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김 워커 (10화, 마지막)

by 에이나



어느새 날아오른 닭대가리가 날개를 펼치고 퍼덕이면서 그의 머리를 부리로 쪼아대고 있었다. 날갯짓에 깃털이 날리고 이마에서 피가 길게 흘렀다. 덕분에 그녀는 그를 밀치고 튕겨 오를 수 있었다. 그녀의 기세를 따라 닭대가리도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그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그녀는 있는 힘껏 그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그는 괴성을 지르며 중심을 움켜쥐고 고꾸라졌다. 그녀도 제풀에 철퍼덕 땅에 손을 짚으며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들자 저만치 단단해 보이는 무언가가 달빛을 받아 눈에 띄게 빛나고 있었다. 도낏자루였다. 그걸 잡기 위해 그녀는 두 손을 땅에 짚은 채로 무릎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휘청대며 미끄러지다 겨우 일어선 그가 뒤쫓았다. 휘적대는 두 사람의 발에 차인 진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결국 도낏자루는 그녀의 손에 다시 쥐어졌다. 고향에선 신목(神木)이라 불렸다던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단단한 박달나무에 새겨진 부분(金)을 꼭 쥔 그녀의 손이 그를 향해 날아갔다. 도낏자루를 막아선 그의 팔이 ‘딱’하고 부러지는 소리를 냈다.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은 그는 그녀의 도낏자루에 연달아 얻어맞고 뒤로 널브러졌다. 최후의 일격을 위해 솟구쳐 나온 희열을 느끼며 자신의 오랜 연장을 다시금 치켜든 그녀는 하지만 멈춰 섰다.

‘유리가 살았다면 이놈 나이쯤 됐을까?’

생각만으로도 활활 타오르던 심장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놈은 강간범이다. 하지만, 나는? 강간범의 딸이 아닌가? 유리 김도….

미간을 모은 그녀는 도낏자루 끝으로 남자의 배를 살짝 눌러보았다. 그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기를 쓰고 꿈틀거렸다. 그녀를 경계하며 흘깃 노려보았으나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가 가까스로 몸을 뒤집어 땅에 배를 대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양을 쳐다보았다. 그는 부러진 팔을 붙잡고 앉더니 일어나서 비틀대기도 했다. 피거품이 묻은 입술 사이로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계속 새어 나왔다. 잠자코 노려보는 그녀와 출입구 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헐떡대던 그가 깽깽이걸음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주저하다간 길을 잃고 죽는다.’

그녀는 모친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마침내 도낏자루를 쥔 손에 힘을 더 꽉 주고서 그녀는 그를 쫓아갔다. 자박자박 내딛는 걸음마다 축축한 나뭇잎과 돌멩이, 나무뿌리가 걷어차였다. 땅거미가 내린 숲은 어두웠으나 그녀가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정신을 맑게 해주는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나뭇가지에 올라가 있던 닭대가리의 푸드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그는 바싹 추격해 온 그녀를 돌아보았다. 번쩍 쳐든 도낏자루가 달빛을 반사했다. 그는 강렬한 빛에 눈이 부신듯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땅은 부드러워졌으나 아직 봄은 아니었다. 사위어 가던 겨울이 깨어나 오히려 지붕 위로 눈송이를 흩날렸다. 지붕 아래 단정한 침실을 지나 층계를 내려간 거실에는 벽난로의 장작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촛불을 밝힌 식탁에 앉아 온통 붓고 멍이 든 얼굴로 메리 김 워커는 생각에 잠겼다. 중얼거리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펼쳐놓은 노트에 계속 무언가를 써 내려가던 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불안한 눈으로 창밖을 쳐다보았다. 유리창에 가끔 눈송이가 날아와 부딪혔다. 달빛은 고요한 정취를 자아내며 어둠을 비추었다. 바깥엔 아무도 없었다. 닭장 속 암탉도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정말이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멀리서 이 집의 온기가 굴뚝을 타고 조용히 숲에서 밤하늘로 흩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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