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종주 1일차

자전거 여행

by N 변호사

2021-06-03.

340km 거리의 동해안 자전거길 종주를 떠나는 날이다. 이 번 여행의 동반자는 웅태형과 재식이다. 경부고속터미널의 간이식당에서 우동을 먹었다. 7시 40분에 영덕으로 떠나는 버스를 탔다. 버스기사가 불친절하였다. 버스 밑에 있는 적재함은 세 칸이었는데 한 칸에 우리 세 대의 자전거를 몰아넣으라고 했다. 옆 칸들은 텅텅 비어 있는데도.


자전거 여행에서 힘든 점 중 하나가 자전거를 옮기는 일이다. 등산객은 버스, 기차, 비행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자전거는 덩치가 크므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제한되어 있다. 전철은 주말 밖에 안된다. 신분당선은 주말에도 접는자전거 밖에 허용 안 된다. 기차도 타지 못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소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수이므로 다수에게 불편하면 안 된다는 논리다. 맹목적 다수결 적용은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전제되어야 제대로 작동된다. 51:49로 정권을 잡은 정당이 나머지 49의 국민을 깔아뭉갠다면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 칸에 자전거 세 대를 포개 놓기 위해서는 적재함 안으로 기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허리가 삐끗했다. 점점 아파지기 시작했다. 이 버스기사는 그 외에도 이상한 짓을 많이 했다. 휴게소에서 정차하면서 5분 이내에 오라고 해 놓고 자기는 15분 있다가 오고, 안동에서 정차할 때는 15분 있다가 출발한다고 해 놓고 30분이나 있다가 왔다. 부글부글 속이 끓었다. 이런 기사에게 항의하고 언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에 버스기사는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므로 나는 갑질을 하는 사람으로 귀결된다. 정의(正義)도 트렌드를 따른다.


12시쯤 버스는 영덕에 도착했다. 이미 비는 제법 내리고 있었다. 어떤 야외활동이든 비가 반가울 이유는 없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자전거는 장애물에 부딪혀서 쓰러지는 경우보다는 바퀴가 미끄러져서 넘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빗물로 젖은 도로는 마찰력이 떨어지므로 미끄러울 수밖에 없다.


판초 우의를 얼마 전에 샀다. 지난번 영산강 종주 때 마지막 2시간 동안 비가 와서, 처음으로 입고 자전거를 타봤다. 의외로 기능이 뛰어났다. 배낭을 덮을 수 있어서 좋았고 빗물 차단 효과도 좋았다. 얼굴도 비를 맞고 다리도 비를 맞고 신발은 금방 물 찬 보트가 되지만.


이 번에 그 우의를 마지막 순간 집에 놓아두고 왔다. 3박 4일 중 오늘 첫날만 비가 오는데 그것도 오후 늦은 시간부터 오는데 제법 무게가 나가는 우의를 배낭 속에 집어넣고 계속 다니는 것보다는 차라리 오늘 몇 시간 동안 비를 맞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온이 높은 여름 날씨 아닌가.


그러나 비는 예보보다 더 빨리 오전부터 줄곧 내리고 있었다. 비의 양도 예보보다 더 많았다. 영덕버스터미널에서 비가 흐르는 창 바깥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재식이가 편의점 비닐 우의라도 사 입자고 하였다. 우리는 모든 비용을 n 분의 1로 하기로 하였는데 재식이가 총무를 맡았다. 편의점에서 파는 조악한 비닐 우의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싶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그 편의점 4,500원짜리 비닐 우의는 결정적 도움을 줬다. 비닐 우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계속 달리지 못했을 것이다.


힘이 남아돌 때는 배낭 무게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면 배낭의 무게는 코끼리로 변한다. 과장을 하면 어깨에 코끼리가 올라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짐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장비를 안 가져왔을 때는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재앙이 된다. 판초 우의는 꼭 필요한 장비였다.


영덕터미널에서 빗속을 뚫고 출발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영덕터미널에서 동해안 종주 출발점인 해맞이공원 인증센터까지의 길은 네이버와 카카오맵이 달랐다. 네이버지도에서 알려주는 길은 산을 타고 넘는 대신 1km 정도 거리가 짧다. 우리는 네이버의 길로 가기로 했다. 이 번 동해안 종주에서 앞으로 수도 없이 타고 넘게 될 산을, 대뜸 시작부터 타게 된 것이다.


11km 정도를 달려서 해맞이공원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자, 이제 출발이다. 동해안 자전거길 종주는 경북구간과 강원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경북 구간은 영덕에서 시작하여 울진에서 끝난다. 원래의 계획은 경북구간의 종점인 울진의 은어다리 인증센터까지였다. 비가 많이 오고 있었으므로 무리하지 않고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기로 했다.


동해안 종주 코스는 자전거길로 따로 만들어진 곳이 거의 없다. 차들이 다니는 길의 한쪽 옆으로 달린다. 장점은 자전거 도로보다 도로 상태가 좋다. 로드 바이크(사이클)의 경우에 빨리 달리게 하기 위하여 완충장치가 없고 딱딱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울퉁불퉁 정비가 되지 않은 도로를 달릴 때 엉덩이에 충격을 받게 된다. 자전거도로는 제때 제때 정비를 해주지 않기 때문에 노면 상태가 좋지 않다. 자전거도로를 달리다가 자동차도로를 달리면 비단길처럼 느껴진다.


차도를 달리면 위험할 수 있는데 평일인데다가 비가 오고 있어서 그런지 차들이 거의 없었다. 자전거 라이더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우리 같이 정신없는 늙은이들 외에 누가 자전거를 타겠다고 나서겠는가.


공중전화 부스(booth)처럼 생긴 인증센터 앞에서 멈춰 서서 안으로 들어가 국토종주 수첩을 배낭에서 꺼내고 인증스탬프를 찍는 일은 번거롭다. 비가 오는 날에는 훨씬 더 번거로운 작업이 된다. 배낭을 멘 채로 비닐 우의를 그 위에 입었으므로 배낭은 비에 젖지 않는다. 비닐 우의를 먼저 벗고, 배낭을 벗고, 배낭 안에서 국토종주 수첩을 꺼내서 해당 페이지를 찾는데 모자챙에 고여 있던 빗물 몇 방울이 후드득 종주수첩에 떨어졌다. 스탬프잉크에도 떨어졌다.


비닐 우의를 벗는 순간 급격히 추위를 느끼게 된다. 얼른 국토종주수첩을 배낭에 도로 넣고 배낭을 메고 비닐우의를 입어야 한다. 우의는 빗물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체온도 보호해 준다.


자전거 고수인 승훈이는 지난번 영산강 종주가 끝나고 팁을 줬다. (1) 비가 오는 날에는 양말을 벗고 자전거 신발을 신어야 한다. (2) 우의 안은 통풍이 되지 않아 금방 덥게 되므로 아무것도 입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날 우중 라이딩이 끝난 후에야 그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 팁의 유용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오늘 라이딩을 하면서 양말을 벗고 신발을 신었고, 비닐우의 안에는 기능성 이너(inner) 하나만 입었다. 젖은 양말에서 느껴지는 불쾌감이 없었다. 우리는 영산강 종주 때 비를 맞기 전에 이런 팁을 미리 줬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배은망덕하게 승훈이를 성토했다.


비가 올 때는 챙이 있는 모자를 쓴다. 그 챙이 안경으로 비가 바로 떨어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금방 빗물에 안경이 젖어 시야가 흐려진다. 신발 안은 위에서 내리는 빗물뿐만 아니라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이 자전거 바퀴가 지나갈 때 튀기 때문에 금방 한강이 된다. 물속에 맨발을 집어넣고 있는 기분이다.


맞은편에서 버스가 오더니 큰 흙탕물을 튀겼다. 나는 전신으로 그 물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워낙 이미 많이 젖어 있으니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 순간, 아, 이게 막 사는 자의 자유로움이구나 하고 탄성했다. 이왕 버린 몸이라는 말도 실감했다. 잃을 게 없는 자는 무서울 게 없다는 말도 갖다 쓰고 싶었다.


22km의 거리에 있는 고래불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우동을 한 그릇 먹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아무도 시장기를 느끼지 않았으므로 계속 가기로 했다.


빗속의 검푸른 바다는 사납게 보였다. 오른쪽으로 계속 펼쳐지고 있는 바다를 보면서 처음으로 저 바다 끝까지, 그 너머 가보겠다고 결심하고 실행한 옛사람을 생각했다. 인간은 얼마나 용감한 존재인가. 나는 얼마나 용감한가. 용감한 사람이 새 역사를 만든다. 용감한 사람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 세계화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활발하게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되어야 기회가 생긴다. 왕래와 소통을 싫어하는 사람은 소수의 기득권자이다. 기득권자의 정의는, 본인이 기득권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별것도 아닌 것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기득권자이다.


자전거를 달리고, 달려서 20km를 갔다. 월송정 인증센터 직전에 있는 길가 마트에 들렀다. 마트 앞에 있는 평상에 앉아 내리는 비를 보면서 컵라면을 먹었다. 마트 주인도 불친절하였다. 재식이가 화장실을 물어보니 월송정에 있는 공중화장실로 가라고 했다. 여행 초반에 이렇게 싸가지 없는 버스기사, 불친절한 마트 주인을 만나면, 나중에는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18홀 골프에서의 운도 총량이 있다는 것을 내 경험이 말해준다.


내 자전거 안장에는 안장가방(saddle bag)이 달려 있다. 원래는 안장 뒤의 레일에 거치대를 달고 그 거치대와 안장가방의 걸쇠를 연결시키는 구조인데 내 안장 뒤에는 조그만 공구통이 달려 있어서 거치대를 달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찍찍이가 달린 밴드로 고정시켰는데 빗물에 젖어서 그런지 찍찍이의 접착력이 떨어져서 안장가방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상태로 되어 있었다. 난감했다. 임기응변 능력이 탁월한 웅태형은 배낭에서 압박붕대를 꺼내더니 그것을 여러 번 단단하게 감아서 안장가방을 고정시켰다. 그 이후로 안장가방은 사흘 내내 그 상태로 잘 유지되었다. 도대체 왜 압박붕대를 가지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웅태형은 어쨌든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분이시다.


다음은 21km의 거리에 있는 망양휴게소 인증센터이다. 오르막이 제법 있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고통스럽지만 재미가 있다. 또한 오르막, 내리막은 다양성을 준다. 밋밋한 길은 지루하다.


망양휴게소의 경치는 맑은 날에 왔으면 정말 좋을 뻔했다. 높은 언덕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는 2층의 카페로 올라갔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닐우의를 입고 들어서니까 주인은 황급히 나와서 입구의 우산 놓아두는 곳에 비옷을 벗어달라고 부탁했다.


미처 다 마시기도 전에 웅태형은 가자고 했다. 웅태형의 마음으로는 오늘 해지기 전에 종점인 울진은어다리 인증센터까지 가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려면 길을 서둘러야 했다.


동해안 자전거길 마지막 지점인 울진은어다리 인증센터까지는 15km 남짓이다. 온통 비에 젖은 몸이지만 힘을 내서 달렸다.


은어 모양으로 조형되어 있는 다리가 보이는 인증센터에서 스탬프를 찍었다.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원래 세웠던 계획대로 왔다. 그렇다면 내일부터는 여유 있는 라이딩이 될 것이다.


울진 시내에 있는 S 모텔에 투숙했다. 모텔 주인은 친절했다. 우리는 방을 3개 잡고 각자 다른 방에 투숙했다.


급선무는 흠뻑 비에 젖은 라이딩복을 빨고 말리는 일이다. 이너와 상의 라이딩 복은 기능성이라서 금방 마른다. 세면대에서 물로만 대강 빨아서 옷걸이에 넣고 벽에 걸어 놓았다. 패딩 바지는 패딩이 있는 부분이 스펀지라서 잘 마르지 않는다.


살림꾼인 재식이에게 전화가 왔다. 탈수기가 있느냐고 모텔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옥상 가는 계단에 있다고 하더란다. 재식이 덕분에 패딩 바지의 물기는 탈수기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모텔 주인에게 소개받아서 근처의 솥뚜껑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샤워도 했겠다, 배낭 안에 넣어 준비해 온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겠다, 비는 점점 그쳐가고 있겠다, 이미 행복해졌는데 삼겹살도 맛있어서 더욱 행복했다. 식당 사장은 MTB를 오랫동안 탔던 분이었다. 수시로 우리 자리에 와서 자전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기분이 좋아서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술을 많이 마셨다. 아침에 삐끗했던 허리의 통증이 심해져서 모텔에 돌아왔을 때는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동해안일주(1)-경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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