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알겠지. 너 따위 년한테 여긴 너무 과분하다는 걸. 네가 갈 곳은 이제 지옥밖에 없다는 걸 말이야.
본색을 드러낸 그의 악담에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녀는 총구를 분명히 겨눈 채 나지막이 말했다.
강간범.
고작 그 한 마디에 그는 놀라서 움찔거렸다.
그래, 네 놈이 맞는군. 그 현상 수배범, 폭행에 강간범, 지옥에 갈 놈은 너잖아, 아니야?
그녀는 한 걸음 내려섰다. 반대로 한걸음 물러서는가 싶던 그는 걸음을 허공에 멈추고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 더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도끼날을 던졌다. 도끼날이 번쩍이며 휙휙휙 돌며 날아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그녀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도끼날은 재빨리 피한 그녀의 어깨를 비껴 날아가 계단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동시에 발사된 총알은 공중에서 분사되어 비스듬히 열려 있던 현관문을 박살 냈다. 문 뒤에 숨어있던 석양빛이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층계 벽에 납작 붙어있던 그가 성큼성큼 뛰어올라가 이 층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덮쳤다. 총을 빼앗으려는 그와 힘겨루기 하던 그녀는 개머리판을 휘두르다 밀쳐져 벽에 가서 부딪혔다. 놓친 총은 침대 밑의 제자리로 ‘철커덕’ 미끄러져 들어갔다. 엉겨 붙은 두 사람이 중심을 잃고 층계를 굴렀다. 두 사람은 현관을 지나 마당의 진흙 밭까지 떼굴거리며 굴러갔다.
굴러가 처박히며 엎어진 그가 먼저 일어나서 굴러가 뒤집힌 채 대자로 누운 그녀를 덮쳤다. 그는 목을 졸랐고 그녀는 마구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며 반항했다. 이번엔 그의 목으로 손을 뻗친 그녀가 손가락에 힘을 주어 움켜잡았다. 그는 가까스로 자신의 목에 달라붙은 그녀의 손을 그러쥐어 뿌리쳤다. 그녀는 오른발로 세차게 그의 어깨를 걷어찼다. 벌렁 나자빠진 그가 버럭 욕을 하며 막 일어서던 그녀의 발목을 잡아당겨 넘어뜨렸다. 날아온 주먹에 얼굴을 강타당한 그녀는 눈앞에 번갯불이 일며 정신이 아뜩해졌다. 뒤로 젖혀진 고개를 간신히 들고서 움직여 날아오는 주먹을 피했다. 그녀는 죽을힘을 다해 그의 사타구니를 잡았고 뜯어내듯 움켜쥐었다. 그는 비명을 내지르며 그녀를 발로 차서 떨쳐냈다. 그 틈에 일어서려는 그녀의 발목을 그가 또 잡아당겼다. 둘은 한동안 그렇게 진흙 밭을 어지럽히며 뒤엉켜 싸웠다. 성별도 나이도 달랐지만, 어느 한쪽으로 크게 기울지 않는 대결이었다. 남자가 약한 게 아니라 그녀가 워낙 다부졌기 때문이었다. 서로 차이가 크게 나는 상대와 달리 이런 경우는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일지도 몰랐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그가 털썩 주저앉은 그녀의 얼굴을 후려 팼다. 코피가 터졌고 그녀의 턱과 가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코뼈가 깨져서 마비됐는지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피 칠갑에 오히려 그가 멈칫했을 뿐이었다. 쓰러지는가 싶던 그녀는 하지만 온 힘을 다해 그의 상체를 정수리로 받아 쓰러뜨리고 다시금 목을 졸랐다. 캑캑거리며 요리조리 턱을 빼는 그의 얼굴을 잡고서 철썩철썩 따귀를 갈겼다. 그의 볼때기가 붉다 못해 보랏빛을 띠며 이내 부어올랐다. 볼썽사나운 얼굴로 머리끝까지 분노를 표출하며 그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무릎으로 배를 치받고 또 발로 밀쳐냈다. 쓰러진 그녀를 올라탄 그가 목을 졸랐다. 숨통이 졸린 그녀보다 핏발 선 눈으로 애절하게 힘을 쏟는 그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벌어진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들이 차례로 죽어갔을 때 자신이 기뻐했던 것처럼, 이 자야말로 세상에서 자신의 죽음을 가장 기뻐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땅을 휘젓던 손을 들고서 그녀는 남자의 눈과 코, 입과 귓구멍을 닥치는 대로 짓눌렀다. 그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버둥대다 그녀의 손가락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