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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기

배우는 방법(#01)

by N 변호사

모국의 언어를 배울 때 문법을 먼저 배우지는 않는다. 엄마, 아빠를 포함하여 주변에서 수없이 오고가는 대화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배운다.


Chat GPT 같은 인공지능에서 채택하는 LLM(Large Language Model)도 같은 원리다. 수많은 텍스트를 닥치는대로 읽으면서 "A라는 말로 시작되면 보통 B라고 끝나더라"라고 학습을 한다. 그 원리로 번역도 하고 질문에 대답도 한다.


그러나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울 때는 그렇게 수없이 반복하면서 언어의 형태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학습량을 가질 수 없으므로 문법부터 공부해야 한다.


신이 문법을 만들어 놓고 인간이 문법에 적혀 있는 대로 언어를 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쓰는 언어를 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정리해 놓은 것이 문법이다.


산과 강과 바다와 초원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데 그것을 열심히 발로 찾아 다니면서 한 눈에 알 수 있게 만든 것이 지도다.


문법은 언어에 대한 지도라고 비유할 수도 있다. 따라서 문법을 공부하는 것은 마치 지도를 미리 보고 한 번에 제대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과 같이 가성비 높은 언어공부 방법이 된다.


이와같이 문법은 그 언어를 '제대로' 쓰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빠르게' 익히는 데도 도움을 준다. 그러나 매뉴얼을 읽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쓰듯이, 언어를 배울 때도 문법은 그냥 건너 뛰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자동차 매뉴얼을 봐야 공들여 만들어 놓은 최신 자동차의 각종 다양한 기능을 쓸 수 있다. 매뉴얼을 읽지 않아도 몇 년 동안 운전하면 어떤 기능을 우연히 발견할 수는 있다. 또는 끝내 그 기능을 모르고 그 자동차와 이별하기도 한다.


MS-WORD나 엑셀같은 프로그램은 매 번 최신 버전으로 바꿔 달라고 회사에 요구하면서 자기가 아는 지식은 오래된 옛날 버전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왜 최신 버전으로 바꿔 달라고 하는가?


문법이나 매뉴얼을 익히는 것은 물고기 잡기 전에 그물부터 만드는 것처럼 돌아가는 길처럼 느껴진다. 또한 본인의 야망이 적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많은 물고기가 필요하지 않아. 그저 당장 허기를 때울 한, 두마리만 필요 해."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공부를 할 때 또 하나의 중요한 요령은 필기다. 대단한 운동선수들은 훈련일지를 기록한다. 책을 읽을 때도 정성들여서 독후감을 작성하면 그 책에 대한 기억은 오래간다.


요즘은 아마존에 접속하여 간단하게 ebook(kindle version)을 다운받을 수 있으므로 때때로 영어 원서를 읽는다. 원서를 읽으면 느린 속도로 정독할 수밖에 없다. 느린 속도가 갑갑하지만 줄거리는 물론이고 그 책의 문장 하나 하나의 정교함까지 느낄 수 있다.


문법을 공부하고, 매뉴얼을 꼼꼼하게 읽고, 영어 원서를 읽는 일은 시간을 잡아 먹는다. 그래서 싫다고들 한다. 그렇게 시간을 아껴서 그 남는 시간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1000권의 책을 대충 읽는 것보다 100권의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이 더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된다. 물론 이 재미는 감각적인, 즉시 효과가 있는 재미는 아니다. 감각적인 재미만 평생 누리고 살고 싶으면 돈이 억수로 많아야 한다. 감각적인 재미는 대부분은 돈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돈을 억수로 벌기는 힘들다.


설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감각적인 재미는 계속 '단위'를 높여가야 하고 '다양해야' 하므로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나의 소원은 비즈니스 클라스로 비행기를 타고 일류 호텔에서 자는 여행이다. 그러나 그 두 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돈이 있다고 한들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음에는 일등석 비행기표와 하와이 별장을 꿈꾸게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배우고 깨우치는 기쁨은 크다. 아는 사람만이 안다. 배우려면 천천히, 돌아가야 한다. 생각하고 필기하고 다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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