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의 토끼
검사 시절에 어떤 기자가 흥분하여 나를 찾아왔다.
"아니, 남검사님, 검찰청 앞에 있는 이발소 가 보았습니까?"
"왜요?”
"퇴폐 이발소입니다. 어떻게 검찰청 앞에서 버젓이 퇴폐 이발소 영업을 할 수 있습니까?"
"바로 잡아들일테니 김기자님이 협조해 주실래요?"
"어떻게 협조하면 됩니까?"
"퇴폐 행위를 받고 제게 와서 그 퇴폐행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진술해주고 법정에서도 증언을 서 주십시오."
“에이, 내가 왜 그런 일을 합니까, 쪽 팔리게. 그리고, 귀찮기도 하고, 이발소 주인의 보복도 겁나고.
"그러면, 어떻게 수사합니까. 누가 증언을 서 줘야 그 이발소 주인을 잡아들이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수사기관이 알아서 해야지요."
"어떻게 할까요. 몰래 카메라라도 설치할까요?"
"아, 그러면 되겠네요"
"법원의 영장없이 몰래 카메라 설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영장을 받지 못합니까?"
"영장을 받으려면 그 이발소가 퇴폐행위를 하고 있다는 최소한의 소명이라도 해야 하는데 무슨 증거가 있는가요?"
"대충 소명하면 되지 않습니까?"
"설사 소명한다고 하여도 24시간 촬영하는 몰래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는 영장청구에 대하여는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할 겁니다."
"왜요?"
"24시간 남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몰래 카메라 설치가 수사라는 미명 하에 가능하다면 수사목적이야 달성할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침해되는 사생활의 피해는 어떻게 하지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서 어떻게 사회정의를 구현합니까? 검찰의 의지 문제 아닙니까."
"그러면 수사를 한다는 명분만 있으면 김기자님의 집과 사무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고, 김기자님의 전화를 모두 감청하고, 김기자님을 미행하여도 됩니까? 그러면, 김기자님이 혹시 촌지를 받거나 향응을 받는 장면 하나라도 걸릴지 압니까."
"---"
이처럼 수사라는 것은, 얼굴에 모자이크를 씌우고 목소리를 변조시켜 놓고 일방적으로 한사람의 주장을 검증없이 방송하는 '카메라 고발'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건이 터지면 언론에서는 여러가지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깃털만 수사하고 배후의 몸통은 붙잡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퇴폐 이발소의 예에서 보았듯이 수사는 증거가 있어야 할 수 있다. 깃털이 몸통에 대한 진술을 해줘야 몸통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아예 몸통이 없는 경우도 있다. 달나라에 토끼가 살고 있어야 토끼를 잡든가, 말든가 할 수 있다. 그런데 달나라에 토끼가 처음부터 없으면 어떻게 잡아 온다는 말인가.
반면에 달나라에 토끼가 살고 있는 것이 명백히 입증되었다면 수사기관은 무조건 토끼를 찾아내서 잡아와야 한다.
초임 검사 시절에 골치 아픈 사건을 배당받았다. 서른 살 가까운 초등학교 동창생들인 홍씨, 문씨, 유씨 세명이 술을 진하게 마시고 자기들의 집이 있는 마을로 오토바이를 같이 타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술 취한 오토바이가 중앙선을 넘었고 마주오던 승용차와 정면 충돌하여 세 명 모두가 길바닥에 나동그라진 사건이었다.
홍씨는 목뼈가 부러져 간신히 말만 할 수 있을 뿐, 사지가 마비되었고, 문씨와 유씨는 덜 다쳐서 내게 조사를 받을 때에는 완전 회복이 된 상태였다.
홍씨와 문씨는 서로 오토바이 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유씨는 처음에는 홍씨가 운전하였다고 진술하였다가 나중에는 문씨가 운전한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고, 다시 말을 바꾸어 홍씨가 운전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담당 경찰관은 홍씨와 문씨 중 문씨가 운전자, 즉 범인이라고 판단하고 당직 검사에게 영장신청을 하였으나 당직 검사는 문씨가 운전하였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영장신청을 기각하였다. 그 사건은 검찰에 송치된 후 내게 배당되었다.
경찰에서 조사된 수사기록을 읽어보니 홍씨가 범인인 것 같기도 하고 문씨가 범인인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기 이를 데 없었다. 둘 중에 한 사람을 그냥 콱 찍을 수도 없고, 시간은 자꾸만 가고 참 답답하였다.
이런 사건은 달나라에 토끼가 있는 경우다. 홍씨와 문씨 둘 중 누군가가 운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토바이가 자율주행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범인을 밝히지 못하면 검사가 무능한 것이다.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도 있고,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한다"는 말도 있지만 아무리 경찰 수사기록을 읽고 또 읽어 보아도 홍씨와 문씨 중 누구도 범인이라고 단정할만한 증거가 없었다.
생각 끝에 홍씨, 문씨, 유씨 세사람이 교통사고 직후 입원하였던 병원에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사건 발생 직후에는 아직 양심이 살아있고, 또 미처 거짓말을 꾸며댈 잔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여서 진실이 노출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 응급실에서 이들에 대하여 응급처치하였던 의사를 수소문하여 만날 수 있었다. 사건 발생 후 벌써 몇 달이나 지난 후라서 그 의사는 당시의 상황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진료차트를 가져와서 거기에 메모된 것을 보더니 기억을 되살려 이야기를 해주었다.
병원에 후송되어 왔을 때 홍씨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유씨는 의식이 회복된 상태였으며, 문씨는 의식이 회복된 것으로 보이는데 말을 일부러 하지 않거나 거부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 순간 머리 속에 섬광처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문씨가 운전을 하였던 것이다. 문씨는 홍씨가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것을 보고 죽을 것으로 짐작하였고, 그렇다면 죽은 사람에게 운전자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 어떨까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그 생각을 하느라고 일부러 의식을 잃은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그리고 유씨와 입을 맞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번 것이었다.
병원에서 사무실로 돌아와 다시 수사기록을 읽은 후에 질문사항을 메모한 후 그 의사에게 전화를 걸고, 담당 경찰관에게도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고 예상했던 대로의 대답이 나었다. 추측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유씨는 경찰에서 처음 조사를 받을 때는 홍씨가 운전하였다고 진술하였다가 두번째 조사를 받을 때는 문씨가 운전하였다고 진술하였는데 그 첫번째와 두번째 조사를 받는 사이에 홍씨가 의식을 회복하였기 때문이었다.
유씨는 홍씨가 죽을 것으로 알고 문씨의 회유에 넘어가 홍씨가 운전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홍씨가 깨어나자 겁이 나서 문씨가 운전한 것이라고 진실을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홍씨는 전신마비가 된 채 병원에 계속 누워있었고 문씨는 돌아다닐 수 있었으므로 문씨에게 재차 설득을 당하였거나 협박을 당하여 - 문씨는, 그러고 보니 깡패끼가 다분히 있었다. - 홍씨가 운전을 한 것이라고 다시 말을 바꾼 것이었다. 문씨나 유씨가 자백을 하지는 않았으므로 아직까지는 내 추측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름대로 범인이 문씨라고 심증을 굳힌 이상, 이제는 콜롬보식 수사를 할 차례였다. 옛날 드라마의 주인공 콜롬보는 무슨 점쟁이처럼 댓바람에 범인을 찍어낸다. 그리고서는 증거를 하나하나 수집해 나간다.
다시 수사기록을 가져다 놓고 꼼꼼하게 읽어보니 그렇게 선입견이 들어서 그런지 모르나 문씨가 범인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한, 두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 사건은 수십년 전의 이야기이므로 그 당시에는 도로에 CCTV라는 것도 없었고 차량 블랙박스라는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수사는 다른 사건의 수사와는 달리 충돌 직후의 현장상황, 차량파손 상태 및 부위, 도로의 상처 흔적 등등에 대한 증거보전만 잘 되면 진상을 파악하기가 용이하다. 곳곳에 물리적 흔적, 즉 증거를 남겨주기 때문이다.
나는 오토바이 사고에 대하여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검찰청에 있는 오토바이 교통사고 기록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모아 놓고,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하루 종일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도는 사무실에서 그 기록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오토바이의 사고 기록을 보면서 나는 오토바이의 구조를 알게 되었다. 요즈음에야 오토바이의 종류가 워낙 많아져서 전형적 오토바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나 오래 전인 그 때는 오토바이 종류가 몇 개 되지도 않을 때였다.
오토바이 앞에는 바람막이라고 하는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것이 달려 있는데 오토바이 운전자가 급 브레이크를 밟거나 뭐와 갑자기 충돌하면 그 바람막이에 무릎이나 정강이 등이 부딪혀 그 쪽 신체부위가 많이 다친다는 것을, 오토바이 교통사고 기록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 자세히 기억나지 않으나 그 외에도 오토바이 교통사고 운전자가 공통적으로 입게 되는 상해 부위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다.
홍씨와 문씨의 진단서를 보니까 역시 문씨는 무릎과 정강이 부분에 바람막이와 충돌하면서 입은 것으로 보이는 상해를 입었고, 홍씨는 그런 종류의 상해가 없이 길바닥에 머리 쪽으로 나가 떨어지면서 목뼈가 부러졌을 뿐이었다.
담당 경찰관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가 난 오토바이의 바람막이에서 찢어진 옷조각 같은 것이 끼어 있는 것을 채집한 것이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 것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오토바이는 어쨌는지 물어보았더니 그것도 이미 오토바이의 주인인 문씨에게 돌려주었다고 하였다.
이런 것이 한심한 초동수사의 예이다. 수사에도 매뉴얼이 있어야 하고 그 매뉴얼은 시간이 흐르면서 노하우가 축적이 되면서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
또한 범죄의 종류에 따라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교통사고를 수사할 때는 이러이러한 점에 착안하여야 한다, 강간 사건을 수사할 때는 당사자에게 이러이러한 것을 질문하여 한다는 등등이 체크 리스트로 만들어져 있으면 실수가 줄어들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체크리스트는 아예 양식으로 만들어 놓는 방법도 있다. 사고 당시의 도로의 상황, 기상상황(비가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여부는 스키드 마크에 의한 차량속도 추정에 변수로 작용한다.), 신호등의 상태, 차량의 충격부위 등등을 표 형식으로 만들어 놓고, 그 안에 그 내용을 기입하게끔 양식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표를 채워넣기 위해서라도 저절로 그것에 필요한 조사를 하게 된다. 교통사고의 경우 실황조사서라고 부르는 양식이 있다.
나는 다른 오토바이 교통사고 기록들을 검토하면서 몇 가지 체크 리스트를 만들었고, 그것을 이 사건에 적용시켜서 대조하려고 하였으나 증거수집이 된 것이 거의 없었다. 하기야 당시 경찰관인들 입장에서는 서로 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일이 생길 줄 짐작도 못하였을 것이다.
나름대로 신문사항을 미리 정리하여 놓고 일단 억울하게 보이는 홍씨부터 조사하였다.
수사의 기법상 거짓말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항상 맨 나중에 조사하게 된다. 국회의원이 뇌물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그 국회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조사한 후 마지막으로 그 국회의원을 소환한다. 그리고 그 국회의원의 변명을 즐거운 기분으로 듣고 있다가 그 변명에 대하여 그 동안에 모아 놓은 증거를 바탕으로 하나하나 반박하기 시작하고 나중에 그 변명이 왜 거짓말이 되는지를 입증해내는 작업이 검사의 임무다.
재판에서는 무죄추정의 법칙이 적용된다. 누구든지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헌법 조문이 있다. 따라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을 마치 검사의 공소사실이 확인된 범인인 것처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검사가 수사할 때는 유죄추정의 법칙을 적용한다.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전제해야 물어볼 말이 있는 것이지 상대방이 정직하다고 믿어 버리면 신문할 것이 없지 않겠는가.
홍씨를 조사하러 홍씨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찾아 갔다. 홍씨 곁은 누나가 지키고 있었다.
그 오토바이는 문씨의 소유였는데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에 들어가 마주오던 승용차를 들이받은 사고였기 때문에 오토바이의 100% 과실로 처리되었으므로 그 승용차가 가입한 보험회사로부터도 홍씨는 치료비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시골 살림에서는 막대한 금액일 수밖에 없는 치료비를 고스란히 누나가 부담하고 있었다. 치료비도 치료비이지만 눈만 뜨고 말만 할 뿐이지 사지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서른 살 동생을 24시간 지키고 있는 누나의 마음은 어떠하였겠는가.
그 누나는 나를 보자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홍씨는, 그 오토바이는 문씨의 소유인데 자기가 왜 운전하였겠느냐면서 자신에게 운전책임을 덮어 씌우는 문씨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여러가지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홍씨는 자신있게 또박또박 답을 하였다.
병원을 나오면서 누나 몰래 병원 의사에게 홍씨의 상태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검사는 수사에 필요한 사람들을 검사실로 소환하여 이것저것 물어보고 대답을 듣는다. 그 문답 내용을 조서로 정리하고, 그 조서의 모음이 수사기록이다.
수사기록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게 되는데 재판을 하는 판사는 그 조서만 가지고는 증거로 쓸 수가 없다. 검사가 사실은 A라는 사람을 부른 적도 없는데도 마치 A라는 사람을 불러서 물어본 것처럼 혼자서 조서를 작성할 가능성이 이론상으로는 있기 때문이다. 또한 A에게 “B가 범인인가?”는 질문을 하였을 때 A는 “아니오.”라는 대답을 하였는데도 조서에는 “맞다”라고 대답한 것처럼 거짓말로 기재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퇴폐 이발소의 예를 들었는데 퇴폐 이발소 업주를 처벌하기 위하여 가공의 인물이 검사실에 나와 증언을 해준 것처럼 검사 마음대로 조서 작성을 할 수 있고 그 조서만으로 증거로 삼을 수 있다면 수사하기가 얼마나 편안하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
따라서 검사가 만든 조서를 증거로 쓰려면 그 조서의 작성 대상이 되었던 사람(원진술자)이 판사 앞에 증인으로 나와 선서한 다음에 그 조서에 기재되어 있는대로 진술하였던 것이 사실이라고 확인해줘야 한다.
원진술자가 법정에 나올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원진술자의 확인이 필요없다고, 원진술자가 조서에 기재된 대로 말하였을 것이라고 증거동의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원진술자가 검사 앞에서 진술을 해 놓은 다음에 막상 법원의 재판 때에는 행방불명 되거나 사망을 해버리면 그 조서를 증거로 쓸 수 있을까, 없을까.
이런 경우를 대비한 것 중 하나가 "공판기일 전 증인 신문"이라는 제도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즉 피고인을 기소하기 전에, 법원에 신청하여 판사를 지정받은 후 그 판사 앞에서 원진술자에 대하여 신문하고, 그 신문내용을 조서로 정리하면 그 진술조서는 판사 앞에서 한 진술이므로 나중에 피고인이 기소되어 재판이 시작된 이후에도 원진술자가 다시 법정에 나와 진술할 필요가 없다.
홍씨가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즉시 법원에 신청하여 판사 앞에서 홍씨의 진술내용을 조서로 정리하도록 하였다. 이른바 증거능력(증거자격)을 확보해 놓은 것이다.
이제 드디어 문씨와 유씨를 소환할 차례다. 문씨와 유씨가 말을 맞추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두사람을 동시에 소환하였다. 이렇게 동시에 소환하여 놓고 따로 따로 신문해서 상호진술의 모순점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추궁하면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말이 오락가락한 유씨를 상대로 신문을 시작하였다. 유씨는, 당시 운전한 자가 홍씨라고 진술하였다가 나중에는 문씨가 운전하였다고 진술하였다가 또 다시 번복하여 홍씨가 운전하였다고 진술한 자이다.
이 때는 이미 사고가 발생한지 6개월이 지난 후로서 문씨와 유씨는 나름대로 치밀한 논리를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을 나는 감안하고 있었다.
유씨는 시치미를 뚝 떼면서 사고 직후에는 충격상태였기 때문에 정신이 헷갈려서 말이 오락가락 하였으나 홍씨가 운전하였던 것이 확실하다고 자신있게 진술하였다.
누가 운전한 것인지가 어떻게 헷갈릴 수 있느냐, 그리고 만일 처음에 헷갈렸던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은 홍씨가 운전하였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논리적으로 추궁하여도 무조건 홍씨가 운전한 것이 맞다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였다.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오고 갔다.
"오토바이가 누구 소유입니까?"
"문씨 겁니다."
"근데 왜 문씨가 운전하지 않고 홍씨가 운전하였습니까?"
"문씨가 당시 술에 많이 취해 있어서 홍씨가 대신 운전한 것입니다."
"검사가 그 때 술좌석에 같이 있었던 김씨를 조사하였는데 김씨의 말에 의하면 당시 홍씨도 문씨와 마찬가지로 많이 취하여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홍씨가 운전하였습니다."
"그 때 홍씨의 집에 가던 길이었는가요, 문씨의 집에 가던 길이었나요?"
"문씨의 집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검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문씨는 최근에 이사하였다고 하고, 그래서 홍씨는 문씨의 집을 몰랐다고 하는데 어떻게 길도 모르는 홍씨가 운전하였을까요?"
"뒤에서 문씨가 길을 가르쳐주었겠지요, 뭐"
"경찰에서 당신이 진술하였을 때는 문씨가 완전히 술에 취해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홍씨의 등을 뒤에서 껴안은 채 잠이 들었다고 하였는데요"
"아, 집에 다 와가면 깨어나서 길을 가르쳐 주었겠지요."
나는, 반드시 유씨도 구속하리라고 결심하였다. 우리 법률에는 수사기관에서의 거짓말을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와 증언할 때만 위증으로 처벌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유씨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그 때도 같은 내용으로 진술할 때 구속하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이 번에는 문씨를 불렀다. 먼저, 오토바이 사고 난 날 입었던 옷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옷의 찢어진 부분을 살펴보면 바람막이와 충돌한 것을 알 수 있고, 그렇다면 문씨가 운전하였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씨는 흠칫 놀라더니 그 옷은 재수가 없어 이미 불태워버렸다고 하였다. 지난 번에 홍씨를 조사할 때도 같은 질문을 하였더니 문씨와 달리 홍씨는 사고 당시 입었던 옷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문씨가 운전하였다는 사실이 추정된다.
문씨에 대해서 조사하면 조사할 수록 모든 증거는 문씨가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었다. 그 증거는 이른바 간접증거(정황증거)들이다. 직접증거(목격자 등)는 없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므로 그 때 내가 찾아낸 증거가 무엇, 무엇인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증거 찾기에 열심히 몰두하였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그러나 문씨의 표정을 보면 도저히 문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체격은 단단하고, 다분히 불량기도 있어 보였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단순 우직하게 보여 죽어가는 자기 친구에게 운전책임을 덮어 씌우는 교활한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유씨도 마찬가지였다. 표정만으로는 순진무구하게 보이는 유씨가 목이 부러져 다 죽어가는 홍씨에게 누명을 씌우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백날 조사하여 봤자 문씨와 유씨가 바른말을 하기는 만무하였다. 이 때의 바른말은 내 입장에서 바른말이지 실제로는 문씨와 유씨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고 홍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건의 진실은 당사자만이 알고 있다. 인간은 깊고, 오묘한 동물이기에 거짓말하기로 작정을 하면 모두 일류 연기자가 된다.
고문? 고문은 때로는 진실을 말하게도 하지만 고문의 고통이 두려워 고문하는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거짓된 진실을 말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문을 하고 문씨와 유씨로부터 논리적으로는 모순이 되는 답변을 최대한 끌어내서 조서에 기재되게 하였다. 아무리 많은 말이 오고 가도 조서에 기재되지 않으면 판사는 모른다. 그래서 문답 내용이 조서에 정확하고, 요령있게 기재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판단은 거짓말 탐지기를 써보느냐, 마느냐, 그리고 쓴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거짓말 탐지기를 써보느냐가 남아 있었다.
홍씨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가 불가능한 신체상태였다. 문씨와 유씨 둘 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게 하느냐, 아니면 문씨만 받게 하느냐를 놓고 고심하였다.
문씨와 유씨, 둘 다 거짓말 반응이 나오는 것이 내 입장에서는 최선의 결과이지만 문씨와 유씨, 둘 다 진실 반응이 나오면 그 동안의 수사결과와 배치되어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또는 한사람은 진실, 다른 사람은 거짓말 반응이 나와도 역시 사건 해결은 어려워지게 된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는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고 단지 참고자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감히 정면 승부를 하기로하고 문씨와 유씨, 두사람 모두에 대하여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실시하였다. 결과는 두 사람 모두 명백히 거짓말하는 것으로 반응이 나왔다.
이제 나는 확신을 가지고 문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검찰 내부에서 부장 검사, 차장 검사, 검사장의 결재를 거쳐야 하는데 부장이나 차장이나 검사장이나 모두 자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잘못 판단하면 생사람 잡는 일이 되니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법원의 영장담당 판사는 오랫동안 수사기록을 붙들고 있더니 영장을 발부하였다. 내 방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던 문씨에게 구속영장을 집행한다고 하였다. 문씨는 독기 어린 표정으로 왜 억울한 사람을 잡아 넣느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홍씨와 그의 누나는 뒤늦게 문씨가 구속된 사실을 알고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진실을 밝혀줘서 너무나 고맙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문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업무상 과실치상) 위반 죄로 기소하였다. 이제 재판절차가 남았다.
검사는 자기가 수사하고 기소한 사건에 대하여 재판까지 참가하지는 않는다. 기소된 사건들은 법원의 각 재판부에 흩어져서 배당되므로 각 재판부의 공판기일마다 쫓아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사검사는 수사를 하고, 공판부의 검사는 각 검사들이 기소한 사건을 공소유지하는 업무를 맡는다. 수사검사와 공판검사는 보직의 차이에 불과하다. 때로는 수사검사가 될 수 있고, 때로는 공판검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사건은 수사검사가 직접 재판에 참가한다. 변호인과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사건은 그 사건을 직접 수사한 검사가 사건내용을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건에서 직접 공판에 관여하였다. 유씨가 증언하던 날, 수사관을 대기시켜 놓았다가 증언을 끝나고 나오는 유씨를 붙잡아 내 방에 데려다 놓고 유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작성하였다.
부장, 차장, 검사장 세 분 모두 구태여 유씨까지 구속할 필요가 있느냐, 그리고 만일 문씨에 대한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면 문씨 뿐만 아니라 유씨까지 억울한 사람이 되는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고 구속영창 청구를 반대하였다.
그러나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게 하면 안되는 것이고 더구나 유씨같은 경우 홍씨의 입장에서 볼 때는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식으로, 문씨 이상으로 악랄한 자인데 피해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검사로서 어떻게 유씨를 그냥 놓아둘 수 있겠느냐고 윗사람들을 설득하였다.
영장을 담당하는 판사는 오랜 시간 고민 끝에 결국 유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해주었다. 문씨와 달리 유씨는 구속영장이 집행될 때 별다른 저항없이 승복하였다.
법정에서 문씨와 유씨의 변호인과 치열한 싸움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홍씨는 사망하였다. 죄명을 업무상 과실치상에서 업무상 과실치사로 고치고 그 죄에서 법정최고형인 징역 5년을 구형하였다.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이고, 치료비 등 피해변상이 전혀 되지 않았으며 범죄 후 반성은 커녕 가장 친하였던 초등학교 동창인 홍씨에게 그 운전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이런 자에게는 최고형이 마땅하다는 것이 내 구형의 이유였다.
변호인은 변론을 하면서 "재판장님, 문씨와 유씨의 표정을 보십시오. 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면서 울분을 토하였다.
나는 재판장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증거 재판주의를 택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의 표정에서 그 사람의 진실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관상쟁이로 하여금 재판을 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재판장님, 아무리 우둔하고, 온순한 사람이라도 본인이 살기 위해서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피고인의 표정을 잊어 버리시고 증거에만 집중해주십시오. 무죄를 선고하려면 제가 제출한 증거들이 왜 믿을 수 없는지, 또는 증거로 쓰기에 부족한지에 대하여 이유를 써주십시오."
문씨에 대하여는 징역 4년(엄격하게 말하면 금고 4년인데 그 차이는 독자가 알아야할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다.)이 선고되었다. 교통사고로서는 거의 최고형에 가까운 중형이다.
유씨에 대하여는 지금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던 것 같다.
선고가 된 지 얼마 후 나는 다른 검찰청으로 전근을 갔다.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홍씨의 누나가 보낸 편지였다. 홍씨가 세상을 떠난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기일이 다가오자 내가 생각이 나서 편지를 보낸다고 하였다. 눈물자국이 군데군데 나 있었다. 눈물로 쓴 편지였다.
끝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앞으로도 정의로운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주십시오, 검사님"
보통 민중의 지팡이라는 표현은 경찰관에게 자주 쓰이는 말이지만 아무려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