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 변호사 Feb 28. 2021

안목

판관의 자격과 임무

A가 선물로 받은 와인이라면서, 수제품(?) 와인이라면서, 아주 비싼 것이라면서 내게 그것을 다시 선물하였다.


와인을 좋아하고 잘 안다는 B, C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회심의 그 와인을 꺼냈다. 두 사람은 각자 한 잔씩, 한껏 기대를 가지고 눈을 감고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마셨다. 동시에 두사람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고급 와인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미감味感이 둔한 나로서는 와인 맛을 보고 고급이다, 아니다를 평가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물건에는 가치가 매겨진다. 상등품, 중등품, 하등품이 존재한다.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연경관에도 사람들은 등급을 부여한다. 명승지名勝地라는 이름을 붙이고 상등품 대접을 한다.


품질을 구별하는 안목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만이 제대로 할 수 있다. 그 외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흉내낼 뿐이다.


대체로 가격과 품질은 일치한다. 그러나 시장기능은 불완전하므로 - 모두가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 때로는 가격과 품질이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가격이 품질을 결정한다. 문외한에게는 비싼 것이 좋은 것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물건 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영화, 책에도 품질이 있다. 이런 무형의 창작물에 대해서는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차이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같은 급에서만 취향이 논해질 수 있다. 바둑 하수에게는 기풍棋風이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목이 있으면 대상물에 붙어 있는 가격이나 세상의 평가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그것을 즐길 수 있다. 거꾸로 가치가 없는 것에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것을 보면 의아함을 넘어 화가 나기까지 한다.


나는 미술, 음악에 안목이 없다. 그러나 글과 영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목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봤자 전문가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수준 이하의 영화라서 보다가 만 영화에 영화상이 시상되는 것을 보면 내 안목이 형편없든지, 아니면 심사위원들이 엉터리이든지 둘 중 하나다. 엉터리가 판관判官인 경우는 두가지다. 실력이 없는데 정치적인 힘으로 판관의 지위에 올라갔거나, 실력은 있는데 소신과 용기가 없어서 무력하게 다른 사람들의 뜻에 따라갔던가.


관객이 많이 들었다고 영화상을 주면 안된다. 돈 많으면 무조건 형이지 하는 것은 웃자고 하는 소리로 그쳐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유튜브에게 감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