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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Jul 20. 2021

몸으로 사는 것처럼

정신활동도 같다

유로 2020이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끝났다. 그동안 유튜브로 유로 2020의 경기를 하일라이트(highlight)로 봤다. 최고 수준의 경기였다. 부드럽고, 강인하고, 탄력있는 몸으로 폭발적인 스피드를 낸다. 물고기가 유영(游泳)하듯이 수비수를 제친다. 붙잡히고 밀침을 당해도 강력하게 뚫고 나간다. 대포알 같은 슛을 날린다. 어떤 슛은 마구처럼 살아서 움직인다. 수비수는 절대로 떼낼 수 없는 거머리 같다. 책임을 완수하려고 한다. 몸을 사리지 않는 골키퍼는 스파이더맨처럼 날아 다닌다.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그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몸을 단련하고 기술을 연마했을까.


유튜브로 가끔 클래식 공연 동영상을 본다. 며칠 전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참가하여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모습을 봤다. 40여분간 그녀는 천둥이 되기도 하고 깡총깡총 토끼도 된다.  아주 조용히 속삭이기도 한다. 본인의 손가락이 내는 소리에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현악기 연주자든, 관악기 연주자든,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든 복잡하고 때로는 엄청나게 빠른 음을 연주하면서 한치의 오차도 없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렇다. 그들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실황 연주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바쳐서 노력을 했을까.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젓는다. 크랭크의 1분 회전수를(RPM)를 속도계에서 본다. 출발할 때는 RPM 90을 내는 것이 힘들다. 그러나 몸이 땀으로 젖을 때쯤 되면 페달이 가벼워지면서 저절로 RPM이 높아진다.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몸으로 속일 수는 없다. 체중도 정확하게 운동량과 먹는 양에 비례한다. 운동선수가 연습을 하지 않다가 벼락치기로 밤샘하여 몸을 만들 수는 없다. 초일류 피아니스트라고 해도 부단히 연습을 해야 청중 앞에 설 수 있다. 


나는 그 동안 머리로 먹고 살아왔다. 머리를 쓰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엄청난 덩치의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축구장 크기의 배가 물 위를 뜨는 것도 머리, 즉 정신활동에서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머리는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다. 맘껏 게으름을 필 수도 있다. 몸과 달리 벼락치기도 가능하다.


운동선수가 몸을 단련하듯, 악기 연주자가 연습을 하듯 나도 그렇게 꾸준히 정신활동을 하고 싶다. 체력이 약한 운동선수는 좋은 운동선수가 될 수 없다. 정신활동의 영역에서는 집중력이 운동선수의 체력과 마찬가지다. 고된 반복을 통하여 체력이 늘듯이 집중력도 훈련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선수나 연주자는 항상 D-Day가 있다. D-Day에 맞춰 계획을 짜고 연습을 한다. 정신활동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D-Day에 결과물을 내 놓아야 한다. 


박사 학위 논문처럼 D-Day가 주어지는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쉽다. 정말 어려운 일은 무엇을 해야 할지, 언제까지 해야 할지를 스스로 정하고 자율적으로 해내는 일이다. 다짜고짜 쏘기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조준을 하고 다시 쏘고, 또 다시 조준을 하는 과정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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