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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Apr 22. 2023

최강야구

김성근 감독

작년부터 내가 홀딱 반해 있는 JTBC의 '최강야구'를 이야기하고 싶다. 최강야구는 은퇴한 야구선수들이 '몬스터즈'라는 이름으로 팀을 구성하여 고등학교팀, 대학교팀, 독립야구팀, 때때로는 프로팀 2군과 경기하는 것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경기는 진심으로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이다보니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자막은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알아먹을 사람은 알아먹고 모르는 사람은 할 수 없다는 식이다. 너무 재미있다. 선수들의 입담도 개그맨들 뺨친다.

 

감독은 이승엽이었다. 이승엽 감독은 현역시절에 불세출의 홈런 타자였다. 방송에 출연해서 하는 것을 보니 예능감각도 일류였다. 예능 PD들이 탐낼만한 인재다.

 

최강야구에서의 이승엽은 선수들과 나이 차이가 많지 않다보니 - 몇 번은 그가 직접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 감독보다는 선배 같은 느낌이 강했다. 덕 아웃 분위기는 항상 화기애애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대로 비록 은퇴한 선수들이었지만 기량은 녹슬지 않았다. 최고의 고등학교팀, 최고의 대학팀, 최고의 독립야구팀을 상대로 하였지만 파죽지세로 이겼다. 프로 2군에게는 역부족이었지만 일방적으로 패배하지는 않았다.

 

이승엽은 시즌 1이 거의 끝나갈 무렵 두산 베어스의 감독으로 영입되었다. 그에게는 영광의 순간이었지만 최강야구는 졸지에 감독을 잃었다.

 

과연 2대 감독은 누구일까? 적어도 최강야구에서는 야구실력보다는 인간성이 더 좋게 보이는 박용택 캡틴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사실 이승엽 감독과는 나이 차이도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다.

 

최강야구 연출팀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종종 멋지게 뒷통수를 때린다. 2대 감독은?... 두둥!! 김성근 감독이었다. 이 분은 1942년생이시니 만으로도 연세가 80세가 넘었다.

 

재일교포였지만 20대 때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에서 생활한지가 60년 가까이 되지만 아직도 우리말이 서투르다. 자막이 없으면 알아듣기 어렵다. 자막제공을 받지 못하는 몬스터즈 선수들은 김성근 감독이 말하면 잘 알아듣기 위하여 귀를 쫑긋한다.하지만 100%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그는 서툰 한국말로 슬쩍 슬쩍 조크를 던진다. 때로는 빵 터질때도 있다.

 

시즌 1이 끝났다. 겨울에는 야구경기를 할 수 없으므로 방송도 되지 않았다. 올해 4월이 되어서야 방송이 재개되었다. 시즌 2다. 시즌 2의 제1화는 몬스터즈 팀의 몇몇 선수들이 자진하여 김성근 감독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강훈련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대부분 마흔 살을 넘긴 나이다. 현역선수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만큼 제대로 훈련을 한다. 이홍구 선수는 평소 체중이 110kg이었다. 시즌 1의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김성근 감독은 이홍구 선수에게 95kg으로 줄이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한다. 이홍구 선수는 흘려듣지 않았다. 무려 20kg 정도를 줄여서 90kg의 몸으로 시즌 2에 합류하였다.

 

이홍구 선수의 포지션은 포수다. 입스에 걸려 도루 저지를 하지 못한다. 겨울 동안 그는 홈에서 2루에 송구하는 연습을 질릴 정도로 계속한다. 프로선수들의 훈련양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최강야구는 투수, 유격수, 포수 자원을 충원하기로 하고 트라이 아웃을 하였다. 스탭들이나 출연진들을 두 번 동원하기 어려워서인지 하루 만에 선발작업을 모두 끝낸다. 18시간의 강행군을 하여 한밤중에 끝났다.

 

김성근 감독은 PD를 찾아갔다. 자신이 코치를 쓰지 않을테니 그 돈으로 투수 1명을 더 뽑게 해달라고 하였다. 역시 김성근 감독 다운 발상이다. PD는 투수 1명을 더 뽑게 해주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치를 뽑아줘서 김성근 감독의 희생 모드에 화답하였다. 63세의 이광길 코치는 김성근 감독과 30년간 감독과 코치로서 호흡을 맞췄다.

 

시즌 2 의 첫경기 상대는 KT위즈 2군이다. 막강한 상대다. 몬스터즈의 선발투수는 오주원이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주원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인지 시합 전날에 갑자기 치질 수술(치핵 제거 수술)을 받았다. 시합 당일에 트레이너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선발투수는 5회~7회까지를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컨디션이 좋으면 완투까지 한다. 매우 중요한 보직이다. 따라서 선발투수로 지정된 투수의 준비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반대로 당일날 예정에 없던 선발투수로 등판하라고 하면 그 선수는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시합 당일에 오주원 선수가 전날 치질 수술을 받은 사실을 알렸으니 몬스터즈팀은 완전히 비상사태가 된다. 오주원 선수는 그럼에도 던질 수 있다고 시늉을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싸늘하게 무시한다.

 

감독실에서 김성근 감독은 이순신 제독 같은 고민에 빠져 있다가 마침내 엔트리 명단을 결정하고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라커룸으로 향한다.

 

김성근 감독은 작년에 부임할 때 “돈을 받으면 프로다. 여러분들도 돈(방송출연료)을 받으니 프로다.”라는 멋진 말을 하였다. 그래서 최강야구의 모토는 ‘돈을 받으면 프로다’가 됐다.

 

오주원 선수 때문에 열을 받은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하였다. “야구는 단체 운동이다. 단체 운동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 지면 최강야구는 끝난다. (최강야구는 승률이 7할 밑으로 떨어지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폐지된다) 여러분의 뒤에는 2, 3백명의 스탭이 있다. 그 스탭 뒤에는5, 6백명의 가족이 있다. 책임감을 갖고 이겨라.”

 

엔트리가 발표되었다. 4번 타자는 은퇴한지 얼마 안되는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의 몫이다. 라고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런데 4번 타자에 정성훈 선수가 기용되었다. 그렇다면 5번 타자? 그러나 5번 타자에도 이대호 선수의 이름은 불려지지 않았다.

 

엔트리에서 아예 제외되었다. 시즌 2의 첫경기이고 고척 스카이돔에서 만원 관중이 직관하는 경기라서 이대호 선수는 가족들을 초대하였다. 그런데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이다. 선수들은 모두 민망해했다. 왜 엔트리에서 제외했는지는 김성근 감독만이 알 것이다. 겨울에 여러가지 일정으로 바빠서 훈련을 게을리했다고 판단해서였는지도 모른다.

 

KT위즈의 서용빈 감독대행은 시합 전에 중계진과 한 인터뷰에서 "은퇴한 선수들과 경기를 하는데 왜 긴장을 해야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소리인지도 모른다. 또는 최강야구 작가들이 그런 식의 코멘트를 해달라고 사전에 부탁했을 수도 있다. 경기는 진짜지만 예능적 요소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대은 투수는 갑자기 선발 통보를 받았지만 잘 던졌다. 본인 말대로 겨울에 많은 연습을 했던 모양이다. 그는 140km를 넘나드는 강속구와 밑으로 포수 앞에서 갑자기 툭 떨어지는 포크볼을 주무기로 구사한다.

 

KT위즈 2군 타자들은 과연 강했다. 그 빠른 공에도 배트를 힘차게 돌려서 정타를 맞췄다. 그렇지만 몬스터즈의 내야진의 수비는 눈부셨다. 근처로 오는 공은 모두 몸을 날려 잡았다. 확실히 작년 보다 몸이 가벼워졌다. 몸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준비가 된 선수들은 체중감량으로 그 증거가 나타난다. 작년에 구수한 입담으로 덕아웃에서 일종의 치어리더 역할을 한 장원삼 선수는 오히려 체중이 늘어서 나타났다.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3회초가 되었다. 투아웃이 되었다. 마지막 타자는 작년에 퓨처스 리그에서 도루왕을 차지한 선수다, 하필이면 그 선수가 첫번째 출루를 하였다. 당연히 그는 도루를 노렸다.

 

몬스터즈팀의 고질적 약점 중 하나는 도루 저지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1루에 발빠른 타자가 나가면 2루는 거의 공짜로 내주다시피 했다.

 

이 번의 트라이 아웃에서 박재욱 포수가 영입되었다. 그는 트라이 아웃에서 강한 어깨를 보여주었다. 당장 ‘강철어깨’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대은 투수는 주자가 출루했을 때의 투구 자세인 셋 포지션에서의 투구 동작이 조금 느린 편이다. 아주 조금 느린 그 1초도 안되는 순간이 도루 주자의 생과 사를 가른다.

 

이대은 투수는 1루에 3번의 견제구를 던졌다. 그리고 타자를 향하여 공을 던졌다. 순간 1루 주자가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하였다.

 

박재욱 포수는 포구하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2루를 향하여 빨랫줄 같이 송구하였다. 원 바운드가 되었다. 역시 이 번 트라이 아웃에서 영입된 황영묵 유격수는 날랜 동작으로 공을 잡는 것과 동시에 베이스로 들어오는 주자의 발을 태그했다. 심판이 힘차게 팔을 들면서 아웃!! 이라고 선언했다.

 

덕아웃에서는 모든 선수들이 일어나서 함성을 질렀다. 중계석에서도 상습적으로 편파중계를 일삼는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기쁨에 못이겨 비명을 질러댔다.

 

쓰리 아웃이 되고 3회초 KT위즈의 공격이 끝났다. 이것이 지난 주에 한 최강야구 시즌2 제2화의 전말이다.

 

최강야구는 2시간 남짓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완전히 몰입되어서 본다. 무아지경에 빠져있다. 나의 최애 프로그램이다.

 

매주 화요일에 넷플릭스와 티빙에 업로드된다. 며칠만 있으면 KT위즈와의 나머지 경기를 볼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을 혹사시킨다는 비난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본 야구 관련 각종 유튜브에 출연한 선수들은 김성근 감독에게 불만이 없었다. 투수 출신인 심수창 선수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벤치에 앉아서 투수 어깨가 싱싱하면 뭐하나. 투수는 혹사를 당해도 경기에서 뛸 수 있을 때 행복하다”

 

물론 일류선수들만이 김성근 감독을 높이 평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선수들도 막상 현역시절에는 김성근 감독을 많이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김성근 감독의 강한 훈련이 요즘 선수들에게는 먹히지 않을 것이다. 대세라는 것이 있고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러나 여든 살이 넘어서도 야구장에서 선수들을 지휘하고 있는 김성근 감독의 인생은 멋지다. 그 분의 인생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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