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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Apr 02. 2018

개와 음악가와 체조선수가 공존하는, 미국의 공원

디자이너의 미국 라이프스타일 리서치

늦은 오후,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싶어 선글라스와 물통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바쁘게 길을 가는 차들과 사람들 사이, 운동복을 입고 달리거나 개를 끌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공원 건너편에는 차를 타고 찾아온 사람들이 빈 주차공간을 찾아 속도를 낮춘다. 다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딘가에서부터 찾아온 사람들이다.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특별한 공간, 공원


필자가 사는 곳 근처의 피드몬트 공원(Piedmont Park)은 애틀랜타를 대표하는 공원 중 하나다. 주택가 옆에 있는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넓은 공원이 펼쳐진다. 공원 안에는 커다란 풀밭과 호수가 있고, 산책로와 놀이터, 개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도그 파크와 테니스장이 있다. 애틀랜타가 관광을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도시보다는 생활을 하고 일을 하는 거주 중심의 도시에 가깝다 보니, 이 공원에도 역시 일상적으로 찾아와 걷고 달리고 산책하고 휴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 애틀랜타에 있는 피드몬트 공원.목초지, 호수, 산책로, 놀이터, 도그파크, 테니스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출처. Piedmont Park Conservancy)

하지만 도시 안의 공원이 꼭 거대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 공원은 도시의 구석을 파고들어 사람들이 바람을 쐬고 풀과 나무와 물을 만나고 함께 모여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포틀랜드로 자주 산책을 다니던 지난여름의 어느 토요일, 사우스파크블록 공원을 지나다 열명이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면을 보았다. 의자도 없고 특별한 장식도 없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사람 앞에 서있는 두 명,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 얼마 후 그 커플과 우연히 같은 베트남 음식점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들이 좀 전에 결혼식을 하고 피로연 전에 둘만의 점심을 먹으러 온 것을 알게 되었다. 평범할 수도 있는 하얀 원피스에 캔버스화를 신고 보라색 생화를 머리에 단 신부와 그녀의 남자 친구가 선택한 결혼식 장소가 바로 그 공원이었다.


사진. 포틀랜드의 첫 번째 공원인 사우스파크블록. 포틀랜드 중심가에 위치하며, 동상, 분수, 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다.


이벤트와 축제의 배경


사람들이 휴식과 운동을 위해 일상적으로 찾는 공원은 꽤 자주 이벤트와 축제를 위한 배경이 된다. 평일에 넓고 여유로웠던 공원이 주말에 시끌벅적한 축제의 장으로 변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지난 7월, 포틀랜드에 있는 커시드럴 파크(Cathedral Park)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을 찾았다. 세인트 존스 다리(St. Johns Bridge) 아래의 널찍한 풀밭에 무대가 세워지고, 주말을 맞은 사람들이 풀밭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편한 자세로 앉거나 누워 음악을 듣고 있었다. 평일에는 조용했던 공원의 공기가 그루브로 가득 찼고, 사람들이 챙겨 온 휴대용 의자와 담요 덕에 여름의 공원이 더욱 칼라풀해졌다.


사진. 포틀랜드에서 열리는 커시드럴 파크 재즈 페스티벌 풍경. 사람들은 공원 내 넓은 잔디밭에 담요나 의자를 놓고 앉아 재즈 공연을 즐긴다.

조지아주의 소도시인 메이컨(Macon)에서 만난 공원에는 또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메이컨은 매해 3월 말~4월 초에 벚꽃 축제(Inter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를 연다. 대륙다운 벚꽃 축제를 기대하며 찾아갔지만, 이곳의 벚꽃은 도시 전체에 산발적으로 퍼져있어 한국 벚꽃 축제의 풍성함을 따라가지 못했다. 대신, 이 도시의 벚꽃 축제에는 남다른 아이디어가 있었다. 도로 위에는 벚꽃 문양이 새겨졌고 건물마다 벚꽃 모양 리본이 달렸다. 지역신문도 벚꽃 특별판을 선보였다. 그리고 공원 내 분수도 빠지지 않고 변신하여 벚꽃색 물을 내뿜었다. 작은 공원은 그 나름의 소박함을 무기로 특별한 시간에 담백함을 더하고 있었다.


사진. 조지아주 메이컨의 벚꽃 축제 기간 중 공원 내 분수는 벚꽃색 물을 내뿜는다.


공원 안의 개인주의


이곳에서 사람들이 공원을 즐기는 방법을 보다 보면, 가끔 예상하지 못한 범주의 행동들을 마주한다. 개를 산책시키고, 자전거를 타고, 나무 아래 담요를 깔고 책을 보거나 누워있는 것과는 또 다르게, 넓은 공원 안에서 혼자 오롯이 존재하는 듯한 사람들. 예를 들어, 멜로디언을 연주하며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사람, 대담한 포즈로 아크로바틱 체조를 연습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가는 사람들. 함께 이용하는 공공의 장소지만, 그 안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곳이 바로 미국의 공원이다.


사진. 피드몬트 파크 풀밭을 가로질러 가며 멜로디언을 연주하는 사람과,  애틀랜타 내 둘레길인 벨트라인의 녹지 내에서 아크로바틱 체조를 연습하는 사람들.

공원을 즐기는 필수품


그리고 공원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누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곁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도구들이 있다. 비단 공원뿐만 아니라 야외활동을 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제품들이다. 그중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물건은 휴대용 의자이다. 아파트와 주택가의 테라스에 놓여 있던 휴대용 의자는 차에 실리고 각자의 어깨에 매달려 공원까지 옮겨 온다. 의자에 앉아 마실 음료와 음식을 담은 아이스박스도 덤으로 필요하다. 그렇게 휴식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사람들은 풀밭 위에서, 호수 앞에서 익숙한 자기 의자에 앉아 바람을 쐬고 음악을 들으며 음료를 마시고 책을 읽는다. 색색깔의 담요도 공원을 즐기는 필수품이다. 어느 하나 똑같지 않은 다양한 색과 패턴의 담요를 가져온 사람들은 땅 위에 담요를 펼쳐 앉거나 눕는다. 그리고 그 위에서 함께 온 사람들과 둘러앉아 아이스박스에 담아온 음식을 먹고 나눈다.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이런 소품들은 머무르고 기다리는 시간을 휴식으로 만드는 마법을 발휘한다. 그래서 공원과 산뿐만 아니라 아니라 콘서트와 같이 긴 시간을 줄 서서 기다리고 인내해야 하는 곳에서 사람들은 여지없이 휴대용 의자에 앉아 있다.


사진. 공원을 즐기는 필수품인 휴대용 의자, 아이스박스 가방과 담요. 공기주입식 소파도 간간히 보인다.


미국의 도시 안에 원래부터 푸른 공원이 존재했을 것 같지만, 사실 미국에서 도시 내 공원의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공원들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부터다. 미국 조경설계(landscape architecture)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1822~1903))가 자신이 설계한 뉴욕의 센트럴파크 부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더럽고 지저분하고 역하다”라고 표현했을 만큼 원래의 땅은 공원의 모습에서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3,800명이 투입된 공원 조성 프로젝트를 통해 바위투성이의 땅은 목초지와 물이 있는 그림 같은 풍경으로 재탄생했다(링크). 

거친 땅을 공원으로 만드는 일에는 사람의 머리와 땀과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만들어진 공원을 누구나가 즐길 수 있고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일은 한두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결혼식을 하려는 커플들과 뛰노는 아이들과 악기를 연주하는 어른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이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날 좋은 날이면 으레 휴대용 의자와 색색깔 담요와 아이스박스를 들고 공원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크로씨(Crossee)’는 한국-이태리-싱가포르를 거쳐 미국에 살고 있는 남효진, 한국-영국-스웨덴-에티오피아를 거쳐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차민정, 한국-영국을 거쳐 일본에 살고 있는 박혜연, 한국-핀란드-한국을 거쳐 다시 핀란드에 살고 있는 이방전, 이 네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하는 디자인 리서치 플랫폼입니다. 미국, 싱가포르, 일본, 핀란드에서 현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환경과 그 이면, 당연하게 이용하는 인프라와 새롭게 떠오르는 서비스 등에 대해 네 명의 디자이너가 각자의 고유한 목소리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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