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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Mar 07. 2018

자동차가 신발인 나라의 풍경

디자이너의 미국 라이프스타일 리서치

거대한 나라 미국에서 사람들은 이동을 위해 무언가를 탄다. 비유하자면, 자동차는 신발과 같고 비행기는 고속버스와 같다. 자동차가 있어야 이동할 수 있는 도시에서 제대로 된 걷기는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에 비로소 시작된다. 뉴욕, 시카고와 같이 대중교통 만으로 이동이 가능한 대도시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가 대중화된 이후 만들어진 로스앤젤레스는 도시 자체가 자동차 보급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 흑인의 비율이 높은 애틀랜타의 경우, 자동차로만 접근 가능한 교외에 백인들이 전용 주거 지역을 조성하면서 자동차를 통해 인종과 생활권이 지리적으로 분리됐다(링크). 주마다 도시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말하길, 미국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면 자동차가 필요하다.


미국인들에게 자동차가 주는 의미


자동차의 초기 역사에 대한 설명으로 “자동차는 유럽에서 탄생해 미국에 입양되었다. (The automobile was European by birth, American by adoption.)”라는 클리쉐가 있다. 1800년대에 유럽에서 처음 만들어진 자동차는, 1908년 미국 포드자동차의 Model T를 시작으로 대량 생산,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 1908년을 기점으로 자동차는 미국인들의 일상생활과 습관을 변화시키기 시작했고, 이 시점 이후로 미국인들은 이전과 다른 속도와 공간감을 갖고 살게 되었다. 미국 데이튼 대학교University of Dayton의 역사학과 교수인 존 헤이트만 (John Heitmann)은 그의 책 <The Automobile and American Life (자동차와 미국인의 삶)>에서 자동차는 미국에서 인종, 계급, 지리적 위치 면에서 유동적인 사회를 만드는 촉매제인 동시에 생활필수품이라고 말한다. 자동차로 누리는 이동의 자유는 미국인들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미국의 노인들은 운전할 수 있는 권한을 잃는 일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출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동차는 직장에 가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통로와 같다.


자동차와 라이프스타일


자동차와의 관계가 각별한 나라답게, 이곳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용하는 방법은 다채롭다. 특히 산과 강과 바다를 모두 갖춰 한국의 강원도 같은 느낌의 오레곤주에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자동차 뒤에 자전거를 싣거나 요트나  RV(Recreational Vehicle의 줄임말로, 집과 같은 생활 공간과 시설을 갖춘 자동차나 트레일러를 의미함)를 매달고 야외활동을 즐기러 가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자연을 즐기고 새로운 경험을 하러 수시로 길을 나서고, 자동차는 이런 사람들의 활동 수준을 한 차원 높여준다.


(산과 강과 바다를 모두 갖춘 오레곤주에서는 자동차 뒤에 자전거를 싣거나 요트나 RV를 매달고 야외활동을 즐기러 가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 남효진)


자동차는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공간의 범위도 확장시킨다. 자동차를 타는 모든 이가 어느 나라에서나 느낄 변화지만, 큰 대륙 안에서 수평적으로 팽창된 구조의 나라에서는 이동의 속도가 빨라지면 삶의 접점이 다양해진다. 존 헤이트만(John Heitmann) 교수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더 이상 근처의 구멍가게가 아니라 마을의 큰 상점에서 쇼핑을 할 수 있게 되고 여러 상점들을 비교할 수도 있게 됐다.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교외로 이동했고, 상점들도 사람들을 따라 이동하면서 교외에 쇼핑센터와 슈퍼마켓들이 등장했다. 가족과 함께 공원을 찾아 휴가와 여행을 즐기는 것도 일반화됐다.

지난여름 동안 오레곤주에 살면서 같은 주 안의 목장과 농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벌판이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달려 차로 1~2 시간 거리에 있는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곳 주차장에는 각지에서 달려온 차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목장에서는 유기농 유제품 협동조합에서 조합 목장을 개방해 목장주 가족과 소들을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고, 농장에서는 방문객들이 농장에서 재배 중인 과일과 야채를 직접 따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곳에는 버스나 열차가 다니지 않는다. 택시나 우버를 타고 가기에도 너무 멀다. 외진 곳에서 나오기 위해, 다양한 곳을 찾아가기 위해 미국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차가 필요하다. 그리고 차 덕분에, 내가 마시는 우유가 생산되는 목장을 직접 방문해볼 수 있고, 슈퍼에서 과일을 사는 대신 더 신선한 과일을 직접 따는 즐거움과 함께 더 싼 값에 구입할 수도 있다.


(포틀랜드 도심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인기 있는 과일 농장. 대중교통으로 연결되지 않는 지역에 있어 직접 차를 몰고 방문해야 한다. © 남효진)


(농장에서 직접 따서 구입한 라스베리, 블랙베리, 블루베리. 무게로 재서 계산할 때 10불이 나왔다. © 남효진)


자동차에 최적화된 환경

자동차가 생활의 필수품이 되면, 환경도 자동차에 탄 사람들의 시선과 속도에 맞춰진다. 때로는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차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보다 커지기도 한다. 경희대학교 사학과 박진빈 교수는 그의 책 <도시로 보는 미국사>에서 로스앤젤레스의 예를 설명하며, 자동차 운전자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에서 도로 주변은 자동차에 탄 사람의 시각에서 가장 잘 식별되도록 만들어지고 자동차를 이용하며 소비를 부추기는 환경적 요소들이 갖춰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속도로는 물론 도시 안의 광고도 거대하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바라보기엔 그림도 글도 과하게 크고 높다.


(포틀랜드 시내의 건물에 달린 광고판. 미국 내에서 ‘걷기 편한 도시’로 분류되는 곳임에도, 도시 내 광고판은 차에 탄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져 있다. © 남효진)


보행자는 적고 도로가 넓은 교외의 도로라면 간판들은 멀리서부터 운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더 강렬해진다. 보행자 중심의 도시에서라면 길을 걷다 그저 스쳐 지났을 간판들이 교외에서는 가장 화려하고 과감한 모습으로 풍경을 이긴다.


(미국 워싱턴주 외곽의 맥도널드(왼쪽)과 캐나다 밴쿠버 시내의 맥도널드(오른쪽)의 간판 © 남효진)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가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고속도로에서는 나무와 풀밭과 소와 말 외에 근처에 있는 상점들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다가오는 고속도로 출입구의 근처에 있는 주유소, 패스트푸드점, 스타벅스, 호텔의 존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다. 맥도널드, 스타벅스,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Holiday Inn Express의 익숙한 로고는 낯선 길 위에 선 사람들을 반기고 언제든 들를 수 있는 휴식처가 가까이 있다는 안도감을 선물한다.

(미국 고속도로 내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표지판. 다가오는 출구 근처에서 이용할 수 있는 상점들을 알려준다. © 남효진)


존 헤이트만(John Heitmann) 교수는 그의 책에서 미국 사람들은 차고에 세워진 자동차를 집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차를 몰고 길을 나설 때 집의 일부와 함께 움직인다는 인식을 갖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밖에 있음에도 자기의 자동차 안에서 여전히 보호받는다고 느껴 외부의 시선과 상관없이 코를 후비고 화장을 하고, 바쁘고 번잡한 하루를 보낸 사람은 홀로 운전하는 시간을 통해 평정을 되찾는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동차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패스트푸드점과 카페는 안에서 먹을 것인지(Dine-in) 차 안에서 그대로 주문을 할 것인지(Drive-through) 선택권을 준다. 여럿이 음식을 함께 먹거나 화장실을 이용하자면 주차를 하고 상점 안으로 들어가지만, 익숙한 차 안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면 사람들은 드라이브 쓰루로 직진한다. 패스트푸드점과 카페뿐만 아니라 도로변에 있는 ATM도 드라이브 쓰루를 지원한다. 때로 차에서 내리지 않는 것은 효율성뿐만 아니라 범죄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고객들이 상점 안에 들어가지 않기에 상점의 공간과 대면 서비스가 최소화되지만, 짧은 시간의 주문 과정을 위해 서비스는 진화한다. 대부분의 드라이브 쓰루가 스피커폰을 통해 목소리만으로 주문을 받는 반면, 스타벅스는 소비자와 바리스타가 서로 얼굴을 보며 주문을 하고 받을 수 있도록 양방향 비디오 스크린을 도입했다. 그리고 외진 곳을 가다 보면 비키니 바리스타(Bikini Barista)라는 간판을 내 건 드라이브 쓰루 카페의 등장에 깜짝 놀랄 수도 있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인 DQ 입구에서 드라이브 쓰르로 주문하기위해 줄 서 있는 자동차들 © 남효진)


물론 모든 것을 드라이브 쓰루로 해결할 수는 없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 차 밖으로 나와야 하는 일들이 절대적으로 더 많다. 그래서 쇼핑 단지와 사무실 단지 안에는 건물의 면적보다 큰 주차장이 자리한다.


(오레곤주 힐스보로 내 쇼핑단지의 주차장 모습과 같은 단지의 구글맵 전경. 상점들이 모여있는 쇼핑단지 내에는 대개 상점들의 부지보다 더 넓은 주차장이 있다. ©남효진)


그런데 자동차 없이 살기 어려운 나라 미국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의 미래에 대한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보스턴 컨설팅 그룹(BCG: Boston Consulting Group) 카셰어링자율주행전기자동차가 동시에 자리 잡으면 자동차를 소유하는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보고서 따르면, 2020년대 초반부터 공유자율전기차(SAEV: Shared Autonomous Electric Vehicle) 점차 대중화될 것이고이러한 변화는 특히 자동차를 소유하면서 자동차 구입뿐만 아니라 보험주차 등으로  비용을 부담해온 대도시 거주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된다사람들이 저렴하고 편리한 공유자율전기차를 선호하게 되면기존의 대중교통체계는 변화가 불가피하다물론소도시와 시골 지역의 거주자들그리고 자동차를 소유하며 얻는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자동차를 포기할  없을 것이다RethinkX think tank의 보고서 보다 대담한 전망을 내놓았다. 2030년까지 미국에서 개인이 소유하는 자동차의 수가 80% 감소하고 미국  도로에서 운행되는 승용차의 수가 2020 247,000,000대에서 2030 44,000,000대로 감소하게  것이라고 예상한다현재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자동차들은 95% 시간에 주차 상태로 정지되어 있는데자동차가 멈춰있지 않고 계속 이용되는상황이 되면 도시  수많은 주차공간이  이상 필요 없게 된다

성인이  대개의 사람들이 으레 자기 자동차를 소유하고 운전하며 만들어진 오늘날 미국의 풍경과 라이프스타일은 서서히 바뀌어  것이다자동차가 여전히 신발처럼 필요한 나라에서 자동차를 사용하는 방법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행동은 어떻게 바뀔지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건물과 거리의 풍경은 어떻게 변화할지그리고 이러한 변화 사이에 어떤 서비스들이 새롭게 등장할지 지켜볼 시간이다.




‘크로씨(Crossee)’는 한국-이태리-싱가포르를 거쳐 미국에 살고 있는 남효진, 한국-영국-스웨덴-에티오피아를 거쳐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차민정, 한국-영국을 거쳐 일본에 살고 있는 박혜연, 한국-핀란드-한국을 거쳐 다시 핀란드에 살고 있는 이방전, 이 네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하는 디자인 리서치 플랫폼입니다. 미국, 싱가포르, 일본, 핀란드에서 현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환경과 그 이면, 당연하게 이용하는 인프라와 새롭게 떠오르는 서비스 등에 대해 네 명의 디자이너가 각자의 고유한 목소리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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