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날, 처음으로 학교에서 엄마를 불렀던 것 같다. 전화로 끝나는 게 아니라 부모님을 학교로 불러낼 만큼 나는 잘못을 했다. 면담 시간을 가진 후 엄마와 나는 교무실 문을 나와서 학교 건물을 빠져나왔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은 주황빛 햇살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가로질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무 말 없이 차에 타는 엄마를 따라서 나도 뒷좌석에 올라탔다. 차에 시동이 걸렸고 주차장을 나와서 정문을 통과했다. 엄마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차로 10분이었다. 다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고, 소방서를 지났다. 방지턱을 넘고 이어서 교회를 지나고, 경찰서도 지나고, 큰 아파트 하나, 둘, 세 개를 지났다. 방지턱을 하나 더 넘으니 집에 다다랐다. 엄마는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 나는 엄마를 따라 내렸다. 열쇠를 가지고 대문을 열 때까지, 대문을 열고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 때까지. 엄마는 말이 없었다. 현관이 열리고 신발을 벗고서 거실로 들어섰다. 그때 소파 앞에서 엄마가 멈춰 섰다. 나도 따라 멈췄다. 엄마는 곧이어 소파에 앉으셨다. 나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3분쯤. 정적이 흘렀을까.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보는 엄마의 눈물이었다. 눈물을 넘어서 울음이었다. 엄마가 엉엉 울었다.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울어야 할지 무릎을 꿇어야 할지 휴지를 건네어야 할지. 죄송하다고 빌어야 할지. 차마 그렇게 우는 엄마 앞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그런 엄마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어린 날의 기억이다.
<엄마가 궁금해지는 나이> 中
그 날 엄마는 왜 그리도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던 걸까? 살면서 내게 소리 한 번 치지 않았던 엄마는 그 울음으로 내게 소리를 친 걸까?
공교롭게도 나는 올해 엄마가 엄마가 되었던 나이, 스물다섯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엄마가 궁금해진다.
엄마라는 사람이,
엄마라는 두 번째 이름 앞에 내가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첫 번째 이름이,
첫 번째 이름으로 불리던 그 시절의 엄마가 궁금해진다.
아마 엄마와 함께 했던 많은 순간들을 꺼내게 될 것 같다. 철없었던 기억도 꺼내게 될 것 같아 벌써부터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자라오면서 함께 했던 시간들 중 죄송스러웠던 기억을 담을 때는 한 편의 참회록이 될 것 같고, 엄마의 따뜻함을 느꼈던 기억을 담을 때는 따뜻한 글이 될 것 같다.
함께한 시간이 어떻든 엄마와 지내온 시간이라면 모두 추억하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앞으로 함께 보낼 시간에 대한 기대감도 한 줌 얹어.
내 나이 스물다섯, 엄마가 엄마가 되었던 나이.
몇 해 전세계 여성의 날에 친오빠 훈석이 남겼던 메모로<엄마가 궁금해지는 나이>를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