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의 먼나라 이웃나라 여행

Chapter.8

어린왕자가 열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는 아버지마저 그 뒤를 따르셨다. 다섯 형과 두 누나, 그리고 맨 막내였던 어린왕자에게 세상은 조금 더 조용해지고, 미래는 한층 더 어두워졌다.


형제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눈앞이 보이지 않는 앞날을 위해 무엇인가 큰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가진 것도, 기댈 곳도 없었던 그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길은 공부, 그것도 유학뿐이라고 생각했다.


형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떠난 이는 셋째 형이었다. 그는 안정적인 고등학교 교사직을 뒤로하고, 단돈 150달러를 손에 쥔 채 유럽 유학길에 올랐다.


나는 어린왕자의 셋째 형이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갔을 거라 생각한다. 아마 부산에서 현해탄을 건너 일본 고베로 간 뒤, 그곳에서 요코하마와 마르세유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을 탔을 것이다. 긴 항해였겠지만, 새로운 별을 찾아 떠나는 마음은 가볍지 않았을까.


큰형은 막 결혼해 쌍둥이를 키우느라 눈코 뜰 새 없었고, 둘째 형은 공부에는 뜻이 없어 누님 댁에서 따로 살고 있었다.


셋째 형이 떠나기 전날 밤, 셋째 형과 넷째 형, 그리고 어린왕자는 부산항 부두 근처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소주잔을 나누었다고 했다. 아마 그 술은 다정한 이별이었고, 조용한 약속이었을 것이다.


셋째 형은 넷째 형에게 말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1년 후에 네 대학 입학 허가서와 비행기표를 꼭 보낼게. 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어학 공부만 열심히 해. 그리고 훗날엔 막내동생을 책임져야 해.”


그때 넷째 형은 군에서 막 제대한 참이었고, 그 말을 듣고 복학 대신 어학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출발하던 날, 큰형도 부산항에 나와 있었고, 형제들은 석양을 등지고 조용히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마음속엔 말 못 할 무언가가 일렁였을 것이다.


유럽에 도착한 셋째 형은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온 힘을 다해 일했고, 정확히 1년 뒤, 넷째 형에게 입학 허가서와 초청장, 그리고 비행기표를 보냈다.


넷째 형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1년 만에 셋째 형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고, 교수의 추천으로 가톨릭 장학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6년 동안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무렵 큰형도 훔볼트 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유럽에 도착했고, 2년 반 만에 철학 박사 학위를 빠르게 마쳤다. 그 소식은 조용히 날아든 별빛처럼 반가웠다.


그리고 넷째 형은 부산항에서의 맹세를 지키듯, 어린왕자에게도 비행기표를 보내왔다. 형제들의 약속은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나는 어린왕자의 형제들이 모두 유학을 갈 수 있었던 데에는 셋째 형의 결단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먼저 떠나고, 또 동생들을 불러오는 그 마음의 무게는 얼마나 컸을까.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어린왕자의 셋째 형이 그런 결단력을 지니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전쟁 때 만난 인민군 장교가 치료를 받으며 고통을 참다가 남긴 말 때문이었다.


“에잇, 총 맞고 죽기도 하는데 이까짓 것 뭐라고……”


그 말은 셋째 형에게 언제나 버팀목이 되었고, 인생의 많은 순간을 이겨내게 해준 문장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린왕자도, 일본풍의 그림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몇몇사람들은 어린왕자가 철새들이 이동할 때 무리에 섞여 자신의 별을 떠나왔다고 생각했지만, 난 그건 터무니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왕자는 분명히 에어프랑스나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을 것이다.


그는 인기리에 연재하던 몇몇 만화를 마무리하고, 자신만의 선과 색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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