 살고 있으므로 그 집을 저녁에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오후에 석휘, 석윤이의 야구 모자를 사기 위하여 휴스톤의 가장 큰 복합 쇼핑몰인 The Galleria에 들렀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Foot-Locker에서 모자를 사다가 Lids라는 모자 전문점에서 5달러를 주고 membership 카드를 산 다음부터는 Lids만 찾는다. 그 membership 카드가 있으면 20%를 할인해주고, Foot-Locker에서는 신발과 모자를 파는 데 비하여 Lids에서는 오로지 모자만 팔고 있으므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Lids는 항상 복합 쇼핑몰 안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아이들 덕분에 팔자에 없이 우리가 들르는 대도시의 쇼핑몰을 모조리 구경하게 되었다.
갤러리아는 도시 한 가운데에 있어서 우리나라처럼 지하 주차장 시스템이었다. 거대한 도시인 휴스톤의 쇼핑 몰 답게 매우 화려하였다.
아이들은 모자를 고르고, 아내는 그 기회를 틈타 eye-shopping을 하고 나는 쇼핑몰 안에 있는 책방에서 책을 구경하다가 아이들이 모자를 다 골랐다고 전화를 해오면 가서 계산을 해주는 절차를 이곳에서도 되풀이하였다.
갤러리아를 나와서 아내의 후배 소개로 주소를 얻은 한국 대형 슈퍼마켓을 찾아갔다. 필라델피아 이후에 한 번도 장을 보지 못했는데 이 번에 그 후 처음으로 한국반찬을 사게 되었다.
약속시간인 7시가 다 되어 가서 우리는 종종걸음을 해야 하였다. 빈손으로 갈 수가 없어서 제법 괜찮은 와인을 사서 가기로 하였다. 미국의 쇼핑몰에서는 어느 주나 막론하고 술을 잘 팔지 않으므로 술만 전문적으로 파는 liquor store를 따로 찾아 가야 한다.
네비게이터의 도움을 얻어서 liquor store 한곳을 찾았으나 그곳은 싸구려 와인만 조금 있고, 나머지는 모두 맥주나 위스키를 파는 곳이었다.
시간이 없어 허둥지둥하였는데 마침 가는 길에 wine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와인에 대하여 조예가 있으면 싸면서도 좋은 와인을 고를 수 있겠으나 그렇지 못한 나로서는 가격으로 고를 수 밖에 없었다. 35달러짜리를 하나 샀다.
아내의 후배 부부가 사는 아파트는 bed room 하나에 흔히 den이라고 부르는 조그만 방 하나가 더 있는 작은 아파트였으나 충분히 예뻤다.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나무로 집을 지으므로 내부구조에서 다양한 선이 나온다.
결혼한 지 한달도 안된 신혼답게 집에서는 신혼냄새가 넘쳤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물건은 전부 새것이었고 잔짐은 없었다.
더스틴은 키가 1미터 95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이었으나 체중은 70kg도 채 나가지 않게 보일만큼 마른 체구였다.
나는 영국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것이었는데, 영국 사람도 사람마다 그 성격이 다르겠으나 더스틴은 노팅힐 같은 영화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영국 젊은이였다.
매우 수줍어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였고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젠틀하였다.
아내의 후배 지원씨는 식탁에 갈비찜, 동그랑땡, 잡채, 김치 등등 반찬을 모아 놓고 각자에게 접시를 나누어 준 후 부페식으로 먹게끔 준비해 주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아이들에게 미리 주의를 주었다. 첫째 배가 터지는 느낌이 있더라도 끝까지 남김 없이 많이 먹어라, 둘째 음식이 맛있다는 인사를 수시로 해라.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지나치게 솔직하여 밥과 반찬이 남아 있더라도 자기들의 배가 부르거나 맛이 없다고 느껴지면 매정하게 숟가락을 놓아버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 지원씨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기에 아직 음식솜씨가 서투를 수 있고 반면에 준비하는데 시간과 정성은 많이 들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들이 만에 하나라도 조금만 먹고 남긴다면 내가 그 많은 반찬을 다 처리해야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완전 기우였다. 지원씨의 반찬솜씨는 매우 훌륭하였다. 그 중에 동그랑땡은 더스틴이 직접 만든 것이란다.
아이들은 나의 당부가 무색할 정도로 많이 먹었고 맛있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특히 오래간만에 잡아 보는-1회용 나무 젓가락, 숟가락이 아닌 - 묵직한 느낌이 드는 제대로 된 반짝이는 은수저로 식사를 하는 것이 좋았다.
디저트로 과일 화채를 먹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영국 악센트가 재미있다면서 일부러 영국 악센트로 더스틴과 이야기를 해서 부끄럼 많이 타는 더스틴을 당황시키기도 하였다.
더스틴은 대학에서 지질학 전공을 하였고 영국의 정유회사에 취직했는데 휴스톤의 유전개발 때문에 이곳으로 와서 산 지가 5년째가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영국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고 하였다.
지원씨가 유학 중에 두사람이 만나서 몇 년간 열애 끝에 결혼하였다고 하는데 나는 지원씨처럼 외국인과 결혼해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먼 이국땅에서 사는 것은 매우 큰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하기야 국내에서 잘아는 한국 사람끼리 결혼해도 결혼 자체가 모험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모처럼 한국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지원씨 부부에게 한국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해 달라고 하였다. 아이를 가지면 나처럼 돈이 많이 드니 될 수 있으면 가지지 말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농담을 하려다가 별로 재미 없을 것 같아 하지 않았다.
휴스톤에서는 핸드폰 로밍이 되었다. 그 동안 로밍 장애 때문에 서버에 갇혀있었던 문자들이 한꺼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