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미국 자동차 여행(025)-6월 26일(목), 27일(금)
2008-07-15 오전 9:40:55
[6월26일(목)- NASA]
휴스톤 근처에 있는 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에 갔다.
NASA는 미국 전역의 여러 곳에 Center가 있는데 그 중 휴스톤에 있는 것은 1960년대의 대통령이었던 Lyndon B. Johnson의 이름을 따서 Johnson Center라고 부른다.
2만원 가까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코끼리 열차 같은 tram을 타고 Johnson Center를 한바퀴 돌면서 로켓 발사 control room, 우주인 training room, 우주선 발사대, 우주선 전시관 등을 구경하였다.
우주선을 바로 옆에서 보니 그 크기가 엄청났다. 꼬리의 분화구만 해도 그 사이즈가 대단하였는데 저기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면서 로켓트가 하늘을 향하여 수직으로 떠오르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저 까마득한 하늘에 떠 있는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다는 발상을 한 사람들도 놀랍고 공상에 그친 것이 아니라 기어이 사람을 진짜로 보내고만 추진력도 놀랍고 그것을 가능케 한 과학기술도 놀랍다.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실천을 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정말 꿈이 있다면 그 꿈이 아무리 황당한 것이라도 달나라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것보다 황당할 수는 없는 이상,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유한한 인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젊은 시절 큰 꿈을 가지고 평생을 바쳐 그것을 이룩해내는 것이다. 나이가 드니까 그 점을 비로소 알겠다.
석휘에게 장래에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니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소원이란다. 나도 그 나이 때 그랬다. 아니 나는 그런 소박한 꿈을 아주 나이 들어서까지도 간직했다. 참으로 듣기 좋은 꿈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사실 정답이 아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아니, 각자 인생관의 차이 아니냐”고 하는 온갖 아우성이 내 귀에 들린다. 인생관 차이의 영역도 있다. 그러나 정답, 오답의 영역도 분명히 있다. 소년이 야망을 가져야 하는 것은 후자의 영역이다.
아이들에게 하나 더 물었다. “우주개발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으로 아프리카 빈민국 사람들의 기아를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 이득도 없는 사치스러운 우주개발을 멈추고 그 돈으로 당장 굶어 죽어 가고 있는 아프리카 빈민을 도와야 한다는 어떤 미국 시민단체의 주장에 대해서 너희들이 NASA의 입장에서 반박해봐라”라는 질문이었다. 두 아이들은 고민하면서 각자 논리를 내 놓았다. 미숙하지만 각자 그럴 듯 하였다.
NASA의 Johnson Center를 떠나서 New Orleans로 향하였다. 5시간 30분 정도의 거리이다.
New Orleans는,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뉴 올리언스’라고 부른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뉴 올린스’라고 부른다고 아이들은 지적한다. 영어사전을 찾아보았더니 ‘뉴 올리언스’, ‘뉴 올린스’ 둘 다 있었다.
뉴 올리안스로 가는 도중 라파엣트라는 조그만 소도시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밤 10시쯤 check-in을 하였는데 샤워를 하고 나니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하였다. 근처의 주유소 가게에 들러서 캔맥주 몇 개를 사오기로 했다.
석휘도 뭐 살 것이 있다고 해서 석휘와 함께 갔다. 주유소 구내에 차를 세우고 가게 정문으로 걸어 갔는데 밤처럼 새까만 흑인 두명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우리보고 그쪽으로 가지 말고 저쪽으로 돌아라가라고 했다. 시비를 거는 것 같았다. 석휘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면서 그들의 눈길을 애써 피하면서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우호적 미소까지 지어보이면서 내게 눈짓을 했다.
정문은 잠겨 있었다. 그들의 말대로 돌아가니까 뒷문 역시 잠겨 있었으나 영화표 파는 매표소 창구처럼 조그만 틈으로 서로 돈을 주고 받는 창구가 있었다. 밤에는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주유를 하는 사람은 그 조그만 창구를 통해서 크레딧 카드나 현금을 주게 되어 있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이곳의 치안이 별로 좋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그 때 시간은 밤11시쯤으로 인적도 드물었다.
덜컥 겁이 난 나는 맥주 마실 생각이 싹 가셨고 석휘를 부랴부랴 차에 태우고 호텔로 급히 돌아왔다. 미국 밤거리의 무서움을 그 동안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석휘는 그 흑인 두사람이 우리를 도와주려고 한 것인데 공연히 의심한 것 같다고 하였다. 자기가 경험한 바로는 흑인들이 사실 성격이 cool한 경우가 더 많고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도 더 많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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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7일(금)- New Orleans]
텍사스주를 벗어 나서 루이지애나주로 들어서자 길 양 옆으로 키높은 가로수가 빽빽이 늘어서 있다.
그 동안 하이웨이 양 옆으로는 지평선이 보이는 대평원이 있거나 아니면 웅장한 산맥이 보였는데 루이지애나주는 키높은 나무들이 가로수식으로 도열해 있어서 숲속 사이로 차가 가는 듯 하였다.
루이지애나주는 늪지대가 많다. 뉴 올리언스 근교에 이르자 늪지대가 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끝도 없이 긴 다리가 늪 위에 건설되어 있다. 아내는 강의 폭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아니라 강의 물길을 따라 지어진 다리같다고 하였다. 그만큼 다리가 길었다.
미국인들은 라스베가스 같은 뜨거운 사막지역에도 에어컨이 빵빵하게 찬바람을 내는 건물을 지어서 도시를 만들고 미네아폴리스 같은 혹한 지역에도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방풍 구름다리를 만들어 도시를 건설한다. 루이지애나주 같은 늪이 많은 지역에서는 끝없이 긴다리를 만들어 늪지대를 통과하여 도시를 건설한다.
아이들에게 뭘 시키면 아이들은 어렵다, 안된다라는 소리를 쉽게 한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합리적인 일, 쉬운 일만 하면서 돈을 벌 수는 없다. 1년에 자동차를 1대만 파는 세일즈맨은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한다.
난 검사 시절에 좋은 선배를 만나서 그런 경험을 많이 하였다. 안 될 것 같은 수사도 일단 매달려 보면 해결방안이 나온다. 꼼지락, 꼼지락 노력을 하면 하늘에서 때맞춰 동앗줄이 내려 오게 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정확하게 표현하면 이순신 제독이라고 불러야 옳다. General은 육군, Admiral은 해군이다)이 훌륭한 것은 불리한 형세에서 싸움을 이겼기 때문이다.
미국이 오늘날 슈퍼강국이 된 이유는, 도시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지역에서도 도시를 만들어 내는 “against all odds” 정신 때문일 것이다. 요즘의 미국을 보면 그런 정신이 많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나무는 물속에 잠겨져 상반신을 내 놓고 있다. 마치 홍수 때 뿌리채 뽑혀서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난 처음에 그런 줄 알았다.
어떻게 그런 깊은 물속에서 나무가 썩지 않고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다는 말인가.
뉴 올리안스는 평소 내가 관심이 많은 도시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마크 트웨인이다. 한 때 캐나다 이민을 꿈꾸었을 때. 캐나다 가면 뭐할래?라고 묻는 친구의 물음에 가장 먼저 마크 트웨인의 작품을 모조리 다 찾아 읽겠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마크 트웨인 하면 미국 남부에 흐르는 미시시피강과 그 미시시피강을 유유히 거슬러 올라가는 증기선이 떠오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뉴 올리언스가 연상이 되는 것이다.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 그리고 나의 첫사랑이었던 베키가 동굴탐험을 하고 보물을 찾으러 다니던 곳이 뉴 올리언스 부근이라는 나의 기억이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뉴 올리언스는 몇 년전 태풍 카타리나로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본 다운타운의 고층 빌딩이나 뉴 올리언스 특유의 건물들이 모여 있는 잭슨 스퀘어 주변에서 그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 동안 복구가 된 것인지, 아니면 수마가 그 쪽은 피해갔거나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인지는 예전에 뉴 올리언스에 와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었다.
뉴 올리언스 하면 또 떠오르는 것은 재즈다. 나는 이 번 미국여행을 떠나기 전에 뉴 올리언스에 가게 되면 미시시피 강가의 재즈 바에 들러 볼살이 두꺼운 흑인 아저씨들이 신명나게 불어대는 트럼펫의 연주를 들으면서 병에 김이 서릴 정도의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지는 해를 바라보는 상상을 하였다.
“세상에는, 지는 해를 바라보기 좋아하는 남자와 관심이 없는 남자, 두가지 종류의 남자가 있다.”라는 멋진 영화대사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가족들과 빡빡한 일정으로 대륙을 여행하면서 재즈바에 들러 그런 여유를 즐기기는 힘들다.
지난 번 압구정동의 ‘저스트 블루스’에 함께 몰려 가서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면서 열광을 하였고, 나중에는 매상을 올려 연주자에게 경의를 표하자며 마시지도 않을 양주 1병을 시키는 데 의기투합하였던 그런 동지들과 재즈바에 가야 제격인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뉴 올리언스에 도착한 시간은 멀쩡한 대낮이었다.
우리 가족은 뉴 올리언스의 쇼핑 몰에 들러 food court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잭슨 스퀘어 주변과 미시시피 선착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구경을 하였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정말 무섭게 쏟아졌다. 아내는 건물 처마 밑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삼부자는 차를 향해서 뛰었다. 주차장까지 몇백 미터 정도의 거리였는데도 온몸은 옷을 입은 채로 수영장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흠뻑 젖었다.
차에 타서 티슈로 대충 안경만 닦고 아내를 구하러 가기 위해서 주차장을 나섰다. 주차장 출구에서 주차료를 주려고 차의 창문을 조금 내렸다. 그럼에도 엄청난 빗물이 차안으로 들이쳤다. 빨리 요금을 주고 창문을 올려야 하였다.
그러나 부스 안에 있던 덩치 큰 흑인 여자는 부스의 창문을 조금 열더니 나보고 뭐라고 큰소리로 악을 쓰고는 도로 창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굵은 빗방울이 연방 차를 때려서 시끄러운 가운데 “What?”하고, 창문을 굳게 닫고 그 안에 웅크려 있는 흑인 여자를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그 여자는 창문을 조금 열더니 뭐라고 또 떠들고 창문을 다시 닫아 버렸다.
얼핏 ‘wiper’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 때서야 나는 그 여자가 뭐라고 하는지 눈치 챘다. 와이퍼가 빗물을 닦아내고 있었는데 와이퍼에 밀린 빗물이 부스의 창문에 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와이퍼를 껐더니 비로소 부스의 창문이 열렸고 손이 불쑥 나와서 우리 주차권을 재빨리 낚아 챘고, 조금 있다가 다시 창문이 열리더니 ‘Ten Dollars”하고 소리치고 다시 창문을 닫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창문을 여는 순간 빗물이 차안으로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왔기에 수시로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주차요금을 지급하였다.
아내가 비를 피하고 있는 건물 앞으로 최대한 접근하였고, 차안에 있던 아내의 갸날픈 양산(우산이 아니라 양산이었다.)을 들고 석휘가 웃통을 다 벗어 제치고 아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 갔다.
석휘가 아내에게 다가선 순간, 거짓말처럼 그 몇 초 사이에 빗줄기가 갑자기 가늘어지더니 멈춰버렸다. 웃통벗은 흑기사는 할 일이 없어져서 머쓱해졌고 아내는 우아하게 처마밑에서 걸어 나왔다.
뉴 올리언스 다운타운을 빠져 나오는데 ‘Tulane Law School’ 간판이 보였다. 이 근방 출신인 죤 그리샴의 소설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다. 튤레인 로스쿨은 죤 그리샴에게 감사하여야 한다. 전 세계에서 맹렬히 팔리고 있는 죤 그리샴의 소설 덕분에 튤레인 로스쿨의 지명도가 많이 높아졌으니까 말이다.
이제 우리는 플로리다주의 Orlando로 떠난다. 약 1,000km의 거리이고, 자동차로 약10시간의 거리이다.
오늘 5시간 가고, 내일 5시간을 가기로 하였다.
뉴 올리언스를 빠져 나와 동쪽으로 향하는 곳에도 역시 끝없이 이어지는 긴다리가 있었다. 물 위에 떠 있는 길고 긴 다리를 드라이브 하는 기분은 멋졌다. 이왕이면 '오픈 카'였으면 좋으련만, 우리차는 잡동사니 이삿짐이 가득한 몸 무거운 미니 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