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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Jul 30. 2022

두 시간 농부

김매기 체험


내가 대학교 3학년 때인가 R선배를 하숙집에서 만났다. 나보다 세 살 많은 75학번이었고 법대 선배셨다. 같은 하숙집에 있었고 같은 과 선배였으므로 당연히 친했다.


그 때는 사법시험의 합격여부를, ‘고시계(考試界)’ 라는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였다. 잡지사가 정부 발표보다 더 빨리 합격자 명단을 입수하여 가지고 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되지만, 그 땐 그랬다. 그 때는 불법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지금보다 많았다.


합격자 발표일에 나를 포함한 하숙집 후배 몇 명과 R선배는 같이 시간을 보냈다. 종로에 있는 극장에서 성룡의 ‘취권’을 보고, 근처의 중국집에 갔다. R선배는 이 번에 떨어지면 군대에 끌려갈 판이었다. 경영대에 다니던 후배가 동전을 챙겨 들고 공중전화 박스를 찾아 나갔다. 잠시 후 출입문이 열리고 환한 표정의 후배가 들어왔다. “붙었다!!”하고 입구에서부터 소리를 질러댔다.


사법연수생이 된 R선배가 어느날 사법연수원을 구경시켜 주었다. 국대를 꿈꾸는 운동선수가 태능선수촌을 처음 구경할 때의 기분을 상상할 수 있었다. 선망(羨望)!


그 후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R선배는 늘 내게 베푸는 분이셨다. 어릴 때 하숙집에서 형, 동생으로 만나던 관계가 줄곧 이어졌던 것이었다.


얼마 전에 R선배는 대기업의 고문을 끝으로 은퇴하셨다. 은퇴 후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것이라고 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로 갈 것이라고 했다. 사람에게 지쳤다고 했다. 비교형량(比較衡量)한 결과 차라리 고독이 나을 것 같다고 했다. 열심히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갔다. 난해한 시(詩)도, 시인과 똑 같은 생각이나 똑 같은 경험을 하였다면, 또는 똑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면 쉽게 이해된다. 남자가 나쁜 남자를 알아보고 여자가 나쁜 여자를 알아보는 것과 같다.


R선배가 카톡문자를 보냈다. “나 내일 오후에 제천에 가서 풀 매고, 멍산하고, 별 보고, 찬물 목욕하고 그라다가 월욜 저녁때 서울로 돌아올거다. 시간 되거든 함 온나. 히아가 제 2 의 생을 어떻게 시작하고 있는지 궁금하거든.”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였다. 다음날 아침에 바로 출발했다. R선배도 오후에 가기로 한 계획을 바꾸고 아침에 출발하였다.


R선배는 제천의 어느 산골에 땅을 사고, 농막을 지었다. 농막은 건평의 제한이 있다. 그것보다 크면 주택으로 간주되어 1가구 2주택에 따른 무거운 세금을 부과받게 된다.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농사를 지을 것처럼 하고서는 별장을 짓는 사람들을 단속하기 위해서 면적으로 제한을 둔 것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 예를 들어 원주 근교 같은 곳에서 은퇴생활을 하면 좋겠지만 땅값이 너무 비싸서 남하(南下)하다보니 제천까지 오게 됐다고 하였다.


근처의 식당에서 두부전골로 점심식사부터 하였다. 나는 모기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모기향과 에프킬러를 샀다. R선배는 물을 무서워해서 수영도 못하고 자전거도 위험하다고 안 타는데 모기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누가 더 겁쟁이인지 모르겠다.


차의 계기판에 외부온도가 35도라고 떴다. R선배는 해가 숨이 좀 넘어가면 일을 하자고 했다. 그동안 근처를 구경 다니기로 했다.


제천은 청풍호를 가운데에 품고 있고, 산들이 어우려져 있어서 풍광이 좋다. 태양은 작렬해도 자동차 안은 설정해 놓은 온도를 유지하면서 서늘하다. 수십억년 동안에 축적된 화석 에너지를 불과 한 사람이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동할 때도 펑펑 써버리는 것이 후손들에게 할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대가로 지구온난화라는 무서운 재앙을 벌로 받을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깊은 생각이 없다면 자동차는 정말 대단한 기계다. 추위와 더위 모두 완벽하게 막아 준다. 억수같이 비가 내려도 물 한 방울 새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는 텐트를 물리치고 차박(車泊)까지 유행하게 됐다.


등산을 좋아하는 R선배는 월악산 근처로 가보자고 했다. 월악산의 정상을 신령스러운 산봉우리라는 뜻으로 영봉(靈峯)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만큼 올라가는 코스가 험하다는 뜻이었다. R선배는 월악산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앞으로 계절에 한 번씩 저 험한 산을 오르겠다고 하였다. 나는 겨울은 춥고 위험하니까 싫고 나머지 계절에는 같이 갈 수 있다고 했다.


농막으로 돌아오는 길에 멋진 카페 빌딩이 보였다. 큰 건물 하나가 통째로 카페다. 유턴을 해서 들렀다. ‘카페 탄지리’. 강남 한 복판에 있는 것처럼 세련됐다. 넓은 카페 창 바깥으로 보이는 청풍호의 전경도 일품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면 나는 선배, 친구와 함께 동해안 길 360킬로미터를 자전거를 타고 종주한 적이 있었다. 땀에 젖고 피곤에 지쳤을 때 우리는 파도 치는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에 들러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숨을 돌렸다. 그 때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이 내 생애 최고였다.


R선배는 돌아가신 모친 이야기를 했다. R선배의 본가는 시골에서 제법 큰 농사를 지었는데 모친은 그 긴 고랑 한 줄, 한 줄의 김을 거뜬히 매셨다. 김을 잘 매주면 그 밭에서 자라던 고추가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모친은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라고 늘 강조하셨다. 그래서 비가 와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몸이 힘들어도 그 때 해야 할 일은 미루면 안된다고 하셨다.


‘김을 매다’라는 말을 나는 정말 많이 들어왔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하는 노래 가사도 있다. 그렇지만 김을 매다에 해당하는 동작이 무엇인지 나는 제대로 이해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김’이 어떻게 ‘논밭에 난 잡풀’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매다‘가 어떻게 ‘논밭에 난 잡풀을 뽑다’라는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직관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오늘 드디어 김을 매게 되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어원을 따지는 쓸데없는 짓은 할 필요 없다. 그냥 몸으로 이해하게 될 터였다.


오후 4시가 약간 넘어서 농막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준비해 온 긴 팔의 상의와 츄리닝 바지로 갈아입었다. 농막에 비치되어 있는 장화를 신고 밀짚으로 만든, 챙이 넓은 농부 모자를 쓰고, 손바닥은 빨간색으로 풀을 매긴 작업용 장갑을 꼈다. 적어도 외양으로는 농부의 모습을 갖췄다.


R선배의 밭은 산비탈에 형성되어 있다. 이른바 계단식이다. 전체 밭면적 중 일부 구간에 옻나무 묘목만 앙상하게 심어 놓은 것이 아직은 전부다. 앞으로는 그 밭에 감나무도 심을 것이고 감자나 채소도 수확할 것이라고 했다. R선배는 약초 재배에도 관심이 있었다.


오늘 할 일은 옻나무가 심어진 구역에 무성하게 뻗쳐 있는 잡초 제거, 즉 김 매기다.


잡초가 있으면 옻나무 묘목의 성장은 당연히 방해받는다. 잡초가 어린 묘목의 양분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묘목이 성장해서 큰나무가 되면 그 때는 잡초가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큰나무의 뿌리가 잡초의 뿌리보다 강할 것이므로. 그 때까지는 맹수도 새끼 때는 돌봐줘야 하듯이 잡초를 솎아내야 한다. 독초도 태양볕을 쬘 권리가 있다고 시인을 꿈꾸던 어떤 검찰 선배가 말했지만, 잡초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기준에서는 잡초일 뿐이다. 자연선택은 그런 방향으로도 진행이 된다. 영국에 도시가 발달하고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게 되면서 큰 덩치의 강아지는 억울하게 사지로 내몰렸듯이.


R선배가 시범을 보여줬다. 될 수 있으면 땅에 가깝게 손을 뻗어서 확 뽑아야 한다. 그래야 뿌리채 뽑힌다. 뿌리채 뽑으면 뿌리 부근에 뭉쳐 있는 흙이 있는데 이 흙을 털어내야 한다. 그래야 빨리 말라 죽기 때문이다. 양팔을 다 써야 힘이 덜 든다. 뽑을 때 양팔을 외전(外轉) 시키는 쪽으로 힘을 줘야 팔에 무리가 안간다.


처음에는 큰 잡초, 작은 잡초를 다 발본색원(拔本塞源)하겠다고 호기를 부렸지만 곧 작은 잡초는 포기하였다. 작은 잡초를 매기가 더 힘들었다. 호미까지 쓰는 정교한 작업이 들어가야만 뿌리까지 제거할 수 있는데 그것은 신참인 내게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큰 놈만 노리기로 하였다. 계단식 밭이라서 비탈을 버티고 서서 일을 해야 했다. 얼마 전에 많이 왔던 비의 영향 때문인지 땅이 물러서 디디고 있는 지반이 자꾸 무너졌다. R선배는 평평한 곳의 논밭의 김매기는 계속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해야 하므로 허리에 더 무리가 가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땀이 눈으로 들어가서 따가웠지만 흙투성이에다가 땀에 젖은 작업용 장갑을 매 번 벗고 땀을 씻어낼 수가 없어서 그냥 견뎠다. 안경 렌즈가 땀으로 얼룩이 졌다. 나는 농막 안에 일부러 핸드폰과 시계를 놓아두고 나왔다. 작업에 몰입하기 위해서였다.


R선배는 호미를 들고 조용히, 꾸준히 그리고 신속하게 김매기를 하고 있었다. 별 동작 없이도 멀리 공을 때려 내는 프로 골퍼 같았다.


비탈을 오르내리면서 두시간 넘는 동안 김매기를 하였다. 당연히 힘들었다. 허리를 숙이고 일을 하다보니 허리가 아팠다. 그리고 서서히 팔꿈치가 아파왔다. 덩치 큰 잡초 중에는 뿌리가 제법 단단히 박혀 있어서 뽑으려면 용을 써야 했는데 팔꿈치에 힘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공이 울리기를 마음 한구석으로 기대하기 시작했는데 마침내 R선배가 “오늘은 이만!”이라고 선언하였다.


잡초를 뽑아서 그 자리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 일단 모아 놓았다가 마지막에 모두 수거하여 밭의 경계 너머에 있는 숲속에 버려야 한다. 그것이 마무리다. 그러나 그 때쯤에는 진이 빠져서 그 단순한 마무리 작업도 힘들게 느껴졌다.


아주 가끔 변호사 일이 너무나 지겹고 힘들게 느껴질 때 차라리 육체노동이 나은 것이 아닐까 하는, 복에 겨워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오늘 분명히 확인했다. 춥고, 덥고, 비 맞으면서 하는 육체노동이 무조건 힘들다.


또한 농사는 가성비 측면에서 따진다면 정말 말도 안되게 비효율적이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허리를 숙이고 흙투성이가 되어서 김매기를 하는 일꾼에게 주는 일당이 15만원이다. 그래서 농촌에는 젊은이들이 없다.


그렇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먹는 것이 결국은 가장 중요하다. 그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농부다. 일선에서 총맞고 죽는 보병보다 후방에서 복장불량이라고 군기를 잡는 헌병이 더 권력이 센 아이러니는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


R선배는 김매기를 마치고 농막으로 내려가는 길에 저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키면서 “나는 저 산만 봐도 기분이 좋아.”라고 말했다. 도시형 인간인 내가 죽었다 깨도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다.


찬 물로 샤워를 했다. 음, 이 상쾌한 기분은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직업이 교수인 고등학교 동창이 거제도에서 농사를 짓는데 1년에 한 번씩 감자를 보내준다. 감자의 색깔이 다채롭다. 나는 오늘 불과 두시간 남짓의 김매기를 하면서 그 친구가 얼마나 힘든 일을 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 이야기를 R선배에게 했다. R선배는 농사도 힘들지만 택배로 집에까지 감자를 보내 주는 것은 정말 대단한 정성이라고 했다. 자신은 농막에 놀러 온 친구에게 마음대로 골라서 가져가라 라고는 할 수 있지만 택배 상자를 구해서 색깔 별로 감자를 골라 담고 우체국까지 가서 부치는 일은 도저히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 친구에게 깊이 감사해야 하고, 보내 준 감자는 정말 귀한 것이므로 깨끗하게 다 먹어야 한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단 한 번도 생색을 낸 적이 없었다. 올해의 문자는 “잘 지내고 있제? 지난 주에 수확한 감자 3종 세트(홍감자, 수미감자, 자색감자)를 조금 보냈다. 골라먹는 재미를 맛보거라 ㅎ”가 전부다.


굳이 본인이 생색내지 않아도 이렇게 덕은 널리 알려지는 모양이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쏘가리 매운탕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식당 주인이 보트를 타고 나가서 청풍호에서 직접 잡은 것이라고 했다. 식당 입구에는 배를 타고 낚시를 하는 모습이 담긴 큰 사진이 걸려 있었다.


R 선배는 하루에 오전 2시간, 오후에 2시간 정도만 일하는 것으로 루틴을 정했다고 했다. 그리고, 월요일에는 서울에 가는 등, 서울에 볼 일이 있으면 수시로 간다고 했다.


나는 오늘 김매기를 하였어도 극히 일부일 뿐이고 내일 되면 다시 잡초는 자라기 시작할 것인데, 그렇게 뜨문뜨문 일을 해서는 잡초에게 붙잡히지 않느냐고 걱정을 했다. 나 같으면 저 잡초를 완전 제거할 때까지 전력을 다 할 것이라고 했다. 빙긋이 웃으면서 R 선배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R 선배의 말을 듣는 순간,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나는 매사 좀 천천히, 느긋하게 갈 필요가 있다. R선배의 모친은 '때'를 강조하셨지만 나는 그 '때'를 너무 강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때는 한순간이 아니라 어느 정도 긴 띠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R선배는 시골의 모든 정취는 밤에 있다고 하였다. 불빛 하나 없어서 별과 달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 소리 하나 없어서 벌레 소리가 잘 들리고 풀 냄새가 향기처럼 진동하는 곳이 시골이라고 했다.


충전지로 작동하는 호롱불을 켜놓고 낮에 사 놓은 막걸리 1통을 나눠 마셨다. 각자의 이야기를 조금씩 하였다. 그리고 각자의 침소로 향했다. 두 시간 농부 체험의 날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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