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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사람

독서록(141)

by N 변호사

2009-10-22 오후 3:49:59


제목 : 그저 좋은 사람 (Unaccustomed Earth)

저자 : 줌파 라히리 (Jhumpa Lahiri)

역자 : 박상미

출판사 : 마음산책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70대의 고령이시다.


아버지는 펜실베니아주에서 살고 있고, 딸(루마)은 저 멀리 와싱턴 주의 시애틀로 이사를 왔다. 멀리 떨어져 살게 된 30대의 딸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진다.


딸은 인도인이다. 그런데, 토종 미국인과 결혼했다.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의논하였다. 남편은 당신 알아서 결정하라고 한다. 자기는 상관없다고 한다.


계속 고민하고 있는 딸에게 아버지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한 일주일 정도 딸이 이사한 시애틀에 와서 딸이 사는 집에 머물다 가겠다고 전화한다.


딸은 이 번 일주일 동안 아버지와 함께 있어 보면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할지 말지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어머니는 집에 있을 때 도움이 되었으나 아버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왔다. 아버지는 의외로 설겆이도 도맡아 하고, 스스로 아침식사도 차려 먹고, 딸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가장 좋은 일은 유치원도 갈 나이가 안된 어린 아들에게 훌륭한 친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를 임신하고 있는 딸의 입장에서는 큰 아이를 돌보아 주는 아버지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래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딸의 마음은 단지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 모시고 살려는 것이 아니라 연로한 아버지를 모셔야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당연한 일인데 나아가 도움까지 되면 더 좋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아버지의 존재가 짐이 되어서 아버지를 싫어하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에 일주일을 같이 지내고 보니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애정이 생겼다. 따뜻한 부정을 느끼게 되었다.


드디어 일주일이 지나고 아버지는 떠날 때가 되었다.


딸은 같이 살자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자기 딴에는 큰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절한다.


아버지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건 달랐다. 즐거운 경험이긴 했지만 일주일을 지내다보니 그 사실이 더 확실해졌다.


그는 다시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복잡함과 불화, 서로에게 가하는 요구, 그 에너지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딸 인생의 주변에서 그 애 결혼생활의 그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잡동사니로 가득 찰 커다란 집에서 사는 것도 싫었다.


그동안 소유했던 모든 것, 책과 서류의 옷가지와 물건을 최근에 정리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어느 시점까지 규모가 불어난다. 그는 이제 그 시점을 넘겼다.>


<아이들이 대학에 다닐 때 방학을 맞아 집에 오면 새로운 독립심으로 가득해 그와 아내를 못 견뎌 했고 언제나 집을 떠나고 싶어했다.


이런 모습에 아내는 무척 괴로워했고, 한번도 인정하진 않았지만 그 자신도 마음이 아팠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


자신의 떨리는 품에 안겨 있던 연약한, 생존을 위해 아버지를 필요로 하던, 부모밖에 모르던 존재였다.


하지만 결국 부모는 아이들에게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었고, 때로는 관계가 끊어질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루마도 결국 그런 식으로 자식들을 잃어 갈 터였다. 아이들은 점점 남처럼 멀어지고 제 엄마를 피할 것이다.


하지만 루마는 그의 딸이었고 평생 그래 온 것처럼 그런 사실에서,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나빠진다는 사실에서 딸을 보호하고 싶었다. 결과를 보면 그가 두려워했던 것들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 책은 줌파 라히리의 단편소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위에서 인용한 것은 제일 먼서 수록된 '길 들지 않은 땅'(Unaccustomed Earth)으로서 원저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번역본에서는 그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른 소설인 '그저 좋은 사람'을 책 제목으로 뽑았다.


나는 여기 실린 소설들이 다 괜찮지만 '길 들지 않은 땅'이 그 중 제일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 있으면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미신 속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미 완전히 깨진 결혼생활이고 앞으로도 회복될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는 이혼하면 안된다면서 자식을 위해 세월을 죽이고 있는 부부도 있다.


딸은 늙은 아버지를 위한다는 입장에서 같이 모시고 살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 자기가 결심하면 아버지는 당연히 같이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늙으면 자식에게 의지하고 싶어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생각은 다르다. 가족은 기쁨과 평안을 주기도 하는 존재이지만, 반면에 <그 복잡함과 불화, 서로에게 가하는 요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나는 가족끼리 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남을 것은 가족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고객 감동을 시키기 이전에 가족을 감동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족이 주는 복잡함과 불화의 에너지도 거대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딸이 제대로 시집가게 하기 위하여는 부모가 이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경멸한다.


그것은 웃기는 희생이다.


자식은 가장 소중한 보물이지만, <자신의 떨리는 품에 안겨 있던 연약한, 생존을 위해 아버지를 필요로 하던, 부모밖에 모르던 존재>인 단계를 지나면 <대학에 다닐 때 방학을 맞아 집에 오면 새로운 독립심으로 가득해 그와 아내를 못 견뎌 했고 언제나 집을 떠나고 싶어하는> 존재로 변한다.


그런 자식을 위해 이미 깨진 결혼생활을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그럭저럭 형식적으로 이어가는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죄악이다.


차라리 독립하면 먹고 살 길이 없어서, 억지로 참고 살아야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솔직한 고백이 된다.


이 소설에서 아버지는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나빠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일생동안의 경험을 통하여 본다면 <그가 두려워했던 것들이 사실로 드러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사실에서 딸을 보호하고 싶었던> 것이다.


큰아이가 유치원도 다니지 않고 있고, 작은 아이는 임신 중인 딸에게 그는 밑도 끝도 없이(아무런 설명없이) 일을 계속해라고 주문한다.


딸은 아버지의 그와같은 말이 이해되질 않는다. 죽도록 공부하여 명문 로스쿨을 졸업한 후 역시 죽도록 일하다가 돈 잘버는 남편과 결혼하여 이제 집에서 좀 쉬고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데 오래간만에 온 아버지는 난데없이 일을 계속하라고 하다니... 그런 아버지가 딸은 야속하게 느껴진다.


딸은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갈 때까지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그러면 경력을 다 잃게 되어 다시 일을 하기 힘들 것이라고 걱정한다. 딸은 속으로 별 걱정을 다 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두렵다.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어쩔 수없이 나빠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딸이 나중에 독립하고 싶을 때 독립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이런 구질구질한 해석이나 설명이 없다. 그냥 에피소드의 나열들만 있다. 그러나 독자들은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안다.줌파 라히리. 매우 훌륭한 작가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대단한 문장도, 깜짝 놀라게 하는 창의적인 비유도, 정치한 기교도 없다.


그냥 일어났던 사실과 경험했던 사실을 일기나 여행기처럼 담담하게 묘사하는 것 같다.


사실은, 평범하지도 않고, 단순하지도 않다. 그 소설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놀라운 상징성을 가졌다. 대단히 정교한 플롯을 세우고, 그 플롯이 부여하는 임무를 각자 훌륭히 수행하는 에피소드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활약한다.


그 에피소드들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도저히 꾸며낸 이야기로 믿기지 않는다. 모든 에피소드들은 작가가 실제로 경함한 상황들 같이 느껴진다.


여성 특유의 세밀한 묘사도 돋보인다. 그러나, 여성 특유의 아무 이유없는 복잡함, 주저함, 이런 것(이런 것을 '관념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은 없다.


나는 줌파 라히리의 다른 소설 두개도 다 샀다.


이 소설 끝에는 역자 후기가 붙어 있다. 보통은 역자 후기는 안 읽는 것이 좋다. 본문의 글과 비교되어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역자인 박상미의 후기는 본문 못지 않게 훌륭하다. 지성이 넘친다.


당연히 번역도 깔끔하다. 그러나 출판사의 편집팀이 엉터리였는지 중간에 오자, 탈자가 제법 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역자 후기까지 다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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