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shington D.C. (#03 & #04)

한 달간의 미국 자동차 여행(032)-7월 6일(일), 7일(월)

by N 변호사

2008-08-10 오후 3:47:07


[7월6일(일)]

어제 걸어 다니느라 너무 고생했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 아이들이 미처 가지 못한 곳을 차로 가되 주차할 곳이 없을 때는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근처에서 돌다가 아이들을 pick-up 하기로 하였다.

아이들은 어제 잘 찾지 못하여 가보지 못한 백악관도 구경하고 새로 생긴 Thomas Jefferson Memorial도 구경하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Thomas Jefferson Memorial을 구경하고 있을 때 나는 그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미국인들이 그리고 미국을 방문한 관광객들도 주차질서를 끝내주게 지킨다는 것은 지난 번에 설명한 바 있다. 만일 어기면 어떻게 될까? 즉 누군가가 단속을 해야할 것이다. 단속과 감시를 하지 않으면 한, 두사람이 어기게 되고 그러다보면 순식간에 질서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 단속장면을 나는 오늘 보았다. 하얀 헬멧을 쓰고 선글라스를 낀 경찰관이 내 키만큼 큰 말을 타고, 유유히 가면서 혹시 장애인 구역에 주차한 차량이 없는지, 사람이 내리고 탈 때에 한하여 잠시 정차만 가능한 구역에 주차한 차량이 없는지를 일일이 점검하고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과 우리는 Arlington 국립묘지도 가서 케네디 대통령의 묘지도 구경하였다. 재클린 케네디의 묘소도 케네디 대통령 옆에 나란히 있는 것이 특이하였다. 재클린은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한 후에 그리스의 선박왕인 오나시스와 재혼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전남편인 케네디 대통령 옆에 묻히게 되었을까.

우리나라의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으면서 엉뚱하게 남의 나라 국립묘지에 간다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었다. 하기야 서울에 살면서 평생 한 번도 남산 타워에 올라가 보지 않는 것이 세상살이 아니겠는가.

어제 내가 감명받은 의회도서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으나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문을 열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로 하였다.

이렇게 워싱턴의 주요 관광 명소를 다 둘러본 후 우리는 George Town University로 향하였다.

죠지 타운 대학교에 가기 전에 죠지 타운 거리가 있었다. 올드 알렉산드리아만큼 거리가 아늑한 것이 보기 좋았다. 이곳도 미국의 식민지 시절에 건축된 건물을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죠지 타운 대학교의 캠퍼스는 아름다웠다. Potomac 강을 내려다 보는 언덕에 있었는데 건물의 양식은 죠지 타운 거리에 있는 것들과 똑같았다.

석휘는 죠지 타운 대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랬다. 그래서 수시모집에 응시하였으나 죠지타운에서는 정시모집으로 defer시켰고, 결국 정시모집에서도 안되고 말았다.

죠지 타운 대학교를 둘러 보는 것은 석휘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으나 나를 버리고 떠난 연인이라도 봐야 할 때는 봐야 하는 것이다.

죠지 타운 대학교를 나오면서 네비게이터에 이 근처에 한국음식점이 혹시 있는지 입력해보았다. 하나가 있었다. 죠지 타운 대학교에서 약5km 정도의 거리였다.

그 동안 워싱톤에서 우리는 주차할 곳을 찾는데 하도 애를 먹은 기억이 있어서 그 식당 근처에 주차할 장소가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그 식당으로 가려면 통과하여야 하는 죠지 타운 거리를 지나가던 중 마침 하나 비어 있는 street parking 장소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곳에 잽싸게 주차를 하였다. 그러나 네비게이터로 확인해보니까 식당까지는 무려 3km나 남아 있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차를 빼서 진행하였다. 죠지 타운 거리를 벗어나는 순간에 또 비어있는 street parking 장소가 하나 눈에 확 들어왔다. 굶주린 개가 먹이를 찾아도 이처럼 절박하게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남은 거리를 확인해보았더니 약1.5km였다. 나는 그 정도면 걸어갔다 올 수 있으니 여기에 차를 주차시키고 가자고 하였고 아내는 그 근처까지 가보자고 주장하였다.

석휘는 이곳부터는 번잡한 죠지 타운 거리를 벗어난 곳이니 앞으로는 주차할 장소가 많이 나올 것이라며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리를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놓치고 갔다가 앞으로 주차할 장소를 찾지 못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을 하면서 그냥 걸어 가자고 고집을 피웠다. 우리는 그곳에 차를 세워놓고 다같이 걸어 갔다.

한 블록만 지나자 비어있는 street parking 장소가 여기저기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

계속하여 걸어갈수록 비어 있는 street parking 장소는 더욱 더 많아졌다.

급기야는 그 식당 바로 앞에도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 여기저기 있었다.

이렇게 비어 있는 곳이 많은데 왜 그렇게 멀리 세웠느냐고 아내와 아이들의 불만은 대단하였다.

나는 죄를 지은 사람답게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면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1.5km 정도면 지금 뛰어가면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잘못(고집) 때문에 온 식구가 이 더운 여름 대낮에 밥을 먹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곳까지 다시 걸어간다면 내가 많이 미안해질 것 같았다. 잘못은 행동으로 시정되어야 한다.

식사를 주문한 후 삼국지에서 관우가 이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따고 와서 마시겠다고 선언한 후 자리를 박차고 떠났듯이 나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다녀오겠다고 비장하게 공표한 다음, 식당을 나섰다. 야속하게도 아내와 아이들은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당시 나는 Crocs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이 Crocs는 신는 방법에 따라 슬리퍼도 되고 샌달도 된다. 나는 샌달로 mode를 전환한 다음, 그 때부터 신나게 달렸다.

땀은 좀 났지만 기분이 몹시 상쾌했다. 중간에 경찰서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속도를 늦추고 잠시 걸었다. 경찰관이 나를 물건을 훔치고 튀고 있는 날치기라고 오해할지 모른다는 신중한 고려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1.5km를 뛰어서 차에 이르렀다. 그리고 차의 시동을 걸고 다시 순식간에 식당 앞으로 몰고 왔다.

식당에 들어서니 아내와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아직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도 전이었다. 아내는 갔다 오는 척하면서 안갔다 왔지?하고 의심하였다.

그 때서야 비로소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화장실에 가서 간단히 세수를 한 후 관우처럼 점잖게 앉아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다시 올드 알렉산드리아를 갔다. 그 거리 중 어느 곳에 차를 세워 놓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 커피라도 한 잔 하였으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 지겹다고 하였다. 하기야 힘이 펄펄 넘치는 아이들이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면서 노닥거리는 것이 뭐가 재미있겠는가.

결국 우리는 올드 알렉산드리아를 차로 몇 바퀴 돈 다음에 오래간만에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 처음으로 낮잠도 좀 자고, 쉬자고 하였다.

그 날 저녁은 호텔에서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었다. 이곳은 창문이 열리지 않아 음식냄새에도 신경이 쓰이고 전기 후라이팬으로 햄을 구웠는데 그 연기 때문에 혹시 화재 경보기가 울릴지 모른다며 아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한국음식으로 호텔 방안에서 저녁을 먹는 것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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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월)]

아침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의회 도서관에 갔다. 오늘은 월요일이라서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그 안을 구경하고 있는 동안 나는 근처의 주택가에서 차를 세워 놓고 잠시 책을 읽었다.

아이들이 의회 도서관 구경을 다 하고 나왔을 때 감상이 어떻느냐고 물었으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저런 곳에서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 뭐, 이런 반응을 기대했던 것인데 내 예상이 빗나갔다.

석휘나 석윤이나 이곳 워싱톤의 Georgetown University에 입학하게 되면 이런 곳에서 책도 보고, 공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석휘가 입학한 NYU가 있는 뉴욕은 너무 번잡하다.

워싱톤은 세련된 도시미도 있는 반면에 한적하기도 하다. 공원도 많다. 오늘도 곳곳에서 조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것 참, 만일 내가 18살 때 우리 아버지가 이런 곳에 나를 데리고 왔으면 나는 입이 딱 벌어지면서 이 다음에 이런 곳에 와서 공부도 하고 살아야지 하면서 꿈을 야무지게 꾸었을 것인데 우리 아이들은 이 정도 가지고는 별로 감동을 받지 않을 정도로 이미 익숙한 모양이다.

이어서 바로 그 뒤에 있는 건물인 세익스피어 도서관에 갔다. 이곳은 실망스러웠다. 별로 볼 것이 없었다.

차를 타고 다시 포토맥 강을 건너서 버지니아주 쪽으로 왔다. 미국 국방성이 있는 펜타곤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펜타곤 건물은 다 알다 시피 오각형의 거대한 건물군이다.

뭔가 엄격한 분위기가 있는 살벌한 주차장에서 instruction을 잘 읽고 착실히 규칙대로 주차를 하고 터덜터덜 펜타곤 건물을 향하여 걸어갔다.


날렵한 복장 위로 무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헌병이 우리를 막았다. 어디 가는데?하고 물었다. 저 안에. 하고 대답하였다. 예약했니? 하고 또 물었다. (물론 그 헌병은 꼬박꼬박 sir를 붙였다.) 안했는데하고 대답하였다. 먼저 예약을 하여야 하고 그러면 자기들이 사전에 그 신원을 모두 확인한 다음에야 건물 안으로 들어 가는 관광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예전에는 이런 복잡한 절차없이 모두 가능했었다. 9.11. 테러 후부터는 관광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장한 헌병을 무찌르고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그냥 다시 차를 타고 나왔다.

이제 석휘, 석윤이의 야구 모자를 사야 한다. 아니 도대체 Washington D.C.에도 야구팀이 있냐하고 물어보았다. 매번 져서 그렇지 야구팀도 있고, 미식축구팀도 있단다. 미국 프로야구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Washinton D.C.에 야구팀이 있다는 소리는 오늘 처음 들었다.

네비게이터를 통하여 Lids를 찾았다. Lids는 늘 그렇듯이 복합 쇼핑몰 안에 있었다. Crystal City에 있는 복합 쇼핑몰은 대단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가본 곳 중에 제일 화려하고 으리으리하고 개성이 있었다. 쇼핑 몰 자체만 하여도 충분히 구경거리가 될 정도였다.

아이들이 모자를 산 후에는 우리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드디어 워싱톤에서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하였다. Hancock을 봤다.

저녁은 이곳 Crystal City 한복판에 있는 Legal Seafood이라는 레스토랑에서 했다. 이름이 독특하지 않은가.

레스토랑은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내부는 매우 크고 화려하였다. 이 레스토랑의 이름이 왜 Legal이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테이블 위의 식기 놓는 종이 위에 설명이 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이 레스토랑은 미국 동부 전역에 퍼져 있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었다. 1950년도부터 Boston에서 시작되었고, 여기서 Legal은 “Quality and Freshness”를 의미한단다. 음식이 아주 맛있었다. 서빙을 하는 웨이터들도 친절하였다.

지난 한 달 동안 먹는 것, 자는 것에 관하여 매우 검소하였지만 최근 며칠 동안은 먹는 것에 관하여는 잘 먹고 있다.

사실 가족끼리라도 한달 이상을 24시간 동안 함께 하는 여행을 하게 되면 먹는 것, 자는 것, 쇼핑하는 것에 대해서 각자 의견이 달라서 충돌이 있기 쉽다.

예를들어 먹는 것은 대충 먹어도 자는 것은 깨끗한 곳에서 자자라든지 아니면 자는 것은 대강 자도 먹는 것은 제대로 먹자라든지 말이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은 그 동안 군말없이 내가 이끄는 대로 자고 먹고 해주었다. 또한 아이들이 모자를 사는 것 말고는 한달 동안 우리 가족은 아무 것도 쇼핑하지 않았다. 이런 것에 대해서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

이것으로 우리의 대륙일주여행 일정은 사실상 끝났다.

이젠 뉴욕으로 돌아 가서 형욱이 가족과 어울려서 놀고 쉬면서 며칠 있다가 서울로 돌아가게 되는 일정만 남았다.

오늘 그 동안의 긴 여정을 정리하는 만찬을 유서깊은(들어 가기 전에는 그리 유서깊은 곳인지 몰랐지만^^) 이곳 Legal Seafood에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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