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우정

대등한 관계는 우정에서도...

by N 변호사

김성수와 이신철은 지방 소도시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때 만나서 그 때부터 단짝이 되었다.


김성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이 사업, 저 사업을 하다가 주식 투자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신철은 부친이 물려 준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였다.


두 사람은 줄곧 친구로서 어울리다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이르러서는 아예 붙어 다녔다.


김성수가 하는 일은 그 속성상 몸이 바쁜 사업이 아니었고 이신철의 사업체는 부진하여 사실상 폐업을 한 상태였으므로 두 사람 모두 시간이 남아 돌아 갔기 때문이다.


두사람은 골프를 치거나 이곳 저곳 놀러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모든 비용은 김성수가 냈다. 이신철은 거짓말같이 단 한 번도, 하다못해 얼마 나오지도 않는 점심 값조차도 낸 적이 없었다.


가끔씩 김성수는 그런 이신철의 태도가 얄밉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자신이 더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 또한 어쨌거나 이신철은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므로 싫은 감정을 내색하지 않았다.


김성수는 나중에 서울로 이사했다. 그러다 보니 이신철과는 점차 만나지 않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아니던가.


이신철은 매번 골프비용 내주고 밥과 술을 사주던 김성수가 서울로 훌쩍 떠나버리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기분이었다. 여전히 하루 종일 할 일도 없는데 돈까지 없으니 죽을 맛이었다.


김성수는 주식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크게 한 번 실패하여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주식 투자에 타고난 소질이 있는 그였으므로 회복할 자신이 있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재산을 빼돌릴 필요가 있었다. 김성수는 여러 필지의 부동산을 이신철의 명의로 해 놓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김성수의 주식 투자 사업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승승장구하여 탄탄대로에 들어서게 되었다.


어느 날 김성수에게 예전에 이신철과 함께 어울려 다녔던 고향 친구가 전화를 해왔다. 이신철이 땅을 판다고 하는데 혹시 네 땅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김성수는 이신철을 만나러 급히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신철은 전화도 받지 않고 만나주지도 않았다. 김성수는 이신철의 집 앞에 잠복하였고 이신철의 집 문이 열리는 순간 안으로 쳐들어가 이신철을 만났다.


이신철은 땅 매매 계약을 한 것이 사실이고 계약금으로 이미 1억원을 받은 상태라고 했다.


김성수는 "계약금의 2배인 2억원을 내가 줄테니까 매수인에게 물어 주고 계약을 해지해라. 계약금으로 이미 받은 1억원은 네가 그냥 가져라. 계약이 해지되면 그 땅 명의는 내 앞으로 도로 돌려 놓자."라고 말했다.


김성수는 그 땅이 개발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고 그 경우 그 값은 몇 배로 뛰어서 4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니 이신철에게 1억원을 가지게 하고 자신의 돈 2억원을 주고 매매계약을 해지 하는 것을 아까워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40억원 이상이 될 것이 확실한 그 땅이 헐값으로 팔려 나가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급했다.


이신철은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남의 땅을 몰래 팔아 먹으려다가 걸렸는데 오히려 용서를 해 줄 뿐만 아니라 공짜로 1억원을 챙겼으니 김성수에게 어떻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신철은 그 땅 매매계약의 해지도 하지 않았고 김성수에게 소유권을 넘겨 주는 것도 차일피일 미뤘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속이 탄 김성수는 다시 이신철을 만나러 내려 갔다.


이신철은 뜻밖의 소리를 했다.


"그 동안 너를 따라 다닌다고 내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지금 빈털털이가 됐다. 그런데 너는 네 땅 명의를 내 앞으로 해 놓은 덕분에 여러가지 혜택을 입었지 않았느냐. 이제 내가 사업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니 사업자금도 할 겸 10억원을 달라. 그리고 이 땅이 네 말대로 앞으로 몇 배가 올라 40억원 이상이 되면 내게 10억원쯤 준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김성수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아쉬운 사람은 김성수 자신이었다. 더구나 매수인이 중도금을 이신철에게 지급하는 순간 그 땅의 매매계약을 해지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김성수는 항복했다. 다만 10억원을 바로 주지는 못하고 나중에 땅을 팔아 돈이 생기면 지급하기로 하고 담보로 액면금 10억원짜리 약속어음을 이신철에게 발행해줬다. 지급기일은 공란으로 비워 두었고 "이 어음을 타인에게 양도할 때는 무효임"이라고 배서금지 취지의 문구를 어음 뒷면에 기재하였다.


약속대로 매매계약은 해지되었고 소유권 명의도 김성수에게 환원되었다.


그 땅은 김성수의 예상대로 개발대상 지역에 포함되었다. 그렇지만 그 땅은 강제수용되어 버렸고 수용가격은 감정평가사의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결정되었다. 불행하게도 그 가격은 40억원에 훨씬 못 미쳤다.


그러자 김성수는 약속어음 10억원의 지급이 아까워졌다. 이신철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약속대로 10억원을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성수의 주식투자 사업은 크게 성공했다. 주식시장의 큰 손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이신철은 화가 단단히 났다. "지는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는데 내게 겨우 10억원을 안 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를 찾아갔고 김성수에게 약속어음금 10억원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김성수는 자신 소유의 땅 여러 필지를 이신철에게 명의신탁했고, 이신철은 명의신탁을 받아 준 대가로 10억원을 받기로 하였는데 그 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이 청구원인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수임하여 김성수의 소송대리인이 되었다.


약속어음금을 달라는 소송에서 피고측은 약속어음이 위조되었다는 항변 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다.


속아서 약속어음을 발행했다거나 협박에 못 이겨서 약속어음을 발행했다는 사기나 강박 주장도 가능하기는 하다.


사실 김성수의 입장에서는 협박(강박)에 못 이겨서 약속어음을 발행하였다. 이신철은 그 약속어음을 주지 않으면 땅 명의를 안 넘겨주겠다고 협박한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도의 강박은 법원에서 강박으로 잘 인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주장은 소멸시효에 걸려서 무용하게 된다.


강박에 의한 법률행위는 강박상태를 벗어난 상태로부터 3년 이내에 취소해야 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에 김성수는 땅 명의를 이신철로부터 돌려 받은 순간 그 강박상태를 벗어난 것이었고, 그때로부터 6년이나 흘렀으니 '강박에 의한 취소' 라는 주장을 원천적으로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떤 법리(법률이론)로 반박해야 하나?


저녁 약속이 있어서 약속 장소까지 전철 몇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걸어갔다. 날씨가 추운 날이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귀를 얼게 했다. 걸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기 직전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민법 제103조는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네가 나와 잠자리를 한 번 가져 줄 때마다 100만원씩 주겠다"라는 계약을 갑남과 을녀가 체결했다고 가정하자.


갑남은 을녀와 그 후 세 번의 잠자리를 가졌다. 그런데 돈을 주지 않았다. 을녀는 그 계약에 의하여 300만원을 달라고 갑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그와같은 성매매 계약은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한 내용으로 무효다. 무효라는 뜻은 계약내용대로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이런 법을 만들어 놓았을까? 법원이 성매매 약속을 이행하라고 판결한다면 법원이 성매매를 조장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신철은, 부동산 명의수탁의 대가로 10억원을 받기로 했다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의신탁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에 의할 때 법위반행위이다.


명의수탁에 대한 대가로 돈을 주기로 한 것은 성행위를 대가로 돈을 주기로 한 계약과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이와같은 취지로 답변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관련 판례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0다71999 판결은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으로 진술하면서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내용에 대하여 허위의 진술을 하는 경우에 그 허위 진술행위가 범죄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이러한 행위 자체는 국가사회의 일반적인 도덕관념이나 국가사회의 공공질서이익에 반하는 행위라고 볼 것이니, 그 급부의 상당성 여부를 판단할 필요 없이 허위 진술의 대가로 작성된 각서에 기한 급부의 약정은 민법 제103조 소정의 반사회적질서행위로 무효이다’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즉 대법원은 '범죄 기타 부정행위를 유발하거나 조장하는 행위'는 반사회적 질서행위로서 무효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 변호사는 폭탄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내 주장에 대하여 반박할 시간을 달라고 재판기일을 연기신청하였다.


그러더니 마침내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청구원인을 약정금이라고 변경했다.


내용인즉슨, "이신철은 10여년간 김성수의 수행비서 겸 운전기사로 봉사해왔고 그 과정에서 명의수탁도 해 줬으며 그외 각종 심부름을 해 주느라 본인의 사업도 망가지고 나중에는 이혼까지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에 따라 김성수에게 보상을 원했더니 김성수는 10억원을 보상해주겠다고 약속하였고 그 증거로 일단 10억원짜리 약속어음을 발행해주었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10여쪽에 이르는 분량으로 이신철이 그 동안 김성수에게 얼마나 충성을 했고 그 과정에서 본인은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눈물없이는 못 볼 내용으로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이제 게임은 쉽게 되었다. 그러한 약정을 입증하는 증거로는 약속어음 10억원짜리 밖에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신철은 소장에서는 그 10억원짜리 약속어음을 받게 된 경위에 대해서 명의수탁의 대가라고 스스로 주장했었다.


예상대로 이신철의 청구는 기각되었다. 이신철은 항소하지 않아서 제1심의 청구기각 판결이 확정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우정은 이렇게 참담하게 막을 내렸다.


사실은 김성수가 일방적으로 모든 비용을 계산할 때부터 두 사람의 우정은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돈을 내는 사람은 건방져지기 십상이고, 얻어 먹는 사람은 비굴해지기 십상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친구가 보다 더 비싼 것, 보다 많은 회수로 밥을 사는 것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10년 동안이나 일방적으로 한쪽이 모든 비용을 계산한다면 결코 대등한 관계가 될 수 없다. 우정은 대등하고 서로 당당한 관계에서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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