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배우자의 부양료 청구

불륜의 추적

by N 변호사

박씨는 모친과 함께 찾아 왔다. 아내인 김씨가 부양료 청구 소송을 해왔는데 어떻게 대처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빚이 많았던 박씨는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서 빚을 해결하고, 서울 근교에 있는 모친 댁 근처에 방 두 개 짜리 연립주택 셋집을 얻었다.


그러나 김씨는 시어머니 근처에서 살기 싫고 고1인 외동딸도 전학을 가기 싫어한다면서 그 셋집으로 이사 가는 것을 거부했다.


이사하는 전날 모녀는 주요 가전제품만 달랑 빼내서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 셋집으로는 박씨 혼자만 이사 갔다.


몇 달 후 김씨는 박씨에게 부양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아내인 자기에 대하여 남편은 법률상 부양의무가 있고, 자기가 딸을 데리고 있으니 양육비도 내라는 것이었다.


박씨는 지난 2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김씨에게 지급하였으나 - 회사의 급여통장을 김씨가 관리했다. - 김씨는 박씨에게 용돈을 아주 적게 줬다.


천성적으로 기가 약한 박씨는 김씨에게는 용돈을 더 달라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반면 본인은 술도 좋아하고 밖에 나가서 술값 계산도 잘하는 스타일이었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핸드폰으로 안내 문자가 오는 사채업자들에게 500만원, 1,000만 원씩 돈을 빌리게 되었다.


사채이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 번에는 그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하여 다른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월급에 압류까지 들어 올 상황이 되자 이러다가는 직장까지 잃게 되겠다는 생각에 박씨는 살고 있던 조그만 아파트를 팔아 빚을 정리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박씨에게 용돈을 적게 주면서까지 알뜰하게 살림을 하였는가. 전혀 아니었다. 아파트를 팔 때 박씨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씨는 지난 2년 동안 아파트 관리비조차 내지 않았다. 김씨가 진 빚 또한 많아서 김씨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독촉장도 날아오는 상태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김씨는 걸핏하면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집에 들어왔다는 점이다. 참다못한 박씨가 왜 그리 늦게 들어오느냐고 이유를 물으면 김씨는 24시간 찜질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늦게 들어온다고 하였다.


결혼생활 동안 김씨는 박씨를 남편으로 대접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일방적으로 집을 나가 있으면서도 아직 법률상 배우자라는 이유로 박씨에게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혼을 하면 박씨에게 부양료 청구를 할 권리를 잃게 되므로 김씨는 이혼할 생각이 없었다. 김씨에게 박씨는 편리한 ATM이었다.


나는 우선 이혼 소송부터 제기하자고 하였다. 이혼을 해야만 부양료 지급 의무에서 원천적으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은 이혼하지 않으려 하고 다른 한쪽은 이혼하고 싶을 때는 재판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재판상 이혼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단지 성격차이라고만 해도 이혼이 가능하다. 다만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는 상대방에게 위자료를 많이 지급해야 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민법 840조에 정해 놓은 다음의 사유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 [1.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위 사유 중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가 무엇인지는 판사에 따라, 시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지만,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인정받기 쉽지 않다는 점은 확실하다.


자기가 이혼사유 해당 행위를 저질러 놓고, 내가 잘못했으니 이혼하자고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남편이 부정행위를 해놓고 내가 이혼사유가 되는 행위를 저질렀으니 이혼해달라고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법률에서는 그렇게 잘못을 한 배우자를 '유책(有責) 배우자'라고 한다. 책임(잘못)이 있는 배우자라는 의미다.


박씨가 김씨와 이혼을 하려면 김씨가 위 여섯 가지 사유 중 최소한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저질렀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는 딱 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김씨의 낭비 정도로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안 된다. 그리고, 그 점에 관해서는 아파트를 팔아 빚잔치까지 한 박씨야말로 할 말이 없다. 그것을 사유로 한다면 당장 박씨가 유책배우자가 되므로 이혼청구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될 것이다.


김씨가 셋집으로 같이 이사를 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집을 나가 버린 것은 어떻게 될까. 이것은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에 해당되지 않을까?


그러나 김씨는 딸을 데리고 나갔고, '딸이 그동안 다니던 고등학교에 계속해서 다니게 해 주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으므로 이것을 가지고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데도 무리가 있다.


그래도 일단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소송을 제기해야만 법원의 강제력을 동원하여 핸드폰 통화 내역이나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을 확보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하여 다른 사유를 입증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부양료 사건에 대해서는, 답변서를 제출하면서 김씨가 무늬만 아내였지 사실상 박씨에게 아내 노릇을 제대로 한 것이 못하였으므로 부양료를 줄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에 부합하는 다음의 판례도 찾았다.


“민법 제826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부부간의 동거, 부양, 협조의무는 정상적이고 원만한 부부관계의 유지를 위한 광범위한 협력의무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서로 독립된 별개의 의무가 아니라고 할 것이므로, 부부의 일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동거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협력의무를 스스로 저버리고 있다면, 상대방의 동거 청구가 권리의 남용에 해당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대방에게 부양료의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 [대법원 1991.12.10. 선고 91므245 판결]


김씨가 박씨를 상대로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한 법원에 나도 김씨를 상대로 이혼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두 사건에서 주장이 공통되니까 같은 재판부가 병합 심리하여 달라고 신청하였다.


법원에서는 부양료 결정 사건과 이혼사건은 그 종류가 다르므로 병합할 수 없다면서 각각 다른 재판부에 배당했다.


부양료 결정 사건은 이른바 비송(非訟) 사건이라고 한다. 쌍방이 서로 자기의 권리가 정당하다고 다투면서 판사에게 누가 옳은지 판단을 구하는 소송사건과 달리 비송사건은 권리의 존부에 관하여는 다툼이 없고, 다만 그 권리를 어느 정도 또는 어떻게 행사하면 좋은지 판사가 알아서 결정해 달라고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김씨는 엄연히 박씨의 법률상 아내이므로 부양료를 받을 권리가 있음은 명백한데 박씨가 부양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으니 그 금액을 적절하게 알아서 결정해달라고 판사에게 신청하는 것이다.


비송사건은 소송사건과 다르므로 심리 절차도 다르다. 따라서 소송사건과 병합하여 한 개의 사건으로 만들어서 한 재판부에서 심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가사소송법에는 우리 사건과 같은 경우에는 병합할 수 있다는 근거규정이 있고, 나는 그 규정을 미리 찾아보고 난 후 병합신청을 한 것이므로 병합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은 틀린 것이었다.


이렇게 부양사건과 이혼사건이 각자 다른 재판부에 배당되면 나는 여러모로 귀찮아진다. 똑같은 주장이 담긴 서면과 증거를 원고, 피고를 바꾸어 가면서 이 재판부에도 내고, 저 재판부에도 내야 되며, 재판 기일도 양쪽 재판부가 정하는 대로 내 입장에서는 이중으로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부양료 사건에서든, 이혼청구사건에서든, 김씨의 예금거래 내역, 핸드폰 통화 내역, 김씨의 신용카드 거래 내역을 조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재판부에게 신청했다.


부양료 사건 재판부는 내 신청을 기각하였다. 부양료 액수만 결정하는 사건에서 그런 증거 신청을 받아주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부양료 결정 사건에서는 단지 박씨의 월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김씨가 생활하고 딸을 양육하는데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지에 대해서만 심리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김씨가 아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이상 한 푼의 부양료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김씨가 아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는 이혼사건에서 입증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부양료 사건 재판부는 이혼사건 선고 결과를 보고 부양료 결정을 하겠다고 재판을 미루었다.


이혼 사건 재판부에서는 나의 끈질긴 요청에 따라 결국 나의 증거신청을 모두 다 받아 주었다.


김씨가 거래했던 모든 은행거래 내역, 모든 신용카드 거래 내역, 핸드폰 통화 내역을 모두 확보했다.


핸드폰 통화 내역 사실조회 신청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해야 한다. 증거신청은 소송을 제기하고 난 후 첫 재판 기일에 법정에서 구두로 하는 경우가 관례이다. 재판장은 그 증거신청이 합당한지 판단하고, 합당하면 즉석에서 인용하고, 입증취지가 불분명하면 즉석에서 기각한다.


소송을 제기하고 첫 재판기일은, 법원마다, 재판부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두 달, 석 달 후가 대부분이고, 어떤 경우는 넉 딜쯤 후, 심하면 여섯 달이나 지난 후에야 첫 재판기일이 잡히기도 한다. 소송지연 문제는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통신회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통화내역은 6개월이 지나면 폐기 처분된다. 실제로는 더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첫 재판 기일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쓸만한 통화기록이 모두 사라져 버릴 위험이 있다. 더구나 소송이 제기된 것을 알면, 즉, 전쟁이 시작된 것을 알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핸드폰 통화를 조심하게 된다.


따라서 통화내역이 필요할 때는 첫 재판 기일이 열릴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 말고 소송 제기 후 즉시 별도의 서면(증거신청서)으로 통화내역 조회 신청을 해야 한다. 판사가 그 신청에 따라 통신회사에 사실조회 요청서를 송부하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을 때는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서라도 서둘러 줄 것을 정중하게 부탁해야 한다. 판사 중에는 재판 기일이 오기 전까지는 아예 사건 기록을 열어보지도 않고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경우에 박씨는 김씨가 핸드폰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핸드폰 요금도 부담스럽다면서 김씨가 오래전에 핸드폰을 해지하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김씨가 핸드폰 요금을 아낄 만큼 알뜰한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김씨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라고 박씨에게 말했다. 매사 유능하지 못한 박씨는 알아내지 못했다.


행운이 따랐다. 김씨는 핸드폰 요금을 연체했고, 그 핸드폰 요금 납부 독촉서가 김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인 박씨의 집으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통화내역 조회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SK 텔레콤, KT, LG 유플러스 3개의 이동통신사에 모두 신청해야 한다. 각 통신회사에서는 자기 회사 기지국에서 발신한 기록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 통신회사 별로 통화 내역을 기록하는 양식도 다르다.


김씨의 최근 6개월간 통화기록을 모두 확보한 후 그 통화기록을 자세히 읽으면서 자주 오고 간 전화번호를 찾았다.


김씨처럼 빈번하게 자정 넘은 시간까지 바깥에 있다가 집에 오는 여자는 남자가 있게 마련이다. 나이가 40대 중반인 김씨와 매일같이 어울려 다니면서 밤늦게까지 놀아 줄 여자 친구는 드물다.


박씨는 김씨가 24시간 찜질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늦게 온다는 말을 믿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말도 믿지 않았다. 정말 일을 한다면 퇴근시간이 그렇게 불규칙할 수가 없다. 또한 김씨는 그렇게 밤늦게까지 일을 할 스타일이 아니다.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와 자주 통화할 수밖에 없다. 10대 소년, 소녀의 풋풋한 사랑이나 40대의 칙칙한 불륜 사랑이나 연애하는 방식은 똑같다.


수상한 전화번호를 찾았다. 엄청난 통화 횟수였다. 그러나 그 수상한 전화번호의 소유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봤더니 당연히 남자이기는 하였다.


알려고 하면 다시 판사에게 그 전화번호 소유자가 누구인지, 주소가 어디인지를 알고 싶다고 신청하고, 판사는 그 신청을 받아들여서 그 전화번호 소유자의 인적사항을 알려 달라고 해당 통신회사에 사실조회 요청을 해야 하는데, 판사가 그렇게까지 해줄지 의문이었다.


설사, 판사가 그렇게 해 준다고 하여도 그 다음 절차는 그 전화번호 주인을 증인으로 신청하여 공개된 법정에서 몇 마디 물어보는 것뿐인데, 그렇다고 무슨 신통한 대답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내가 과거 검사로 일할 때와 다른 점이었다. 내가 검사라면 즉시 그 전화번호 주인을 소환하여 김씨와 어떤 관계인지, 몇 시간이든 추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검사실에는 검사와 수사관 외에는 아무도 없다. 어떤 설득도, 회유도 가능하다.


은행 거래 내역서도 일일이 읽어 보았다. 박씨의 월급 전액은 박씨의 이름으로 된 통장으로 입금되는데 그것을 김씨가 가지고 있다. 김씨는 그 통장으로 월급을 받는 자기 명의로 된 계좌로 그 돈을 이체시켰다. 자기가 돈을 쓰는 내역을 박씨 가 나중에라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재판이 벌어지면 자기 이름으로 된 계좌의 거래내역도 모두 밝혀진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씨는 매월 상당한 금액을 특정인에게 송금하고 있었다. 채권자였을 것이다.


신용카드 내역서도 꼼꼼히 읽어 보았다. 돈 쓴 내역을 보면 정상적인 가정주부가 아님이 금방 드러난다. 매 끼니를 사 먹고 돌아다녔으며, 주말도 마찬가지며,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계산한 것도 많았다.


내가 원하는 ‘바람피운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모든 자료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앗, 신용카드 하나가 더 있었다. 독촉장 중에는 그 신용카드 대금 납부를 촉구하는 것이 있었다.


신용카드 회사가 김씨로부터 신용카드 대금을 받지 못하자 채권추심회사에게 채권양도 형식을 통하여 그 신용카드대금 채권을 팔았다. 채권추심회사가 채권양수인의 자격으로 김씨에게 그 신용카드 대금 납부를 독촉하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발신자 명의와 '채무변제 독촉'이라는 문서 제목만 보고 채권추심회사가 사채업자인 줄 알고 무심코 넘어갔으므로 신용카드 관련 채무인지 몰랐었다.


그렇게 찾은 신용카드의 거래 내역을 알고 싶다고 판사에게 다시 사실조회 신청을 하였다. 판사는 그 신청을 받아 주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 신용카드 내역 조회서를 받아 본 순간 나는 환호를 했다. 러브모텔에 출입한 내역이 무수히 있었다. 김씨는 거의 사흘에 한 번 꼴로 러브모텔에 들락거렸고, 그것도 주로 자기가 사는 지역에 있는 러브모텔촌의 러브모텔을 출입하였다. 가끔씩 울진, 강릉, 속초, 강화 등 경치 좋은 바닷가로 놀러 가서 그곳 모텔에 투숙하기도 하였다.


그 모텔들에 출입한 날짜, 시간, 장소, 금액을 정리하여 일목요연하게 표로 만들었다.


흔적이 남는 신용카드로 모텔 대금을 치르다니 김씨는 참으로 간이 큰 사람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만큼 남편인 박씨를 우습게 알고 있었다.


남자, 여자가 모텔에 출입할 경우에 남자가 계산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김씨는 특이하게도 자기가 계산을 하였다. 남자가 계산한 것은 내가 알 수 없으니까 둘이 번갈아 가면서 계산하였을지도 모른다.


김씨가 모텔에 그렇게 많이 간 이유를, 박씨와 싸우면 집에 있기 싫어서 모텔에서 잤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용카드 내역서에는 모텔료를 지불한 시간도 정확하게 나와 있고, 금액도 나와 있다. 그 시간이 밤에 자러 들어가는 시간이 아니었다. 또한, 금액도 시간당 대실료이지 하룻밤 숙박료는 아니었다. 그 점도 몇 군데 모텔에 전화를 걸어서 다 확인했다.


추측컨하건대 이제 남아 있는 김씨의 변명은, 그 신용카드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었고, 그 사람이 그 신용카드를 사용하였다는 주장일 것이었다.


그렇게 주장할 때는 그 다른 사람이 최소한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야 하고, 모텔 출입 때 사용한 신용카드 전표의 서명도 그 다른 사람이 한 것임이 입증되어야 하며, 그 다른 사람이 그 신용카드 대금을 김씨에게 어떤 방식으로 지급하여 왔는가도 입증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그것 말고 김씨 본인이 직접 그 신용카드를 사용하였다는 점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것을 지금 미리 증거로 제출할 필요는 없다. 김씨가 거짓말하도록 함정을 파야 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판사들에게 신뢰를 잃는다. 그렇게 신뢰를 잃게 하기 위하여 재판에서 변호사들은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도록 유도한다.


나는 이혼 사건과 부양료 사건에 그 신용카드 내역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모텔 출입내역을 잘 정리해 놓은 표도 함께 제출했다. 판사의 눈에 확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혼 사건 재판부에는, 민법 840조에 정해 놓은 사유 중 하나인 [1.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를 청구원인으로 추가했다. 이제 딱 맞아떨어지는 이혼사유를 찾아낸 것이다. 부양료 사건 재판부에는, 단지 아직 이혼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렇게 바람 핀 배우자에게까지 부양료를 줘야 하느냐고 주장하였다.


김씨가 뭐라고 변명할지 기다렸다. 김씨의 변호사는, 김씨가 그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김씨의 절친한 친구인 S가 사정이 딱해서 S에게 신용카드를 빌려 주었는데, 그 S가 모텔에 출입한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내 예상대로였다. 그러면서 그 친구 S는 김씨의 딸도 잘 알고 있을만큼 친하다고 진술하였다.


거짓말 하는 사람의 특징은 꼭 제삼자를 끌어들인다. 또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과 변명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마련이다. 김씨의 변호사는 미성년자인 딸이 작성한 진술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그 진술서에서 엄마 친구인 S를 자기도 잘 알고 있고, S가 엄마 신용카드를 빌려 간 사실도 알고 있다고 딸은 썼다.


그 진술서에는 최근 S가 어디론가 사라져서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는 말도 있었다. 김씨의 변호사는 내가 S를 증인으로 신청할까 봐 딸을 내세워서 S는 현재 소재불명 중이므로 증인신청해봤자 소용없다는 시사를 한 것이었다. 나는 김씨의 변호사가 부리고 있는 술책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김씨를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한 구석으로 몰아넣었으니 폭탄을 투하하기만 하면 된다. 게임 끝의 순간이 온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는 무엇일까?


신용카드 대금 내역서에는 대금을 결제한 시각과 가맹점인 모텔의 이름 뿐만 아니라 모텔의 주소까지 나온다. 핸드폰 통화 내역에는 통화를 한 시각뿐만 아니라 통화한 장소를 관할하는 기지국 주소가 나온다.


김씨가 모텔에 있을 때 핸드폰 통화를 하였다면, 모텔의 주소와 기지국의 주소는 일치하지 않을까? 밥 먹다가 갑자기 그 생각이 떠 올라서 사무실로 부랴부랴 돌아와서 신용카드 대금 내역서와 핸드폰 통화 내역서를 대조하였더니 내 생각이 맞았다.


김씨가 울진의 어느 모텔에서 신용카드로 모텔료를 계산할 때의 주소와 그 시간 무렵에 김씨가 핸드폰으로 통화하였을 때의 기지국 주소는 일치하였다. 정확하게 번지까지는 같지 않다. 기지국은 근처의 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모텔에 갈 때마다 핸드폰 통화를 했고, 울진, 강릉, 속초, 강화 등 먼 곳에 놀러 갈 때는 통화 횟수가 많았다. 모텔에서 꼬박꼬박 자기의 딸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모텔의 주소와 기지국의 주소는 일치했다.


김씨는 S가 핸드폰도 빌려 갔다는 변명은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통화 상대방의 전화번호들은 김씨의 딸이었으므로.


S가 김씨의 신용카드를 빌릴 수는 있겠지만 김씨의 핸드폰을 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 핸드폰으로 그 모텔에 투숙한 시간에 전화를 건 상대방은 김씨의 딸을 포함하여 모두 김씨의 지인들이었다.


김씨의 변호사가 위와같이 변명을 하고 난 후에 나는 위와 같은 자료를 증거로 제출했다.


이 묵직한 한 방으로 소송은 끝났다. 박씨와 김씨는 이혼했다. 김씨는 박씨로부터 부양료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혼사건은 이혼의 성립 여부와 별개로 항상 세 가지 이슈가 따라다닌다.


첫째는 위자료이다. 결혼의 파탄원인을 만든 당사자는 상대방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 김씨가 바람피운 것이 입증되었으므로 박씨는 김씨에게 위자료를 받아야 하지만 김씨는 무일푼이기 때문에 받지 못했다.


두 번째는,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을 때 그 양육권자가 누구가 되는가이다. 민법에 의할 때 미성년자라고 함은 만 19세가 되기 전까지를 말한다. 이 사건에서 만 17세인 딸은 엄마인 김씨와 살겠다고 했고, 재판부는 아이가 아주 어리지 않는 한 자녀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주므로 양육권자를 김씨로 지정했다. 김씨가 양육권자가 되면 박씨는 김씨에게 양육비를 지급해야 한다.


세 번째는 재산분할이다. 이는 남편 명의로 재산이 다 되어 있지만, 남편이 돈을 버는 대신 아내가 내조를 한 것이므로 아내에게 그 기여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거꾸로 아내가 결혼 전 친정아버지에게 증여받은 아파트이지만, 남편이 그동안 열심히 돈을 벌어 왔기 때문에 그 아파트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인정되면 - 즉, 남편이 돈을 벌어 오지 않았다면 수입이 없는 아내로서는 생활비 마련을 위하여 아파트를 팔아야 했을 것이다. - 그 아파트의 일정 지분은 남편 것이 된다.


돈을 벌어 온 배우자가 평범한 직장의 샐러리맨이라면 재산분할은 50 대 50이 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배우자가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돈을 아주 많이 번 사람이라면 그 재산 분할 비율은 달라질 수 있다.


박씨와 김씨는 나눌 재산이 특별히 없었으므로 이 사건에서 재산분할은 이슈가 되지 않았다.


돈이 별로 없었던 박씨였으므로 나는 수임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또한 이 사건은 무려 1년 9개월이나 끌었다. 그래도 박씨를 소개해 준 분이 나와 특별한 관계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이 사건을 수임했었다. 수임료가 많든, 적든 일단 수임하면 변호사는 수임료 액수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직업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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