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1
다음 도착한 별은 영국이었다.
그곳에는 여왕이 살고 있었다. 런던의 버킹엄 궁전에서는 매일 오전 11시면 근위병 교대식이 열렸고, 이를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별은 여전히 여왕이 사랑받는 드문 경우였다. ‘영국’이라 불리는 이 별은 사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라는 네 지역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각 지역은 역사와 성격이 달라 서로를 다른 나라 사람처럼 대하기도 하며, 축구 월드컵에도 각기 다른 팀으로 출전한다.
이 별은 원래 ‘브리튼’이라 불리는 켈트족의 섬이었다. 이후 ‘시이저’라는 이름의 장군, 제왕절개로 태어난 로마의 지도자에 의해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점차 로마화되었다. 북방의 켈트족은 로마화되지 않았기에, 그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이 세워졌는데, 그것이 훗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계가 되었다.
로마 제국이 쇠퇴하고 군대가 철수하자 앵글로색슨족이 침입했고, 로마화된 켈트족은 밀려났다. 이후 여러 왕국이 세워졌고, 바이킹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결국 잉글랜드는 통일왕국이 되었다. 원래 이곳의 주인이었던 켈트족은 북쪽의 스코틀랜드, 서쪽의 웨일즈, 바다 너머 아일랜드로 쫓겨났다.
그러나 통일된 잉글랜드는 곧 프랑스의 영토에 정착한 노르만인들의 침략을 받아 다시 정복당했고, 그 결과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더 널리 쓰였다. 이로 인해 오늘날 영어는 독일어계 언어에 프랑스어 어휘가 섞인 ‘짬뽕언어’가 되었다. 정복자였던 윌리엄 왕은 프랑스 국왕의 신하였기에, 영국왕 또한 형식적으로는 프랑스왕의 신하였고, 훗날 이것이 백년전쟁의 씨앗이 되었다.
한편, 귀족들은 두 장미를 상징으로 내세워 ‘장미 전쟁’을 벌이며 왕위 쟁탈에 혈투를 벌였다. 그리고 왕의 전쟁과 세금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은 왕에게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게 하여 권력을 제한하고 의회 정치의 씨앗을 틔웠다. 섬나라였던 이 별은 전쟁이 끝난 뒤 대륙처럼 대규모 군대를 유지할 수 없었고, 이는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의 촉진제가 되었다.
이 별의 역사에서 가장 기묘하면서도 흥미로운 인물은 헨리 8세였다. 그는 여섯 명의 왕비와 결혼했으며, 이혼을 위해 교황과 결별하고 영국 국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이는 유럽의 다른 별들과 전혀 다른 종교개혁이었다. 헨리의 딸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처녀 여왕’으로 불렸으며, 그녀의 통치 아래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 제국의 황금기를 열었다.
그러나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권력은 혼란 속으로 빠졌고, 왕과 의회는 충돌하였다. 결국 왕은 참수당했고, 이 별의 역사상 유일한 독재자 크롬웰이 ‘호국경’이 되어 공포 정치를 펼쳤다. 그가 죽은 뒤에는 왕과 의회가 절충하며 입헌군주제가 정착되었다.
정치적 안정 이후,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대량생산과 식민지 쟁탈의 시대인 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시기,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도 커졌지만,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이 별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승리했음에도 이 별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식민지들은 하나둘 독립했고, 이 별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이 별이 인류사에 남긴 흔적은 지울 수 없다. 영어는 오늘날 전 세계의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대 세계의 기초를 설계한 존재가 바로 이 별, 영국이었던 것이다.
이 별 사람들의 독특한 점은 대부분의 별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는 데 비해, 그들은 ‘차(TEA)’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차는 이들의 일상과 떨어질 수 없는 음료로,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시는 모닝 티, 오전 11시의 티 브레이크, 그리고 오후 4시의 티타임은 이 별 사람들의 생활 리듬이다. 그들의 차 사랑은 미국 독립전쟁과 아편전쟁이라는 세계사의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별에 도착한 어린왕자는 멋진 프록코트 정장에 우산을 든 신사를 만났다.
“여긴 어떤 곳인가요?”
“우리는 예의를 중시하고, 전통과 격식을 중요하게 여긴단다. 나는 아주 신사적이지!” 신사는 콧수염을 다듬으며 말했다.
“우린 감정을 억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그래서 스포츠에서도 승패를 떠나 페어플레이를 중시한단다.” 신사는 우산을 마치 골프채처럼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감정의 절제와 예의바름이 신사의 덕목이로군요.”
그러나 어린왕자는 금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신사적인 사람들이 축구 경기에서는 훌리건이 되고, 선정적인 언론이 넘쳐나는 거죠? 그리고 과거 인도와 중국에서 한 일들은 전혀 신사적이지 않았어요!”
신사는 헛기침을 하며 시계를 보더니, 티타임이라며 격식 있게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어린왕자는 이 별 사람들이 ‘절제와 예의’를 강조하지만, 그 안에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두 얼굴이 있다고 느꼈다. 그들의 예의는 후천적으로 훈련된 것이고, 내면에는 여전히 야만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별이 이룬 민주주의, 산업혁명, 세계로의 팽창은 부럽고 경이로웠다. 하지만 비가 자주 오고, 변덕스러운 날씨는 마음에 들지 않아, 어린왕자는 다시 다음 별을 향해 떠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