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946)
원제 : 球状闪电(Ball Lightening)
저자 : 류츠신(劉慈欣)
역자 : 허유영
출판연도 : 원서-2004, 번역서-2025
원래 제목인 球状闪电을 우리나라 한자로 옮기면 球狀閃電이다. '둥근(공) 모양'의 번개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런 모양의 번개가 있는 모양이다. 나도 영화 같은데서 호롱불 모양의 번개가 움직이면서 다니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의 생일에 주인공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던 부모 앞에 구상섬전이 나타난다. 순식간에 주인공의 부모를 태워서 재로 만든다.
주인공은 일생을 바쳐 그 구상섬전을 연구하기로 결심한다.
삼체 0은 원제에는 없었다. 번역판 출판사가 임의로 붙인 제목이다. 출판사는 광고에서 삼체 시리즈의 프리퀄이라고 하고 있고, 저자도 작가 후기에서 그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지만, 이 소설이 프리퀄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외계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없다.
이 소설은 양자역학을 다루고 있다. 기가 막히게 재미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양자역학의 오묘함을 약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류츠신은 대단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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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사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아. 아빠 얘길 들어보렴. 우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난제를 하나 선택하는 거야. 종이 한 장과 연필 하나만 있으면 되는 수학 난제를 선택하는 게 제일 좋지. 이를테면 골드바흐의 추측이나 페르마의 정리 같은 것 말이다. 아니면 우주의 기원처럼 종이와 펜도 필요 없는 순수 자연철학 문제도 괜찮아. 그런 다음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그 난제를 연구하는 거야. 결과에는 연연하지 않고 과정에만 집중하는 것이지. 그렇게 모든 걸 쏟아부어 연구하다 보면 인생이 금세 지나간단다. 자기 인생을 건다는 게 바로 그런 거야. 반대로 돈 버는 걸 유일한 목표로 삼고 오로지 돈을 어떻게 벌까만 궁리할 수도 있어.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관심을 두지 않고서 말이야. 그러다가 죽을 때 그랑데처럼 금화를 한 무더기 안고서 ‘아, 따뜻하구나……’라고 하면서 죽는 거지. 결국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은, 무언가에 깊이 매료될 수 있느냐에 달린 거란다."
자오위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손을 내저었다. “장빈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열쇠가 땅에 떨어지면 방금 소리가 난 곳을 찾지 않고, 자와 분필을 가져와서 집 전체 바닥에 모눈을 그려 구획해 놓고 한 칸씩 옮겨가며 찾을 사람이야…….”
나는 장빈 교수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아내와 일찍 사별했고 자녀도 없었으며, 오랫동안 혼자 살았고 사회적 교류도 매우 적었다. 이런 단조로운 생활은 나와 비슷한 점이 있었지만, 그런 생활을 하려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최우선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의 말을 빌리자면 ‘무언가에 깊이 매료되는 것’이고, 6년 전 도서관에서 만난 그 여학생의 말을 빌린다면 ‘목적이 있는 삶’이다. 하지만 장빈 교수는 무언가에 매료된 것도 아니었고 뚜렷한 목표도 없었다. 그는 따분한 응용연구 프로젝트를 기계적으로 수행했다. 그것들을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로 생각하고 있었고, 또 명예와 이익 같은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그의 생활은 자기 학대에 가까웠으므로 그에게 약간 동정심이 들기도 했다. 나는 아직 그 수수께끼의 해답을 탐색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6년 동안 대학과 대학원에서 배운 모든 것은 내가 그것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절감하게 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물리학 공부에 매진했지만, 물리학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수수께끼임을 깨달았다. 그 끝에 다다르면 세계의 존재 여부마저 의심하게 되었다. 구상섬전을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그것을 이해하는 데 그렇게 높은 수준의 물리학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자기학에서는 맥스웰방정식, 유체역학에서는 나비에-스토크스방정식을 아는 수준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말이다.(나중에야 이런 생각이 얼마나 얄팍하고 유치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구상섬전과 비교하면, 현재까지 알려진 전자기학과 유체역학의 모든 구조는 너무 단순하다. 만약 구상섬전이 전자기학과 유체역학의 기본 법칙을 따르는 동시에 그처럼 복잡하면서도 균형 잡힌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극도로 복잡할 수밖에 없다. 마치 흑돌과 백돌, 간결한 규칙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게임인 바둑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내게 필요한 것은 첫째도 수학, 둘째도 수학, 셋째도 수학이었다. 구상섬전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복잡한 수학적 도구가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각종 수학적 도구는 고삐 풀린 야생마 같아서 다루기가 무척 어려웠다. 장빈 교수는 내 수학 실력이 대기물리학 연구에 필요한 수준을 크게 능가한다고 했지만, 나는 구상섬전을 연구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복잡한 전자기와 유체 구조를 다루게 되자 수학적 기술은 사나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괴한 편미분방정식은 목을 죄는 올가미 같았고, 장황한 행렬은 날카로운 칼날이 잔뜩 꽂힌 함정 같았다. 나는 본격적으로 수수께끼를 파헤치기 전에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장은 대학이라는 환경을 떠날 수 없었고, 박사과정을 밟기로 했다.
그때 그것이 날아들어 왔다. 그것은 마치 벽에 걸린 그림에서 튀어나온 유령처럼, 그리스의 뭇 신들이 환호하고 있는 유화 옆에서 벽을 뚫고 들어왔다. 농구공만 한 크기에 희미하게 붉은빛을 띤 그것은 검붉은 화염 같은 긴 꼬리를 매달고 우리 머리 위를 가볍게 날아다녔다. 변덕스럽게 이리저리 커브를 틀었고, 그 꼬리는 사람을 홀리듯 복잡한 궤적을 그렸다. 방향이 바뀔 때마다 어떤 울음소리를 냈는데, 낮게 울리면서도 고막을 긁는 듯 날카로워 마치 태곳적 황야에서 귀신이 훈(塤)을 부는 소리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상상해 보라. 뱃사람이 평생 바다를 볼 수 없다면 견딜 수 있을까? 등반가가 평생 설산을 볼 수 없다면 견딜 수 있을까? 파일럿이 평생 하늘을 볼 수 없다면 견딜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뇌운에서 발생하는 번개는 인공적으로 대량 생성하기가 어렵고 군사적 가치도 크지 않아요. 우리 연구 목표는 마른번개를 만드는 거예요. 즉, 구름과는 관계없이, 전하를 띤 공기 속에서 전기장의 방전으로 형성되는 번개를 만드는 거죠.”
정말로 그런 번개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잠재력은 앞선 두 시스템을 훨씬 능가할 거예요. 타격 목표에 대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한 선택성을 지니고 있으니, 책 한 권 속의 특정 페이지까지 정확히 맞힐 수 있겠죠. 지금껏 그 어떤 무기 시스템도 갖지 못한 특성일 거예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점이 있어요. 바로 기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전기장의 부피, 강도, 그리고 대전된 공기의 양 사이의 상관곡선을 여러 차례 측정하고 계산했는데 매번 낙관적인 결과가 나왔어요. 하지만 그 상관곡선은 좁은 실내에서 측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실외 대기층의 넓은 면적에는 부합하지 않았던 거예요. 후자의 경우, 실전 상황에 맞는 광범위한 대기 전기장을 형성하려면 필요한 대전된 공기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급격히 증가하죠. 또 대전된 공기를 지속적으로 방출해 대기 전기장을 장기간 유지하기 위한 거대한 시스템도 필요하고요. 경제적인 요소를 차치하더라도 전쟁 중에 이런 시스템은 우선적으로 적의 타격 목표가 되겠죠.
SETI@home은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 수천 대의 유휴 능력을 이용해 외계 문명을 탐색하는 거대한 실험이었다. SETI@home 프로그램은 특수한 화면보호기 프로그램으로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인 아레시보(Arecibo)관측소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외계 문명 탐색을 돕는 역할을 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 가운데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려면 대형컴퓨터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과학자들이 대형컴퓨터 한 대를 사용하는 것보다 ‘작은’ 컴퓨터를 대량으로 이용해 작업을 분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판단으로 고안해 낸 임시방편이었다. 매일 아레시보에서 수신한 데이터는 고밀도 디지털 테이프에 기록되어 캘리포니아대학교에 설치된 연구 기지로 전송되며, 그 후 이 데이터는 0.25Mb 크기의 작업 단위로 나뉘어 SETI@home의 메인 서버를 통해 전 세계의 수많은 개인용 컴퓨터로 전송되었다. 전 세계의 인터넷 사용자들은 이 프로젝트의 홈페이지에서 특수한 화면보호기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 설치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사용자가 휴식을 취할 때마다 화면보호기 프로그램이 작동하면서 겉으로는 쉬는 것처럼 보이는 컴퓨터가 외계인 찾기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었다. 즉, 화면보호기 프로그램을 통해 SETI@home에서 분할된 ‘작업 단위’ 데이터를 수신하고 분석한 뒤, 그 결과를 자동으로 메인 서버로 전송하고 다시 또 새로운 작업 단위를 수신해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난 이미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구상섬전은 번개에 의해 생성된 것이 아니라 자연계에 이미 존재하는 구조예요.” “번개는 그저 그것에 불을 붙이거나 촉발하기만 했을 뿐이라는 뜻이에요?” 린윈이 물었다. “정확해요. 전류가 전등을 환히 밝히지만, 전등 자체는 이미 존재하는 것과 같아요.” “자,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볼게요……. 맙소사, 그 개념으로 시베리아 기지의 일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겠어요!” “맞아요. 3141 기지에서 만들어진 스물일곱 개의 구상섬전과 그것을 만들어 낸 인공 번개의 매개변수는 아무 관련도 없어요. 그저 그 구조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자극을 받아서 나타난 것뿐이에요!” “그 구조가 지하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니, 왜 안 되겠어요! 대지진 전에 땅이 갈라진 틈으로 구상섬전이 빠져나오는 걸 본 사람들이 많잖아요.” 우리 둘 다 흥분감을 주체할 수 없어 이리저리 서성였다. “그러면 과거 연구의 오류가 분명해졌어요. 구상섬전을 ‘생성’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발견’해야 했던 거예요! 다시 말해서 번개를 시뮬레이션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번개 자체의 성질이나 구조도 아니고, 자기장이나 마이크로파 같은 외부 요인도 아니에요. 그보다는 번개가 최대한 넓은 공간에 퍼지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에요!”
쉬 대령이 말했다. “과학 연구란 바로 이런 것일 테지. 과거의 그 수많은 오류들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모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어.”
이때 흰 연기가 모니터 앞을 한 겹 가렸다. 뒤에 있는 딩이가 내뿜은 담배 연기였다. 그가 어느새 또 파이프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러분은 방금 물질의 파동-입자 이중성을 목격했어요.” 딩이가 화면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짧은 순간에 거품과 나무 블록은 모두 파동의 성질을 띠고 공명했어요. 그 공명 속에서 둘은 하나가 된 겁니다. 나무 블록의 파동은 굉전자의 파동이 방출한 에너지를 흡수했고요. 그 후 각각 입자의 성질을 회복하자 타버린 나무 조각이 다시 원래 위치에 나타나 실체를 이뤘죠. 이게 바로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한 수수께끼, 구상섬전이 지닌 목표 선택성에 대한 설명이에요. 구상섬전의 에너지에 맞았을 때, 목표물은 파동 상태였고, 근본적으로 원래 그 위치에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연히 목표물 주위에 있던 다른 것들은 그 에너지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거죠. “어째서 목표물만 파동의 성질을 띠고 그 아래 종이는 그렇지 않은 건가요?” “그건 한 물체의 경계조건에 의해 결정돼요. 이미지 처리 프로그램이 사진에서 인물 사진을 자동으로 추출하는 기능과 유사해요.” “또 다른 수수께끼의 해답도 찾았어요. 구상섬전의 투과성이요!” 린윈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굉전자가 파동의 성질을 띨 때는 자연스럽게 물체를 투과할 수 있고, 크기가 비슷한 구멍을 만나면 회절현상도 나타나요.”
“생명이 미미한 존재인가요?”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이라는 물질의 운동 형태는 다른 물질의 운동과 비교해 더 우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아요. 생명에서 새로운 물리 법칙을 찾을 수 없으므로 한 사람의 죽음과 얼음 한 조각의 융해는 내 관점에서 볼 때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어요. 천 박사는 가끔 생각이 너무 많아요. 우주의 궁극적인 법칙을 기준으로 삶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세요. 그렇게 살면 훨씬 편안할 거예요.”
“어떻게 된 거야?” 캉 중령이 뇌구 무기 뒤에 있는 사수에게 소리쳤다. “눈 뜨고 목표를 조준한 후에 눈을 감으라고 했잖아!” “그렇게 했습니다. 조준은 완벽했습니다!” 사수인 상사가 말했다. “그럼…… 무기를 점검해!” “그러실 필요 없어요. 무기와 사수의 조준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딩이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구상섬전이 전자라는 걸 잊지 마세요.” “양자 효과가 나타났다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딩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관측자가 있을 때 그것들의 상태는 하나의 확정값으로 붕괴되는데 그 값이 우리가 거시 세계에서 경험하는 것과 부합하기 때문에 그것이 목표물을 맞히게 되죠. 하지만 관측자가 없을 때 그것들은 양자 상태로 존재하고, 그 모든 것이 불확정적이에요. 그때는 그 위치를 확률로만 나타낼 수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발사된 구상섬전들은 사실상 전자구름*의 형태로 존재하죠. 말하자면 확률구름이고, 목표를 맞출 확률은 매우 낮아요.”
“다시 한번 해봐요. 확률구름이 뭔지 보자고요!” 린윈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딩이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요. 양자 상태는 관측자가 없을 때만 나타나요. 관측자가 등장하는 순간, 그건 우리의 경험적 현실로 붕괴돼요. 그러니까 우리는 영원히 확률구름을 볼 수 없어요.”
딩이가 내 머릿속 생각을 털어내려는 듯 창문 쪽으로 손을 휘저었다. “불가능해요. 우린 절대로 그들을 볼 수 없어요. 그들의 붕괴 상태가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죠. 그들은 양자 상태의 특정한 한 확률 안에서만 살아 있는 상태로 존재할 수 있어요. 관측자인 우리가 등장하는 순간 그들은 즉시 소멸 상태로 붕괴되어 유골함이나 무덤으로 돌아가게 되죠.” “그들이 다른 평행 세계에 살고 있다는 뜻이에요?” “아뇨.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들은 우리 세계에 살고 있어요. 그들의 확률구름은 상당히 넓은 범위를 덮고 있을 수 있어요. 어쩌면 그들은 지금 이 방 안에, 바로 당신 뒤에 서 있을지도 몰라요.” 나는 등줄기가 오싹했다. 딩이가 몸을 돌려 내 뒤를 가리켰다. “하지만 당신이 돌아보면, 그들은 즉시 붕괴되어 소멸 상태로 돌아가요. 날 믿어요. 당신도, 또 다른 누구도 그들을 절대로 볼 수 없어요. 카메라를 포함한 그 어떤 관측자도 그들의 존재를 탐지할 수 없고요.”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단지 적절한 수학적모델을 사용해 이미 얻은 대기교란 이미지를 분석함으로써 토네이도를 생성할 수 있는 대기교란(나중에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기교란을 ‘알’이라고 불렀다.)을 식별하는 것이었다.
로스 박사가 말했다 “모두 아시다시피 토네이도는 보통 강한 뇌우에서 발생합니다. 뇌우 속의 따듯하고 습한 공기가 상승하면서 차가운 공기층을 뚫고 올라가면, 점차 냉각되면서 수증기가 빗방울이나 우박으로 응결되지요. 냉각된 공기는 이 빗방울이나 우박을 싣고 아래로 가라앉고, 이 가라앉은 공기는 하층의 따듯한 공기와 지구의 자전 등의 영향으로 다시 말려 올라가면서 결국 토네이도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때, 가장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푸른 태양의 속에서 수많은 작은 별들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별들은 태양 표면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크기가 제각각인 어떤 물체로 변했다. 그 날아가는 물체가 무엇인지 깨달은 순간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것은 바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천막이었다. 푸른 태양에서 튀어나온 그 천막 조각들은 질감이 뚜렷해 결코 환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기가 전부 달랐다. 어떤 것은 원래 천막보다 더 커서 마치 하늘을 떠다니는 거대한 그림자처럼 보였다. 작은 것은 아주 작은 파편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천막 구조물의 원래 형태를 그대로 갖추고 있어 마치 정교하게 축소된 모형 같았다. 이 천막들은 양자 중첩 상태에 있었고, 사람들이 관측할 때마다 곧바로 붕괴되어 파괴된 상태로 변하더니 잔상을 남기고 허공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푸른 태양에서 수없이 많은 양자 상태의 천막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는 천막의 확률구름으로, 주변으로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푸른 태양 또한 확률구름에 휩싸였으며 오직 관측자만이 그 팽창을 억제할 수 있었다.
마침내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책상 위 컴퓨터와 사람들의 휴대폰에서 가벼운 파열음이 났다. 바로 전자 칩이 파괴되는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작은 파편들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컴퓨터 외장 케이스를 뚫고 나와 사람들의 눈앞을 날아다녔다. 완전한 형태의 CPU와 메모리 모듈을 비롯한 각종 칩들이었다. 양자 중첩 상태의 칩은 동시에 여러 위치에 존재하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칩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회의실은 순식간에 빽빽한 칩의 확률구름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내 사람들의 시선이 무형의 빗자루처럼 그 칩들을 파괴 상태로 붕괴시켰다. 그것들은 저마다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고, 컴퓨터와 휴대폰 속에서 재로 붕괴되었다. 회의실을 가득 채웠던 칩들이 사라지고 허공은 다시 텅 빈 상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