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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 둘째 날 아침
조식을 먹고 산책을 갔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에어컨을 켜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휴대폰을 만진다. 오른쪽 창문 너머로 하늘색 하늘이 보인다. 그 사이로 흰색 구름이 두둥실 흘러간다. 아- 나 정말 쉬고 있구나. 요즘말로 하면 나 지금 행복핑..!!!!!
이곳에 와서도 아직 두고 온 업무들이 있어서 신경이 쓰였다만, 왜인지 슬랙을 꺼내서 메시지를 보는 게 두렵진 않다. 물리적인 환경을 바꾸니 내가 매일같이 가까이에서 보던 그곳을 한 걸음 멀리에서 볼 수 있게 된다. 비로소 여유 있게 삶을 마주한다.
화장실에 다녀온 친구가 침대에 기대어 앉아 노트북을 폈다. 그때 울리는 슬랙 알림 소리. 평온해진 줄 알았던 마음이 슬랙 알림 소리에는 화들짝 반응한다. 누가 보라카이 와서 슬랙 알림 켜두냐~! (슬랙은 주로 IT회사에서 사용하는 사내 커뮤니케이션 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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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 1층에 있는 수영장에 왔다. 꽤나 깊다. 미리 챙겨 온 팔 튜브를 양팔에 야무지게 끼고 수영장 끝에서 끝으로. 옆으로도 헤엄쳐보고, 뒤로 누워서도 헤엄쳐보고, 물장구치는 아이들 사이로 열심히 다리를 움직였다.
한바탕 놀고 나서 풀 바에 가서 주스를 시켰다. 망고 스무디와 갖가지 과일들을 섞은 주스 트로피칼 웨이브. 어제보다 힙한 노래가 나오고 눈앞에 야자수가 바람에 흔들린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소리들이 들린다. 물장구 소리도.
— 07:06 PM
졸리비 먹으러 왔다. 주문은 친구에게 맡기고 자리 맡는 중. 치킨 맛집인가 했는데 사람들이 스파게티를 먹고 있다. 나도 스파게티랑 닭다리 같이 나오는 세트를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궁금하다. 가게 앞에 졸리비 캐릭터 모형 있던데. 나가면서 같이 사진 찍어야지. 여기는 신기하게 셀프로 자리를 정리하진 않는다. 먹던 콜라를 버리려고 정리하는 곳을 찾아 가게를 한 바퀴 돌았는데 따로 반납하는 곳이 없다. 자리에 두고 나가면 치워주나 보다.
— 08:01 PM
졸리비는 졸리 맛있었다. 튀김의 바삭함과 매콤함이 KFC를 이겼다. 필리핀 최고의 아웃풋이라는 생각을 하며 뚝딱 비우고 나왔다. 원래는 9시 30분 셔틀을 예약했었는데 8시 셔틀이 왔길래 탈 수 있냐고 물어보고 마지막 탑승자로 겨우 탔다. 두둑해진 배와 조금 전 카페에서 산 초코 머핀, 동네 과일가게에서 산 망고 두 개, 마트에서 산 일회용 케이크 칼을 들고 다시 숙소로 향한다. 뭔가 성공적인 하루.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