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과 추행(#03)

한심한 대법원 판결

by N 변호사

추행죄에 대하여 고등군사법원이 판단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검찰관은 공소사실과 같은 행위가 군형법상의 강제추행죄 이외에 군형법상 추행죄에도 해당한다고 주장하므로 이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군형법상의 추행죄는 군 내부의 건전한 공적생활을 영위하고 이른바 군대가정의 성적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서 그 주된 보호법익은 ‘개인의 성적자유’가 아니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이다.


따라서 개인의 성적자유를 주된 보호법익으로 하는 형법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추행’의 개념과 달리 군형법상 추행죄에서의 ‘추행’이라 함은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행위로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행위자의 의사, 구체적 행위태양,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 그 행위가 공동생활이나 군기에 미치는 영향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8도2222판결 참조).


원심이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피해자가 생활하고 있는 소속대 생활관에 들어가 피해자의 침대 옆에 누워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하고, 피고인도 피해자의 성기를 약 10분간 만지는 등의 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


살피건대, 군의 공동생활을 위해서 마련된 영내 생활관에서 피해자보다 선임인 피고인이 성적만족을 위하여 후임 병사인 피해자의 성기를 만지는 등의 행위는 전투력 보존을 위한 군 내부의 건전한 공동생활을 해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인 만족행위이므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행위로 판단된다.


한편 변호인은 강제추행의 경우에 추행죄가 동시에 성립한다고 하면 강제추행의 경우에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구 군형법 제92조의 8)할 수 있도록 한 법조항의 입법취지가 몰각되므로 강제력을 사용하여 추행한 경우에는 군형법상 강제추행죄만 성립하고 별도로 추행죄를 인정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항변하므로 살피건대, 군형법상 강제추행죄와 추행죄는 ‘추행’이라는 기본적 사실행위를 공통으로 포함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는 경우에 추행죄가 동시에 성립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소사실과 같이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피해자 개인의 성적자유도 침해하면서 또 한편으로 공동 생활하는 군의 영내생활관에서 성적만족행위를 통하여 군대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강제추행죄가 성립함과 동시에 별도로 추행죄의 구성요건도 충족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 사건과 같이 군의 영내에서 강제로 추행하는 경우에만 추행죄가 별도로 성립할 수 있고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는 모든 경우에 추행죄도 동시에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이상 강제추행의 경우에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입법취지가 몰각된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경우 군형법상 추행죄가 유죄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검찰관의 항소논지는 이유있다.]


고등군사법원의 위 판결내용은 종래의 관행적인 판결 내용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즉, 내 주장에 대하여 일일이 판단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고등군사법원은 지금까지의 관행대로라면 모든 강제추행죄는 예외없이 추행죄가 될 것이므로 강제추행죄를 친고죄로 규정해 놓은 입법자의 의도가 무시된다는 내 주장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언급하였다.


그 문장이 난해하여 한, 두 번 읽어서는 쉽게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 난해한 문장은 심오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문장력이 부족해서일 뿐이다. - 여러 번 정독한 결과 강제추행죄는 성립하되 추행죄는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설사 그런 경우가 있을 수가 있다고 해도 그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므로 강제추행죄를 친고죄로 만든 입법자의 의도는 여전히 무시될 것이다.


그리고 고등군사법원의 법리해석대로라면 이 사건처럼 다른 사람들 모르게 가해자와 피해자 단 둘이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강제추행 행위가 행하여진 경우에는 추행죄가 성립할 수가 없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고등군사법원은 <군형법상 강제추행죄와 추행죄는 ‘추행’이라는 기본적 사실행위를 공통으로 포함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는 경우에 추행죄가 동시에 성립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판단함으로써 내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 중 큰 틀은 인정하였다. 그러면서도 다음과 같이 법리 전개를 하고 있다.


[변호인은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는 경우에는 항상 추행죄가 성립하므로 강제추행죄를 친고죄로 둔 이유가 몰각된다고 주장한다. / 일반적인 경우에는 변호인의 위와같은 주장이 맞다. / 그렇지만, 공동 생활하는 군의 영내생활관에서 성적만족행위를 통하여 군대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강제추행죄가 성립함과 동시에 별도로 추행죄의 구성요건도 충족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 이 사건과 같이 군의 영내에서 강제로 추행하는 경우에만 추행죄가 별도로 성립할 수 있고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는 모든 경우에 추행죄도 동시에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이상 강제추행의 경우에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입법취지가 몰각된다고 볼 수 없다 ]


위와 같은 고등군사법원의 판단은, 군인이 군인을 상대로 하는 강제추행 행위가 군의 영외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강제추행죄만 성립하고 추행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추행죄의 보호법익이 ‘군대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것’인데 영외에서 추행 행위가 이루어진다면 군대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지는 않는 것이므로 추행죄는 성립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변호인의 주장과 달리 강제추행죄와 추행죄가 항상 상상적 경합범 형태로 성립하지는 않으므로 강제추행죄를 친고죄로 둔 입법목적은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위와같은 법리대로 영외에서 행위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추행죄가 성립하지 않고 강제추행죄만 성립한다는 전제가 성립할 수 있다면 이 사건의 경우에서처럼 피고인이 피해자를 강제추행할 때 당사자들 외에는 아무도 그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경우에는 추행죄는 성립할 여지가 없다. 영외에서 이루어지는 강제추행 행위와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중에라도 피해자가 신고하여 영내에 그 사실이 퍼지게 됨으로써 결국 군기문란의 결과가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영외에서 벌어진 추행행위도 마찬가지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영외에서 당한 피해자가 나중에 신고하면 군기문란의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고등군사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이 사건 행위 당시에 주변 사람들이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군기문란의 가능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추행죄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어야 논리 일관성이 있었다.


그런데 대법원에 제출할 상고이유서를 준비하는 동안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강간과 간통이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고 그것이 대법원 사이트에 등재되어 공개된 것이다 나는 법률이론상 강간과 간통이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판례가 생기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자기 아내가 강간을 당하였는데 다시 그 아내와 강간범을 간통으로 고소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강간이나 간통은 친고죄이므로 고소를 해줘야 사건이 성립되고 그 사건에 관하여 판례가 형성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즉, 남편이 아내와 상간자(相姦者)인 상대방을 간통으로 고소했는데 아내가 사실은 강간을 당하였다면서 상대방을 강간으로 고소하는 경우는 흔히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 검사는 그 아내가 상대방으로부터 강간을 당한 것인지, 상대방과 화간(和姦)을 했는지를 수사 후에 확정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 기소하므로 현실적으로는 그런 판례가 생기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 2013.9.12. 선고 2013도5893 판결에서는 <강간의 피해자가 배우자 있는 자인 경우 그 성관계는 피해자의 자의(自意)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강간 피해자에게 따로 간통죄가 성립할 수는 없다. 이 경우 가해자도 강간죄의 죄책을 지는 외에 강간 피해자의 배우자가 자기 아내와 상간했다는 이유로 간통죄로 고소하였다고 하여 그에 따른 간통죄의 죄책을 지지는 아니한다>라고 명확하게 판단하였다.


나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 동안 강제추행죄와 추행죄가 상상적 경합범으로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는 논리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양자의 보호법익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간죄와 간통죄의 보호법익도 완전히 달랐다. 따라서, 강간과 간통이 상상적 경합범으로 동시에 성립할 수 없듯이 강제추행과 추행도 상상적 경합 관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면서 신이 났다. 아무리 내 논리를 점검해보고, 또 점검해봐도 내 스스로는 허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대법원에서 고등군사법원의 판결이 파기되기를 기다렸다.


대법원은 법률심이라고 한다. 사실관계에 판단은 하급심에게 맡기고 법률적 판단에 주력한다는 뜻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이 관심 가지기에 아주 좋은 사안이었다. 피고인이 자백했으니 사실관계는 따질 필요가 없고 강제추행죄와 추행죄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법률적 판단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대법원 선고 기일이 잡혔다.


선고 결과는 상고기각이었다. 나는 크게 실망했다. 그리고, 판결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선고 당일에는 대법관이 판결 주문과 낭독할 뿐 판결 이유를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답게 판결문에 나를 압도할 수 있는 심오하면서도 명쾌한 판결 이유가 담겨 있기를 기대했다.


판결문을 송달받았다. 그 이유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다음의 그 판결이유다. 요약이 아니라 전체 문장이다.


[원심(고등군사법원)의 판결 이유를 관련 법령 및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추행의 점이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3도978 판결 등 참조),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군형법상 추행죄의 성립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도대체 왜 강제추행죄와 추행죄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무 내용이 없다. 그래서 판결문에서 인용한 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3도978 판결을 찾아 보았다. 그 판결문에서 강제추행과 추행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 이유가 자세히 설시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건 판결문에서는 그 이유를 생략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다음은 그 인용된 대법원 판결에 기재된 판결 이유의 전체 문장이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령 및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이 군형법상 추행죄의 성립범위나 군인등 준강제추행죄와 추행죄의 죄수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


참으로 놀라운 - 미치도록 한심한 -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관들이 볼 때 내가 그 동안 주장한 내용은 판결 이유를 쓸만한 가치도 없이 허황되었던 모양이다. 아예 읽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만일 김갑돌이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중죄인이라면 열심히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쁜 대법관들은 "뭐, 나쁜 짓 했네.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면 아주 형을 잘 받았네."하고 가볍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또는 김갑돌이 힘있는 국회의원의 아들이라도 되었다면 사건 기록을 열심히 읽었을지도 모른다.


군형법상의 강제추행죄는 2013. 4. 5.자로 개정되어 더 이상 친고죄가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군검찰관들이 피해자가 고소취소를 하는 경우에도 강제추행죄로 기소할 수 있으므로 더 이상 추행죄로 기소하는 일은 없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잘못되었던 관행은 영원히 면죄부를 얻게 될 것이다.


혹은 앞으로도 군검찰관들이 여전히 강제추행죄와 추행죄의 상상적 경합범으로 기소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전히 두 가지 죄 모두에 대해서 유죄가 선고될 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런 관행이 앞으로도 유지된다고 하면 관여 군검찰관, 군판사는 법률적 게으름에 대하여 마땅히 부끄러워 해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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