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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Sep 06. 2020

독감 주사 핫딜을 아쉬워하고

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미국에서 몇 해를 지내는 동안 매해 연말이 다가옴을 느끼는 상징적인 풍경이 있다.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되는 독감 예방접종 홍보이다. 가을이 되면 드럭스토어와 마트 내 약국, 그리고 코스트코가 일제히 "No-cost with most insurance", "$0 co-pay flu vaccinations"를 내세운 독감 예방접종 마케팅을 시작한다.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으면 대부분 추가 비용 없이 독감 주사를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독감 주사를 맞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장소는 예약과 대기와 진료 비용이 필요 없는 약국이다. 예방접종은 백신 접종 훈련을 받은 약사(Immunization-certified pharmacist)들이 담당한다.


드럭스토어와 마트들은 입구부터 쇼핑객들에게 바로 오늘 여기서 주사를 맞으라고 독려한다. 독감 예방접종이 대부분의 사람들을 타겟으로 하는 수익사업이 되면 정말 모든 마트와 드럭스토어가 경쟁하며 독감 예방접종을 권하는 사회를 만든다. 워싱턴주로 이사와 처음 방문했던 코스트코의 커클랜드(Kirkland) 매장은 심지어 매장 안에 독감 예방접종 용 천막을 쳐놓고 직원이 앉아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있었다. 쇼핑하러 온 사람들에게 잠시 와서 음악도 감상하고 주사도 맞고 가라는 위트가 느껴졌다. 예방접종을 보다 쉽고 만만하게 느껴 오늘 이 순간 결단하게 만들려는 노력들이 가는 곳마다 기다린다.


사진. 2019년 워싱턴주 커클랜드(Kirkland) 코스트코 매장 내 독감 예방접종 부스. 직원이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미국에서 무보험자로 살던 시절, 약국들이 일제히 독감 예방접종 광고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면, 그 옆을 지나가던 나는 보험이 없는 처지를 새삼 자각하며 소외감을 느꼈다. 마치 모두가 초대받은 파티에 나만 초대받지 못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독감 예방접종 파티의 입장권 정도는 그리 비싸지 않기에 자비로 참여했다.


해마다 독감 예방접종 시즌이 되면 인터넷에는 미국 내 최고의 독감 주사 딜(the Best Flu Shot Deals)을 알려주는 사이트들이 등장한다. 오바마케어(Affordable Care Act)에 따라 미국의 건강보험사들은 회원들이 보험의 네트워크에 속하는 서비스 시설(in-network providers)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하는 경우 전체 비용을 부담한다. 그러나 건강보험이 없는 경우, 지역에서 무료 접종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아니라면 자비로 주사를 맞아야 한다. 이 경우의 최선은 코스트코다. CVS가 독감 예방접종의 현금가로 $39.99을 받을 때 코스트코는 $19.99를 받는다. 미국 연방법에 따라 코스트코 회원이 아닌 사람들도 코스트코 약국에서 예방접종을 하거나 처방약을 구입할 수 있다.


사진. 2020년 8월 말에 독감 예방접종을 시작한 코스트코 레드몬드 매장 내 부스. 가격은 이전과 같이 무보험인 경우 현금가 $19.99, 보험이 있으면 대부분 무료로 접종 가능하다.

사진. 독감 예방접종 시즌을 위한 특별 부스가 없는 경우, 약국에서 예방접종을 맞는다. 창구 직원에게 예방접종 의사를 밝힌 후 개인 정보와 건강 상태에 대해 기록하는 예방접종 동의서(Immunization Consent Form)를 작성 후 계산을 하고 주사실로 이동한다. 

사진. 코스트코에서 예방접종 전 작성하는 예방접종 동의서(Immunization Consent Form).

사진. 백신 접종 훈련을 받은 약사에게 수여되는 증명서 (Pharmacy Based Immunization Delivery의 Certificate of Achievement)

건강보험이 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독감주사는 어디에서 맞든 효능이 동일하기에 사람들은 가장 좋은 혜택을 주는 핫딜을 찾아 나선다. 주사의 효능이 아니라 주사를 놓는 곳이 내건 혜택이 중요해진다. 2020년 올해, 소매점인 타겟(Target)은 독감주사를 맞는 사람들에게 다음 쇼핑 때 사용할 수 있는 $5 쿠폰을 제공한다. 드럭스토어인 CVS는 다음 쇼핑 때 $20 구매 시 $5를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한다. 슈퍼마켓인 퍼블릭스(Publix)는 $10짜리 기프트카드를 제공한다. 또 다른 드럭스토어인 Walgreens는 다음 쇼핑 때 $15 구매 시 $5를 할인해주는 쿠폰을 제공한다. 드럭스토어나 마트의 약국과 같은 대형 브랜드들은 백신을 대량으로 구입해 지점들에 유통하고 매장에 보관하면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홍보에 열을 올린다.   


사진. 애틀랜타(Atlanta) 미드타운(Midtown)의 퍼블릭스 슈퍼마켓 내 약국. 퍼블릭스는 미국 남동부 지역의 주요 슈퍼마켓이다.

그림. 독감주사를 맞는 고객에게 $10짜리 기프트카드를 제공한다는 퍼블릭스 슈퍼마켓 약국의 캠페인 이미지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라는 HMO 보험을 이용하는 올해, 우리 집이 독감주사를 맞으러 갈 곳은 카이저 퍼머넌트 메디컬 센터다. 비용 억제를 위해 웬만한 진료와 약국 이용과 안경 주문 모두 내부 시설을 이용하도록 하는 KP는 독감주사도 역시 자신의 주사실에서 맞도록 한다. 별도 비용 부담은 없지만 기프트카드도 없다. 독감 주사를 헬스케어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데, 미국에 조금 살며 소비자 마인드를 겸비하게 되니 인터넷에 올라온 독감주사 핫딜, 온 가족이 퍼블릭스에 가서 기카 하나씩 받아왔다는 후기에 아쉬움을 느낀다.


사진. 2019년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 벨뷰 메디컬 센터 1층 출입문 옆에 임시로 설치된 독감 예방접종 부스. 환자, 6개월~18살까지의 회원은 별도 주사실에서 접종하도록 하고 그 외의 회원은 임시 부스 앞에서 동의서 작성 후 바로 접종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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