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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Sep 23. 2020

미국 의료비의 청구서를 받았습니다.

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의료비가 비싸다고 소문난 미국에서 그동안 나는 의료비로 얼마를 썼을까? 달라진 건강보험은 어떤 차이를 만들었을까?


2개의 건강보험에 가입해서 필요한 서비스를 다 이용하고 내라는 돈을 다 내며 살아온 각 1년의 비용을 비교해보았다.


그림. 학교가 제공하는 BCBS GA(BlueCross BlueShield of Georgia)의 건강보험을 1년간 이용한 비용과 회사가 제공하는 Kaiser Permanente의 건강보험을 1년 간 이용한 비용을 비교했다. 모두 다 남편의 가족으로서 가입한 보험이다. 표시된 비용은 보험의 네트워크에 속하는(in-network)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의 비용이며, Deductible과 Out of Pocket Max는 한 가족 안에서 개인 각각에게 정해진 한도액이다.

2017~2018년, 남편의 학교 보험에 가족으로 등록해 1년 간 가입했던 건강보험은 2개 학기에 걸쳐 총  $5,458의 보험료를 요구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기 단위로 등록을 받기에 학기 초에 한 학기의 전체 비용을 한 번에 납부해야 했다. 임신을 한 상태에서 가입했기에 보험료 때문에 가입을 망설이지는 않았으나, 만약 특별히 병원을 갈 이유가 없는 상태라면 가입이 망설여질 만큼 큰 비용이었다.


이후 유산을 하고 산부인과 진료를 받자 보험사는 건강과 예방을 위한 진료가 아니라 문제가 있어 진료를 받은 내게 디덕터블(deductible)과 코페이(copay)를 함께 청구했다. 디덕터블은 보험사가 가입자의 의료비 커버를 시작하기 전까지 가입자가 혼자서 지불해야 하는 부담금이고, 코페이는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부담해야 하는 정해진 금액이다. 이전에 코페이 $25을 내고 받던 진료들과 비슷한 과정의 진료를 받고 디덕터블 $250을 포함한 $261.04가 청구되어 당황스러웠다.


화면. 내게 디덕터블 지불을 요구한 진료에서 클리닉의 청구한 클레임에 대한 보험사의 정산을 보여주는 EOB(Explanation of Benefits) 내의 표

결과적으로, 1년 동안 임신과 유산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8회 받고 난임 클리닉의 유료 진료를 1회 받고 몇 번의 처방약을 구입한 비용이 총 $5,994.64였다. 이 건강보험은 디덕터블과 코페이를 합산해서 계산하는 가입자 부담 금액이 연간 최대 한도액(Out of Pocket Max)으로 정해진 $3,750을 넘을 경우 이 비용 이후의 금액부터는 보험사에서 모두 부담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미 $5,458이라는 거액을 보험료로 지불한 가입자가 다시 $3,750이라는 한도액을 지출해 총 9,208을 의료비에 지출하는 상황은 한국으로 치면 1년 간 약 1,060만 원(1달러를 1,150원으로 계산 시)을 의료비에 지출하는 것과 같다.


1년 동안 의료비에 지출한 $5,994.64를 통해 배웠다. 건강보험으로 헬스케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입장권과 같은 보험료(Premium)의 가격이 가입자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울 수 있는지, 보험사가 개입하기 전에 가입자 혼자 부담해야 하는 비용인 디덕터블이 병원으로 가는 발걸음을 얼마나 망설이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연간 가입자 부담 한도의 최대액(Out of Pocket Max)이 크면 클수록 실제 그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점점 작아진다는 것을.


2019년~2020년, 건강보험 혜택이 좋기로 소문난 대기업의 건강보험에 직원 가족의 신분으로 가입해 이용하고 있다. 고용주 후원 보험(Employer Sponsored Insurance, ESI)이라 불리는 이 보험은 회사가 자신의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제공하며 회사가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는 보험(Self Funded Health Plan)이다. 미국에서 건강보험은 회사들이 직원을 리크루팅 하며 내세우는 혜택 중 하나이다. 이 보험은 감사하게도 직원과 직원 가족에게 월별 보험료를 요구하지 않았고 디덕터블도 면제해주었다. 연간 가입자 부담 한도 최대(Out of Pocket Max)는 개인당 $1,500이었다. 한 가족 안에서 여러 명이 같이 보험에 가입해도 최대 부담 한도가 $4,500이었다. 이전 보험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만나려면 , 가입자가 한 해 건강보험료를 포함해 총 $7,958, 한화 약 915만 원을 먼저 지출해야 한다. 이외에도, 헬스케어 서비스를 이용할 때의 분담금인 코페이와 코인슈런스의 부담 또한 낮았다. 이전에 가입했던 건강보험과 출발선이 아예 다른 보험이었다.


출산 때 유도분만을 하면서 경막외 마취를 맞았고 이후 응급 제왕절개를 했다. 아이는 응급처치 후 NICU에 6시간 머물렀다. 그리고 작은 크기의 1인실에서 2박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이 모든 것이 미국에서 일어났을 때의 비용이 얼마일지 걱정되면서도 궁금했다. KP는 응급 상황 외에는, 모든 서비스를 KP의 시설이나 KP와 계약한 프로바이더만 이용하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만약 내가 입원한 병원에서 나도 모르게 KP 네트워크에 해당하지 않는(out-of-network) 의사가 개입해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했을 경우 내게 어느 정도의 비용을 청구할지 두려웠다.


출산 후 한 달이 되어갈 무렵 출산 관련 청구서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병원의 시설 이용료와 의사의 서비스료가 별개로 청구됐다.


첫 번째 청구서는 출산 병원에서 왔다. 병원은 내가 병원에 도착한 후 산과 병동 입구의 산과 응급실 방에서 양수 파수를 확인하고 태아 심박동을 모니터링한 것에 대해 $2,086을 청구했다. 단순히 병동에 속한 부속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진통과 분만에 대한 비용으로 $21,960을 청구했고, 마취 기기와 약품 이용에 대해 $1,666을 청구했다. 마취과 의사 서비스는 제외한 비용이었다. 또 출산 후 병실에서 2박 3일 간 머무르며 케어 받은 비용으로 $11,430을 청구했다. 각종 검사와 약품 비용을 포함해 총 $39,413.98을 청구했다. 내 건강보험은 병원과의 계약에 따라 조정된 비용을 부담했고 내게 그 비용의 10% 정도인 $1,404.33을 코인슈런스로 청구했다.


사진. 출산 병원 청구서의 상세 내역

수술실에서 출생 직후 아기가 받은 CPR과 응급처치, 병원의 신생아 케어, 그리고 KP 소속 소아과 의사의 병실 방문 진료에 대한 비용은 모두 아이의 이름으로 된 별도의 청구서를 받았다. 아이 몫으로 우리에게 청구된 비용은 모두 $838.72였다.


병원에서 진통할 때와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가며 마취과 의사와 인사를 하고 마취를 받았기에 마취과 의사의 청구서를 기다렸다. 미국에서 출산 후 모든 청구서가 도착하는데 1년 가까이 걸렸다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었기에 오지 않는 청구서를 계속 기다렸다. 과연 올지, 언제쯤 올지, 온다면 비용은 얼마일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KP 홈페이지에서 내가 그동안 이용한 서비스들의 정산 내역을 보여주는 EOB(Explanation of Benefits)들을 살펴보다 이미 정산이 끝난 마취과 의사의 EOB를 발견했다. 마취과 의사는 유도분만 중의 경막외 마취에 대해 $4,000을, 제왕절개 중 마취에 대해 $900을 이미 청구했었다. 보험은 조정된 비용을 이미 지불했고 내가 지불해야 할 몫(Patient Responsibility)은 $0이었다.


그동안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나와 아이에게 청구된 비용들을 합해서 생각해왔는데, 내 이름 앞으로 청구되어 지불했던 비용만을 다시 더해봤다. 산전 진료 중의 코페이 3회 $60, 임신 중과 출산 후 퇴원 때 구입한 약들의 코페이 $36.67, 그리고 출산 병원에서 청구한 $1404.33을 모두 더했더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500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마취과 의사의 청구서가 내게 전해지지 않았던 이유는 말로만 듣던 Out of Pocket Max(연간 최대 한도액)의 마법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진료를 받으며 비용에 대해 질문을 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로 설명을 시작했다. "너도 알다시피, 건강 보험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지불하는 비용이 같지 않아." 그런데 정말로 그랬다. 미국 건강보험 상품들에 대한 설명을 볼 때마다 나오는 Premium(보험료), Deductible(가입자 우선 부담금), Copay와 Coinsurance, 그리고 Out of Pocket Max(연간 가입자 부담 최대 한도액)이라는 손에 안 잡히는 숫자들이 현실에서 정말로 작동하고 있었고, 내 건강보험은 그에 따라 내가 얼마를 지불하는지 주시하고 있었다.


올해 코로나가 유행한 이후 진료가 필요할 때마다 화상 진료나 채팅 상담을 거침없이 이용해 온 내게 KP가 청구한 비용이 아직까지 없다. 출산 후 머리가 간지러워서, 아이의 기저귀 변에 피 조각이 보여서, 눈이 간지러워서, 정기검진에 대해 상담하기 위해서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진료를 받아오다 도대체 비용 정산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되어 고객 서비스에 문의했다. 직원의 답변은 "내 건강보험이 전화 진료, 화상 진료, 채팅 상담 등의 온라인 진료를 100% 부담하기 때문에 내가 부담할 비용은 없다"는 것. 건강보험의 숫자와 조항이 가진 힘의 세기를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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