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947)
원제 : 我在北京送快递
저자 : 후안옌(胡安焉)
역자 : 문현선
출판연도 : 원서-2023, 번역서-2025
이 책은 전세계에서 200만권이 팔렸고 16개국에서 판권계약이 체결되었고 중국의 문학상을 여러개 받았단다. 출판사의 소개이므로 어느 정도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출판사도 허위,과장 광고를 하는 것은 다른 업종의 장사와 전혀 다를 바 없다)
나는 그런 사전정보를 모르고 책 제목에 이끌려서(직업에 대한 소개는 언제나 흥미롭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올해에 건진 최고의 성과라고 믿는 '밀리의 서재'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다.)
이 책은 크게 보아 1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북경의 택배기사 이야기이고 2부는 북경의 택배기사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열 몇 가지의 일을 전전했던 이야기다.
1부는 지루하였다. 중국의 후진적인 문화에 대해서만 새삼 확인했을 뿐이다. 나는 중국민족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중국에 대한 찬탄 일색이다. 그 시대에 중국은 조선의 입장에서 볼 때 최고 선진국이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나아져야 선진국이 된다. 그것이 선진국이 되기 위한 제1의 필요조건이다. 어느정도 잘 살아야 인권과 품위를 생각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중국 택배업체에서의 후진적인 행태는 50년 전의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았다.
2부에 들어서면서 저자의 놀라운 글솜씨가 나온다. 저자는 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이다. (야간대학을 나왔지만 저자 스스로도 아무 도움도 안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었다. 여유가 있는 집안이 아니므로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이것, 저것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저자는 온순하고 심약하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을 묘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나는 ‘남을 실망시키는 상황’을 몹시 두려워했다. 누가 칭찬하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곧장 부인한 뒤 스스로를 최대한 낮췄다. 나중에 내가 그들이 생각했던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나는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게 나았다. 누가 나를 좋게 보면 언젠가 간파될 거라는 위기감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를 계속해서 칭찬하는 사람은 피하고 멀리했다. 그러면 나는 ‘버리는 사람’이 되지, (상상 속에서) 결국 ‘버려지는 사람’은 되지 않았다. 그건 이성적인 전략이라기보다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저자는 글을 쓸 때 자신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블로그에 그 글을 올렸다. 조회수는 순식간에 폭발했고 종국에는 이런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쓰게 됐다. 저자는 이 책을 내기 전에 열몇가지의 직업을 전전하면서 그야말로 악전고투한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수입은 최저생계비 정도다. 저축은 꿈도 못꾸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이 책 한 권으로 저자가 지난 이십년 동안 고생고생하면서 번 돈의 수백배에 달하는 돈을 거머쥐게 되었으니 인생은 역시 재미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재미는 의외(意外)에서 나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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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선형으로 상승한다’는 말을 누가 제일 먼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절하고 생생한 비유다. 다만 상승의 폭이 무척 작고 속도가 느리다는 말이 빠져 있을 뿐. 인생은 등장하는 이름과 형태만 바뀔 뿐 늘 지난날이 반복되고 우리는 과거에 만났던 사람을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만난다. 타인은 나와의 관계만 있지, 개성은 없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를 사귀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전 여자 친구와 비슷하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단순한 착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두 여자는 이름과 외모가 달라도 ‘내 여자 친구’를 연기하면서 그 배역에 맞춰 공통된 면모를 보여줄 뿐이다. 배우가 다르고 각본이 다를지라도 똑같은 인물을 연기하면 두 배우가 보여주는 모습이 상당히 비슷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면 다음번 여자 친구도 지금의 여자 친구와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 확신하게 된다. 첫 여자 친구를 사귀었을 때 이미 마지막 여자 친구와 만나고 있던 셈이다. 새로운 회사에서 만난 새로운 상사와 동료 역시 금세 이전의 상사와 동료로 변한다. 그들은 내 인생의 배우들일 뿐이라 어떤 일을 겪고 어떤 대우를 받을지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의 구조, 그런 사람들은 나를 중심으로 그려진 원이고 그들의 반경이 바로 나와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당연히 같은 반경 위에 여러 개의 원이 중첩될 수 있으며, 그건 평면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인생의 한 조각이다.
바로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이 단순한 사람을 좋아한다. 단순한 사람들은 표상을 꿰뚫어 보지 못해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살아가는 날들이 완전히 새로운 날이고 만나는 사람들도 전부 낯선 사람이다. 그들은 똑같은 고통과 행복을 무수히 겪으면서도 매번 처음인 것처럼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기준에 따라 남을 판단하므로 진실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의 진실함을 믿게 할 수는 없다. 반대로 진실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진실함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글쓰기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 시간 동안 내 정신세계는 현실 세계가 척박해지는 만큼 풍요로워졌다.
그런 다음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읽었다. 헤밍웨이가 다루는 소재는 내 현실 생활과 거리가 멀었고 등장인물도 나와 무척 다른, 어떤 면으로는 정반대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빙산 이론’을 제시했다. 빙산이 웅장하게 보이는 이유는 8분의 1만 해수면 위로 드러나고 8분의 7은 수면 밑에 잠겨 상상만 할 수 있어서라고 했다. 문학작품으로 말하자면 수면 위로 드러난 8분의 1은 글과 이미지이고 8분의 7은 사상과 감정이었다. 전자는 작가의 펜이 닿는 곳이고 후자는 전자 안에 포함되었다. 빙산 이론은 글쓰기를 막 시작한 내게 유익한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글로 표현한 부분보다 써내지 않는 부분이 방대하고 묵직해야 했다. 소설의 예술성은 제한된 글자와 이미지 안에 무한한 사상과 감정을 담아내는 데 있었다.
나의 첫 글쓰기는 그것을 실현하려는 시도였다. 나는 여백을 어떻게 남겨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가 아니라 쓰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러다 독서량이 많아지고 시야도 넓어지면서 예술에 깨뜨릴 수 없는 원칙이란 없으며 ‘빙산 이론’은 날카로운 비수일 뿐, 유일한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적응하기 힘든 세상에서 인정받으려 애쓰다가 끊임없이 실망하고 실패했다. 물론 실패를 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었다. 나도 남들한테 인정받으려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었다.
8000자짜리 소설의 원고료가 300위안(약 5만 원)도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받았던 최저 원고료여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으면 어떨까 잠시 꿈꾸었던 나는 빠르게 포기했다.
내 소설은 고지식하고 딱딱하며 비통하고 증오로 가득하다는 인상을 준다. 소설과 비교할 때 이 책은 무척 가볍다. 나부터가 편하게 썼기 때문이다. 지난 일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면 그만이지, 머리를 굴려 이야기를 지어낼 필요가 없어서 부담이 덜했다. 또한 이 책에는 소설에 담을 수 없는 부분, 수면 아래 8분의 7에 해당하는 부분이 들어 있다. 내가 겪은 일들의 맥락, 당시의 느낌과 정신상태, 내가 처한 환경을 설명했다. 객관적인 글쓰기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으니, 내 글 역시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주관적인 시선과 입장에서 사건을 보고 느끼기 때문에 똑같은 사건을 겪어도 사람마다 진술이 다를 수 있다. 나는 최대한 사실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중립을 유지하려 애썼을 뿐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나는 2년여 동안 계속 글을 썼다. 물론 직업은 아니지만 내가 쏟은 열정과 노력만큼은 내가 했던 모든 일을 뛰어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 평소 떠오르는 자잘한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말하고 싶은 자유는 고도의 자아의식을 기반으로 추구하는 개인적 갈망과 자아실현이며 타인과 확실히 구분되는 정신이다. 나는 그런 자유를 동경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더욱 다양하고 다원적으로, 더욱 평등하고 포용적으로, 더욱 풍부하고 다각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자유를 갈망할 수 있게 돼야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할 것이기 때문에 좁은 외나무다리에서 부딪칠 필요가 없어진다. 유전적 차원에서 환경에 대한 적응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처럼, 사회 전체의 행복은 사회 구성원의 정신적 다양성에 기반한다. 나는 진리의 추구가 진리의 소유보다 소중하다는 도리스 레싱의 말에 동의한다. 자유도 진리와 마찬가지로, 볼 수만 있을 뿐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평생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자유를 추구하는 게 자유를 얻는 것보다 중요하며 그것이 모든 사람,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유는 이상과 신념처럼 삶의 지렛목이다.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글을 잘 쓰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정말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기 때문이다.
나는 고객이 돈을 쓰도록 설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손님을 두고 동료와 다투지도 못했다. 한가할 때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면 언제나 동료에게 양보했다. 다른 사람과 마찰을 빚는 것도 싫고 충돌하는 건 더더욱 싫었다. 대신 동료들과는 사이가 좋았다. 분쟁을 일으키지도 않고 늘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굴었기 때문이다. 서로 적대시하는 그룹 사이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그들 눈에 나는 이상하고 무해한 사람, 욕심 없는 방관자, 혹은 뭘 하는지 모르는 바보로 보였을 듯했다. 점장은 나를 해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애하는 듯했다. 점장은 내가 판매에 재주가 없자 창고로 보냈다. 나 대신 매장에 배치된 창고 직원이 나보다 옷을 훨씬 잘 팔았다. 당시 정부에서 사회보험을 의무화하자 우리 가게도 정부 조사에 대비해 직원 다섯 명에게 사회보험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런데 점장은 능력이 떨어지는 나를 선택했다. 나는 무척 놀랐고 몇몇 동료가 마뜩잖아하는 것도 느껴졌다. 앞으로도 같이 일해야 하는데 괜히 귀찮은 일이 생기고 혹시 다툼이라도 벌어질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직원들 단합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점장의 호의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부모님은 착하게 살라고만 가르치셨지, 자신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하신 적이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멍청하게 굴지 않고 태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사회보험은 노동자가 받아야 하는 합법적인 권리이지, 자본가가 베풀어주는 은혜가 아니다.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품는 동료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불만은 내가 아니라 사측에 품어야 옳다. 지금이라면 원망의 대상을 잘못 고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다. 그렇게 간단한 도리를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그런 이야기를 나눠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탓이었다. 부모님은 평생 공공기관에서 일해 시장경제에 대해 모르셨다. 주식투자를 하는 동료를 투기꾼이라며 불법을 저지르는 것처럼 탄식하셨던 분들이다. 개인의 인지 수준은 사회 전체의 인지 수준에 영향을 받는다. 사회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 보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토론하면 개인도 자극을 받게 되고 인식이 높아진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보가 폐쇄적이었고 인터넷도 보급되기 전이라 문제가 생기면 논의할 대상이 주변 지인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 집은 외지 출신이라 주변에 친척이 없었고 부모님은 성격이 내성적이었다. 특히 농민 출신인 아버지는 도시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회사에도 마음이 맞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설 연휴가 되어도 우리는 딱히 찾아갈 집이 없었다. 정월대보름이 가까워질 무렵에야 부랴부랴 어머니 동료 한두 명을 찾아가는 정도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주유소 직원과 택시 기사는 적은 아니라 해도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 택시 기사들은 일하다 받은 스트레스와 분노를 그렇게 만든 사람한테는 풀 수 없으니 전부 우리한테 풀었다. 기름값이 0.1위안만 올라도 우리한테 화를 내고 우리가 나쁜 사람을 돕는 하수인이라도 되는 양, 자기들이 더 내는 돈을 우리가 받아 챙기기라도 하는 듯 냉소와 조롱을 퍼부었다. 하지만 우리 역시 비슷한 방식과 태도로 그들을 대했다. 비천한 사람들은 불만이 생길 때 권력에 반항해 봐야 힘만 들기 때문에 다른 비천한 사람을 괴롭힌다. 누구도 괴롭힐 수 없을 때는 동물을 학대한다. 흔히 사랑을 맹목적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사랑은 맹목이나 공리와 동떨어진, 본심에 충실한 감정이다. 맹목적인 것은 오히려 증오다.
앞에서 택시 기사는 우리가 속임수를 쓸까 봐 의심한다고 했는데 사실 그건 불가능했다. 택시 기사들은 매일 아침 똑같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 주유기를 잘 알았고 경계심이 높았으며 한 푼도 손해 보는 일이 없었다. 속임수를 쓰는 건 다른 부류였다. 우리 팀만 그랬는지 다른 팀이나 다른 주유소에서도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당시에는 현금이 아니라 주유권으로 기름을 넣는 관용차들이 있었다. 어차피 자기 차가 아니어서 관용차 기사들은 심드렁하게 기름을 넣으라고 하고는 얼마나 넣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무고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정말 몰랐는데, 우리 팀의 다른 세 사람은 의기투합해 주유량을 속이고 주유권을 많이 받았다. 어리숙한 사람까지 알면 들키기 쉽다고 생각했는지 나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나중에 그들의 속임수가 발각되었을 때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용차 기사는 책임을 묻지 않고 몇 마디 호통만 치고 말았다. 심지어 많이 받아 간 주유권을 돌려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애당초 관공서 주유권이라 많게 내든 적게 내든 개의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 기사는 그저 내 동료들이 자기를 무시하고 속이려 들었다는 데 분노했던 것 같다. 우리 팀은 더 받은 주유권을 현금으로 바꿔 경비로 썼다. 이게 내가 무고하지 않다고 했던 이유다. 그 일을 폭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황을 알면서도 그 돈으로 함께 차를 마셨다. 사람은 정말 쉽게 부패할 수 있다.
당시의 나는 순종적이라 누구한테든 좋다고 했고, 내 반응과 남들의 반응이 다르면 당황하고 곤혹스러워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 대부분이 문제를 자기 각도에서만 볼 뿐, 남의 각도에서 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손해를 보면서도 원망하지 않을 만큼 마음이 넓지는 않았다. 마음속에 불만과 원망이 쌓였고, 나중에는 짜증과 증오로 변했다. 계속 손해 보지 않으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따지고 들어야 했다. 네가 이기적으로 나오면 나도 이기적으로 나가고 네가 욕심을 부리면 나도 부리겠다는 식이 되어야만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게 아니면 모든 사람과 거리를 두는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거리를 두는 게 훨씬 쉬웠다. 아이스크림 배송일을 할 때부터 나는 이미 알게 모르게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분명 여러 번 인사했던 고객인데도 매번 처음 보는 사람처럼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며 서먹하게 굴었다. 그들은 속으로 ‘나를 기억 못하나?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잊어버릴 수 있지?’ 하며 의아해했을 것이다. 나는 서먹한 태도가 남의 감정을 해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은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빈틈없는 규칙에 따라 굴러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분을 쌓을 필요 없이 규칙만 준수하면 효율적으로 일이 처리되는 ‘편안한’ 세상이었다. 당시의 나는 막 학교를 졸업했을 때보다 사교성이 떨어져 있었지만, 아직 대인기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후의 대인기피 증세도 복잡한 요인이 겹쳐져 생겼지, 앞서 이야기한 요인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나는 ‘남을 실망시키는 상황’을 몹시 두려워했다. 누가 칭찬하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곧장 부인한 뒤 스스로를 최대한 낮췄다. 나중에 내가 그들이 생각했던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나는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게 나았다. 누가 나를 좋게 보면 언젠가 간파될 거라는 위기감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를 계속해서 칭찬하는 사람은 피하고 멀리했다. 그러면 나는 ‘버리는 사람’이 되지, (상상 속에서) 결국 ‘버려지는 사람’은 되지 않았다. 그건 이성적인 전략이라기보다 일종의 방어기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