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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Jun 26. 2021

뇌 가소성


동해안 종주를 할 때 비가 오는 날 자전거를 장시간 탔다. 자전거 신발이 비에 흠뻑 젖었다. 그 다음날도 계속 자전거를 타야 했으므로 신발을 말려야했다. 헤어 드라이어의 송풍구를 신발의 발넣는 곳에 넣고 뜨거운 바람을 불어 넣었다. 10여분 후에 신발 안에 손을 넣어 보니 따뜻하게 말라 있었다. 나의 아이디어를 신통하게 여기며 흐뭇해했다.

 

신발을 신었다.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신발을 벗었다. 신발 안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깔창(sole)이 있다. 그 깔창이 뜨거운 열기에 일단 녹았다가 다시 굳으면서 형태가 변경되어 버렸다. 그 변경된 형태 때문에 신발 신기가 불편해진 것이었다. 플라스틱은 이렇게 (1)형태가 변할 수 있고, (2)변형된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 이런 것이 가소성이다.

 

가소성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고체가 외부에서 탄성 한계 이상의 힘을 받아 형태가 바뀐 뒤 그 힘이 없어져도 본래의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이라고 되어 있다.

 

가소성을 한자로 쓰면 可塑性이 된다. 미대에는 조소(彫塑)과가 있다. 彫는 칼 같은 것으로 파서 새긴다는 뜻이고 塑는 흙같은 것으로 빚는다는 뜻이다.

 

인간의 몸에는 신경(神經)이 있다. 神은 정신, 經은 다스린다는 의미다. 신경계는 자극 감지, 그리고 반응(reaction) 기능을 담당한다. 권투선수가 복싱경기를 할 때 상대방의 주먹을 피하고 상대방의 얼굴을 가격하는 등의 동작을 신경계가 담당한다. 뇌와 척수가 중추신경계를 구성한다. 신경계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를 뉴런이라고 한다.

 

신경은 가소성이 있다. 영어로는 neuroplasticity라고 한다. 신경가소성 또는 뇌가소성이라고 번역한다.

 

The more you practice something, the more, somehow, your brain changes. That is called neuroplasticity.

 

운동선수가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면 뇌는 신경세포를 연결하여 그 동작을 쉽게 할 수 있는 일시적인 경로(pathway)를 만든다. 계속 되풀이하면 아예 그 동작을 유지하도록 본격적으로 도로를 닦는다. 뇌의 구조가 변한 것이다. 자전거 신발의 깔창의 형태가 변한 것처럼.

 

골프스윙을 바꾸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반에 길을 잘못 들면 골프 실력은 향상되지 않는다. 같은 스윙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근육은 그 잘못된 스윙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쪽으로 도로가 단단하게 닦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 동안 매일 새로운 스윙 형태로 연습을 하면 골프 실력이 늘 수 있다. 뇌가 새로운 스윙형태를 근육에 입력시키므로. 기존 도로를 없애버리고 새 도로를 만드므로.

 

일류 피아니스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가락을 빨리 움직이면서도 정확하게 건반을 두드릴 수 있는 이유도 그런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뇌가 변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뇌는 심장의 박동능력을 좋게 만든다. 마라톤 선수의 맥박이 느린 이유가 그것에 있다. 자주 박동하지 않아도 피를 충분히 뿜어줄 수 있을만큼 심장 박동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열심히 근육운동을 하면 근육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반대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을 없앤다. "필요로 하면 주겠고, 쓰지 않으면 도로 뺏겠다"는 것이다.

 

이상은 넷플릭스의 다큐 필림인 <휴먼 : 몸의 세계>에서 배운 내용이다.

 

동해안 종주를 같이 간 웅태형은 나의 고등학교 1년 선배이시다. 5년 전쯤인가 심장 혈관에 스텐트(stent)를 세 개나 심었다. 스텐트는 아주 작은 관이다. 좁아진 혈관에 그 관을 밀어 넣어서 피가 잘 흐르게 하는 것이다.

 

만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 명실상부한 싱글 골퍼 였는데 후반 나인 홀은 숨이 차서 스코어가 엉망이 되었다.

 

그러나 꾸준하게 걷고, 체중을 줄이면서 몸이 단단해지기 시작하였다. 어느날 자전거를 타겠다고 결심하였다. 내가 소개하는 곳에 가서 자전거를 샀다. 처음에 7km 정도를 탔다. 내가 뒤따라 갔다. 7km를 가는데 세 번을 쉬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탔다. 나와 함께 국토종주를 다녔다. 때로는 지친 표정이 역력한데 쉽게 정차하지 않았다.

 

이 번 동해안종주 때 항상 앞서 나갔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에 혼자서 낙동강 자전거 종주에 나섰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출발점인 상주에 갔다. 출발시간이 오후 12시 30분이었다. 그 무더운 날 110km를 갔다.

 

그 다음날은 6월 21일 하지였다. 엄청나게 무더운 날이었다. 심한 오르막길도 두 곳이나 있는 코스였다. 그런데 무려 165.64km를 탔다. 1박 2일만에 280km의 [상주->낙동강하구둑] 코스를 완주한 것이다.

 

꾸준히 노력하면 그 노력의 방향에 따라 뇌의 구조가 변한다. 뇌의 구조가 변하면 그에 따라 몸의 강도와 기능이 변한다. 약한 사람은 강하게 되고, 서툰 사람은 능숙하게 된다. 웅태형이 그것을 입증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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