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894)
원제 : THE TALENTED MR. RIPLEY
저자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
출판연도 : 원서-1955, 번역서-2023
이 소설은, 1960년에 나왔던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이다. 그 영화에서 '알랭 들롱'이 톰 리플리를 연기했다.
1999년에 미국에서 이 소설과 똑같은 제목인 'THE TALENTED MR. RIPLEY'라는 이름으로 - 우리나라에서는 '리플리'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 다시 영화로 만들었다. 맷 데이먼이 주인공 톰 리플리를 연기했고 소설에서 리플리와 함께 주요 등장인물이 되는 디키 그린리프를 쥬드 로가, 마지를 기네스 펠트로가 연기했다.
2024년에 넷플릭스에서 Ripley : The Series라는 이름으로 8회분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톰 리플리의 역은 앤드루 스콧이 맡았고, 디키 그린리프 역은 조니 플린이, 마지 역은 다코다 패닝이 맡았다.
이 소설을 쓴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작년에 나온, 기가 막히게 좋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그 이름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헌 책방 주인은 주인공이 고른 책들에 대해서 매 번 한 줄 평을 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 대하여는 불안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라고 말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1921년 생이다. 1995년에 사망했으므로 향년 74세였다.
작가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리플리는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는 1955년에 출판되었고, 후속작이 4편 더 있었다. '지하의 리플리'(1970), '리플리의 게임'(1974), '리플리를 따라온 소년'(1980), '심연의 리플리'(1991)
을유문화사에서 리플리 시리즈 전체를 2023년에 번역출판하였다. 출판사 입장에서 쉽지 않는 결정이었을 것 같다.
나는 시리즈 5권을 전부 다 샀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레즈비언이었다. 지금도 쉽지 않지만 1920년에 태어난 그녀에게는 고통스러운 삶이었을 것이다.
1952년에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냈다. 세간의 비난을 두려워해서 '클레어 모건'이라는 가명을 썼다. 그 소설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대성공을 했다. 이 소설이 2015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케이트 블란챗이 나오는 '캐롤'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어린 시절이 불우했고, 평생 동안 우울증과 거식증에 시달렸으며 알콜중독이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불안한 심리상태에 대해서 잘 아는 소설가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1955년에 쓰여진 소설인데도 옛날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아주 재미있다.
톰 리플리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경위가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그의 살인은 계획적이면서도 우발적이었다.
원래 범죄라는 것이 주사(酒邪)와 같다. 나쁜 생각이 뇌 속에 처음부터 없는 사람이라면 주사를 부릴 수가 없다. 그러나 항상 나쁜 사람은 아니므로 평소에는 문제없이 생활하다가 술에 많이 취하면 그 나쁜 생각이 말(言)로, 행동으로 드러나게 된다.
톰 리플리는 처음부터 디키 그린리프를 죽일 생각은 아니었지만 죽일 이유가 생겼을 때는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다. 두 번째 살인은 첫번째 범행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 살인도 저지를 뻔 했지만 살인을 하려고 했던 이유가 오해였음이 밝혀지자 멈춘다.
톰 리플리는 살인을 한 후 그 범행을 숨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소설에서는 그 과정이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1950년대는 지문 채취 외에는 과학수사라고 할 것이 없었다. 사회적인 시스템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요즘 같았으면 톰 리플리의 범행은 금방 드러났을 것이다.
톰 리플리의 입장에서는 해피 엔딩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톰 리플리의 범행이 끝내 발각되지 않았고 톰 리플리는 디키 그린리프의 유언장까지 만들어서 그의 재산을 가로챈다.
무려 1950년 대에 이렇게 범인이 체포되지 않는 결말을 만든 작가가 놀랍다. 처음부터 시리즈물로 기획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냥 톰 리플리가 잡히지 않는 결말로 구상했는데 이 소설이 크게 성공하자 작가가 후속작도 쓰게된 것이 아니었을까.
다소 모호하게 설정되어 있지만 톰 리플리가 동성애자로서 디키를 사랑하는 설정을 한 것도 1950년대라는 시대를 생각하면 작가가 대담하다는 증거가 된다.
대단한 작가는 대단히 용감할 수밖에 없다.
법률가 입장에서 조그만 흠을 잡자면 소설의 거의 끝부분에 나오는 다음의 대목이다.
<이제 그의 것이 되었다. 디키의 재산이 그의 것이 된 것이다. 게다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톰이 누리던 자유에 디키의 자유까지 더해지게 되었다. 톰은 마음만 먹으면 유럽에 집을 사고, 미국에도 집을 사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묶여 있는 몽지벨로 주택 판매 대금이 문득 떠올랐다. 그 돈은 그린리프 씨에게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디키가 유언장을 쓰기 전에 판 집이기 때문이다.>
유언장을 쓰기 전이라도 디키의 재산(주택)이었다면 당연히 그 재산도 유언장에 의하여 톰 리플리에게 유증(유언으로 증여) 된다. 작가는 뭔가 착각을 하였던 것 같다.
이에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는 원작 소설의 내용과 같은 부분이 거의 없다. 그러나 영화 대본도 좋았다. 각색이 아니라 개작 수준이었지만 개작된 내용이 뛰어났다.
맷 데이몬 주연의 '리플리'는 원작 소설과 아주 조금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원작 소설과는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훨씬 더 많다. (이것도 거의 개작에 가깝다) 그렇지만 이 영화도 재미있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리플리 시리즈는, 원작 소설에 매우 충실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점도 물론 있지만 원작 소설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드라마는 결말에서 반전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경찰의 수사담당자가 마지막 순간에 (디키 그린리프 행세를 하고 있는) 톰 리플리가 범인인 것을 알아챈다. 드라마 제작자가 시리즈 2를 만들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넷플릭스 드라마도 수작이다. 드라마에서 톰 리플리를 연기한 앤드루 스콧은 커밍 아웃을 한 게이 배우란다. 게이이기 때문에 주연을 맡은 것은 아니고 단지 우연이었을 것이다. 앤드루 스콧은 원작 소설에서의 톰 리플리를 그대로 표현해낸다. 아무나 배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볼 때는 영화 2 편도, 드라마도 모두 잘 만들었다. 퍼트리사 하이스미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