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0
어린왕자가 다음으로 도착한 별은 도이칠란트였다. 이 별은 어린왕자가 살던 별처럼 둘로 나뉘어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는 게르만족들이 살아왔다. 하지만 이 별은 비가 잦고 춥고 습한 기후 때문에 농사짓기나 사람이 살기엔 그리 적합하지 않았고, 문명 세계와의 접촉도 늦어져 사람들이 주로 숲속에 흩어져 살아갔다.
지중해 세계를 정복했던 위대한 로마제국조차 이 별의 날씨가 너무 추워 정복을 시도하지 않았다. 단 한 번, 군대를 이끌고 이곳으로 쳐들어온 적이 있었으나 숲속에서 전멸당한 뒤로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시간이 흘러 숲속에 살던 이 별의 사람들도 점차 문명과 접촉하게 되었고, 인구가 늘어나자 로마가 지배하던 비옥한 별로 이주해 군인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먼 동쪽에서 훈족이라 불리는 두려운 종족이 이 별을 침공하자, 이 별의 많은 이들이 유럽 전역으로 흩어져 각지에서 나라를 세웠다.
이 별에 남은 이들도 나라를 세우긴 했지만, 누구 하나 왕이 되기에 마땅치 않아 여러 제후가 모여 왕을 선출하기로 했다. 선출된 왕들은 힘이 없었고, 서로 돌아가며 왕이 되었다. 어느 순간, 이 별의 왕은 한때 무너진 로마제국의 황제라는 상징적인 지위를 얻게 되었지만, 실제로 이 별 전체를 다스리진 못했다.
그리고 이 별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두고 내부 갈등이 발생했고, 결국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게 되었다. 이 모습을 달갑게 보지 않은 주변 별들이 개입해 30년에 걸친 전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이 별은 무려 300개가 넘는 작은 나라로 나뉘고 말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늘 주걱턱을 가진 왕이 다스리던 오스트리아라는 나라는 가장 강력하여 황제직을 겸했지만, 이 별 전체보다는 외부 세계에 더 관심을 두었다. 한편, 변두리에 있던 프로이센이라는 나라는 전쟁 피해가 덜했고, 이곳에서는 늘 군복을 입고 다니는 왕이 등장하여 나라를 철저히 군대식으로 만들며 힘을 길러나갔다.
결국 능력 있는 총리가 등장해, 주변의 세 강한 별들과 싸워 모두 승리한 뒤 이 별을 하나로 통일시켰다. 하나가 된 이 별은 자신감으로 충만해졌고, 이미 다른 별들이 나누어 가진 세상을 되찾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세계대전이 벌어졌다. 양 진영 모두 수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 별은 결국 패배해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경제는 무너졌고, 사람들의 자존심은 깊이 상처받았다.
이 틈을 타, 화가가 되고 싶었던 한 사내가 등장했다. 코밑에 특이한 수염을 기른 그는 ‘갈고리’ 모양의 상징을 내세운 당을 만들어 사람들을 선동했고, 이 별을 장악했다. 그는 모든 문제의 책임을 이 별에 정착해 살던 유태인들에게 돌렸고, 그들을 강제수용소에 보내 학살했다. 그리고 과거의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 다시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거의 승리할 뻔했지만, 결국 완전히 패배했고 이 별은 폐허가 되었다. 두려움을 느낀 주변 별들은 이 별이 또다시 전쟁을 일으킬까 걱정해, 이곳을 둘로 나누었다. 서쪽은 자유주의 국가로, 동쪽은 공산주의 국가로 나뉘었고, 수도인 베를린조차 벽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폐허 속에서도 서쪽의 이 나라는 짧은 시간 안에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다시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어린왕자가 이 별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놀란 것은 거리의 청결함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질서와 법을 지키는 태도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이 별의 대학은 등록금이 전면 무료였으며, 심지어 다른 별에서 온 이들에게도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어린왕자가 살던 세계와는 달리, 이 별은 분단된 상태에서도 두 지역 간 왕래가 가능했기에, 그는 양 진영의 차이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이 별에 도착한 어린왕자는 전통 산악모자에 반바지를 입고 바쁘게 시계를 들여다보는 철학자를 만났다.
“여긴 어떤 곳인가요?”
“우리는 정확함과 질서를 소중히 여겨. 기차도 단 1초도 어긋나선 안 되지.”
철학자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 별에서는 뛰어난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많이 태어났단다. 그들이 남긴 정신은 이곳의 정확함과 정의로움의 뿌리가 되었지. 우리는 그런 기반 위에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들은 규칙을 철저히 지키며 각자의 일에 책임을 다하지.”
철학자는 자부심에 찬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린왕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런데요, 이 별 사람들도 규칙을 어겼을 때 처벌이 없다면 정말 스스로 지킬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2차 대전 후에 강대국이나 유태인에게는 사과했지만, 과거 식민지였던 나미비아 같은 별에는 아직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잖아요?”
철학자는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 속 어딘가 텅 빈 듯한 공허함과 냉기가 서려 있었다.
어린왕자는 갑자스런 냉기에 옷깃을 올리며 다른 별을 향하여 다시 출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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