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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Sep 18. 2020

온라인으로 주치의를 만나고

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내 주치의(PCP)를 갖게 되었다. 대학병원에 입원 중 나를 담당했던 주치의라는 이름의 전공의나 동네에서 아플 때 가끔 방문했던 단골 의사가 아니라, 내 건강보험이 내 주치의라고 인정해준 공식적인 주치의다.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 HMO 보험은 모든 회원이 자신의 PCP를 지정하도록 하는데, 여기서 PCP는 Primary Care Physician이 아니라 Primary Care Provider의 줄임말이다. KP 홈페이지 안의 PCP 지정 화면에서 PCP로 지정할 수 있는 프로바이더(Provider)들을 검색하면, MD(Doctor of Medicine) 의사뿐만 아니라 DO(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의학이 아니라 정골의학을 전공한 의사) 의사, 그리고 NP(Nurse Practitioner, 전문 간호사)와 PA-C(Physician Assistant-Certified, 의사의 감독 하에 진단/치료계획/처방/상담 가능)도 함께 보인다.


나는 우리 동네 KP 메디컬 센터에 근무하면서 새로운 환자를 받고 있는 가정의학과와 내과 MD 의사들의 학력, 경력, 문화권과 이전 이용자들의 평가를 참고해 한 명을 선택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의사를 주치의로 결정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원한다면 언제든 다른 프로바이더로 변경할 수 있기에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이후 아이의 진료 때 만났던 중국계 가정의학과 의사인 Dr. B를 남편이 자신의 주치의로 선택했고, 나도 뒤이어 같은 의사로 주치의를 변경했다. 다른 의사를 선택할 때마다 나의 새로운 주치의에 대해 소개하는 KP의 편지가 집으로 왔다.


사진. 주치의 선택 후 받은 주치의에 대한 1장짜리 소개 편지. 나의 주치의로서 나에 대해 알고 내가 보다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들을 연결해주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출신 학교, 수련 병원 외에 고향, 가족, 취미 등 자신에 대한 소개를 담고 있다.

주치의를 정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궁금했는데, 내가 연락하거나 진료를 예약해야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출산을 준비하며 산부인과를 다니던 시기, KP의 서비스를 계속 받고 있었지만 주치의와의 교류는 없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진료를 받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  


주치의인 Dr. B에게 연락하게 된 건 한국에서 여름마다 받아 온 유방 정기검진을 미국에서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임신 중이던 작년 여름, 맘모그램 없이 유방 초음파만으로 정기검진을 받은 후 결과 상담을 위해 담당 의사분을 뵈니 임신을 축하해주시며 출산 후 6개월 간 모유수유를 한 후 단유 하고 다시 검진을 이어가라고 하셨다.


치밀 유방을 가진 여성이 많은 한국에서는 유방 검진으로 맘모그램(mammogram, 유방 X-ray)과 유방초음파를 동시에 받는 것이 당연했기에, 미국에서도 보험의 적용을 받아 두 가지 검사를 한 번에 받을 수 있는지 KP 고객 서비스에 문의했다. 담당자는 맘모그램은 바로 예약이 가능하나 유방초음파는 의사의 오더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치의에게 메일로 검사 예약에 대해 문의하니 진료를 통해 의논하자는 답을 받았다.


어딘가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의 진료를 예약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의사의 오더가 있어야 유방초음파 검사를 받을 수 있기에 진료를 예약했다. 코로나의 유행으로 KP가 가급적 비대면 진료를 권하고 있어 화상진료를 예약하기로 했다. 수요일 오후 KP 웹사이트에서 Dr. B 앞으로 예약 가능한 시간들을 확인하니 가장 빨리 예약할 수 있는 때가 그다음 주 화요일이었다. 다른 PCP들의 예약 상황도 비슷했다. 재택근무 중인 남편이 업무를 시작하기 전 아기를 맡을 수 있는 시간인 아침 8시로 진료를 예약했다. 병원에 대면진료를 갈 때는 병원에 가는 시간을 중심으로 하루를 계획하면서 시간을 선택했는데, 화상진료를 선택하니 다른 일정에 방해 주지 않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하게 되었다. 진료를 선택하는 시간의 기준이 달라졌다.


진료 예약 후 Dr. B의 MA(Medical Assistant)로부터 '진료 전 준비(Previsit Prep)'라는 제목으로 메일을 받았다. 진료에 앞서 내가 진료를 예약한 이슈가 무엇인지와 다른 필요사항이나 질문이 있는지를 물었다. 내 답변이 진료 시간의 활용을 최대화하고 진료를 의미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 했다. 토요일 오후에 시간을 내어 질문에 답했다.


진료 당일인 화요일 아침,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주치의와 상의해야 할 항목들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안내받은 대로 진료 예약시간 15분 전에 웹사이트에 로그인해 Dr. B를 기다렸다. 화상진료를 통해 두 번째로 만난 Dr. B는 내가 미리 전달한 내용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유방 정기검진을 위해 조만간 모유수유를 중단하고 맘모그램과 함께 유방초음파 검사를 같이 받기를 원했던 내게 Dr. B는 다른 방향을 권했다. 모유수유가 유방암 예방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단유 후 유방 검진을 받는 것보다 모유수유를 멈추지 말고 계속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모유수유가 엄마의 건강에도 이롭기 때문에 Dr. B 자신과 동료 의사도 모유수유를 2년 간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아이가 어느 순간 모유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1~2년 간 모유수유를 하는 것은 아기와 엄마의 상호 합의가 필요한 일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했다.


사진. 화요일 아침 8시 주치의와의 화상진료

내가 유방암 예방을 위해 모유수유를 계속 이어가는 것에 긍정적이면서도 가족력이 있기에 정기검진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자, Dr. B는 나에게 유방암의 유전자 검사에 대해 설명했다. KP 안에서 건강보험의 지원으로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을 알려주며 이에 해당이 된다면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겠다고 했다. 기준에 해당이 되지 않는 경우 원한다면 자비로 $250을 지불하고 검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기준에 해당이 되지 않았지만 자비로 유전자 검사를 받겠다고 했고, Dr. B는 유전학 클리닉(Genetics Clinic)으로 나를 의뢰했다.


2주 후, 유전학 클리닉의 예약 담당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유전자 검사 전 먼저 유전학 컨설턴트(Genetics Consultant)와 상담을 진행한다기에 약속을 잡았다. 유전학 컨설턴트와의 상담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상담 전, 유전학 클리닉의 직원이 메일 연락해 상담에 대해 소개하며' 가족력 설문지(Family History Questionnaire)'를 작성해 답하도록 했다.  


열흘 후 화요일 오후, 아이를 재택근무 중인 남편에게 맡기고 KP 웹사이트에 접속해 유전학 컨설턴트인 N을 화면으로 만났다. N은 유방암 발병과 관련된 BRCA1/2 유전자(안젤리나 졸리의 예방적 유방 절제술로 유명해진 유방암 관련 유전자) 변이에 대해 설명하며, 내 상황과 염려에 대해 내가 직접 설명해보도록 했다. 그리고 나의 가족력을 들으며 내 위험도를 계산했다.


N에 따르면, 내 가족력을 고려할 때 내게 BRCA1/2 유전자 변이로 인한 유방암의 발병 가능성은 1% 미만이라고 했다. 매우 낮은 확률이라 유전자 검사를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경험적 데이터로 볼 때 가족력이 있는 나는 평균의 유방암 발생 비율 보다 위험성이 9% 높으므로 6개월 단위로 맘모그램과 유방 MRI 검사를 받는 고위험 검진 기준에 포함된다고 했다. 또한 언제까지 검진 없이 모유수유를 지속할지에 대한 확실한 권장사항은 없으나, 모유수유가 유방암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므로, 상의를 통해 내가 걱정하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하기를 권했다. N과의 상담을 통해 유방암 유전자 검사는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고, N은 내가 모유수유 중단 후 6개월 후부터 6개월 단위로 맘모그램과 유방 MRI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노트를 남겨주었다.    

  

화면. 유전학 컨설턴트와의 온라인 상담. KP의 웹사이트 안에서 화상진료와 동일한 과정과 인터페이스로 진행됐다.

화면. KP 앱에서 보이는 내 진료 일정과 진료 기록들. KP는 의료진이 작성한 진료기록을 회원 본인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전학 컨설턴트의 상담 기록(Notes) 역시 해당일에 등록되어 나도 내용을 다시 볼 수 있었고 내 주치의도 확인할 수 있었다. CGC는 Certified Genetic Counselor의 줄임말이다.

그동안 막연히 걱정을 해오다 유전학 컨설턴트와의 상담을 통해 나에게 BRCA1/2 유전자 변이로 인한 유방암 발생 가능성은 매우 적음을 알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유방암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모유 수유를 2년 간 지속하면서 긴 시간 검진을 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불안했다.


Dr. B는 이것은 함께 하는 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이라며, 모유수유 중에 맘모그램 검사를 받는 것에 대해 영상의학과 의사와 상의해보겠다고 했다. 한국처럼 그냥 유방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것은 어떤지 묻는 내게 유방 초음파는 질환이 의심될 때 실시하는 진단적 검사라 검진 목적으로 처방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또 다른 검사 옵션인 MRI는 맘모그램에 앞서 먼저 고려할 수는 없다고 했다. 모유수유 중 맘모그램이라니, 검사기기에 가슴이 눌려 고통스러워하고 젖이 사방으로 튀는 불쌍한 여자의 웹툰 이미지가 연상되어 괴로웠다.


Dr. B는 영상의학과 의사와 상의 후 모유수유 중 맘모그램 검진이 가능하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검사 직전 유축을 해서 모유수유 중에 검사를 실시할 때의 지저분함과 통증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도 해주며, 내가 원하면 검사를 오더 하겠다고 했다. 최종 결정은 내 몫이었다.


검진을 이어가라고 한 서울의 담당 의사, 장기 모유수유로 유방암 가능성을 줄이라는 주치의, 가족력이 있기에 유방암의 가능성은 평균보다 약간 높아지나 BRCA1/2 유전자 변이로 인한 발생 가능성은 1% 미만임을 알게 해 준 유전학 컨설턴트, 모유수유 중 맘모그램 검사가 가능하다는 영상의학과 의사, 그리고 검진 목적으로 유방 초음파 검사는 불가한 시스템. 모유수유와 검진을 둘 다 이어가려면 맘모그램 외에 길이 없었다. 수유 중에 맘모그램 검사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지만 이성적으로 결정해 KP의 웹사이트에서 검사 예약 요청을 입력했다. 옳은 선택 같아 보였지만 검사 생각만 하면 우울해졌다.


다음 날, 맘모그램 예약 담당자에게서 답장을 받았다. 수유 중인 사람에게 맘모그램 검사를 실시하지 않는다며 예약 요청을 거절했다. 주치의와 상의해 다른 검사가 도움이 될지 상의해보라고 했다. 내키지 않는 검사의 예약이 거부되자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검진 하나에 고민과 실랑이를 계속하느니,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의 돌까지 모유수유를 계속한 후 단유를 해서 다시 검진을 받는 것이 낫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주치의에게 메일을 보내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내년에 정기검진을 받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유방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주치의의 진료를 예약해서 만나고 유전학 컨설턴트의 상담을 받고 주치의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모유수유를 언제까지 계속할지와 다음 검진 시기를 결정하는 데에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였으면 이미 단유 후 검진까지 마쳤을 시간에, 대신 유방암 발병 가능성과 추후 정기검진 방법을 상담받고 유방암 예방에 도움이 되는 선택이 무엇인지 의논했다. 이상 증상과 질환이 아니라 예방과 검진을 위해 상의하며 주치의에게서 받은 메일이 일곱 통이었다. 돌이켜보니, 주치의, 유전학 컨설턴트, 검사실 예약 담당자와의 대화 그 어디서도 나는 환자라는 단어로 불리지 않았다. 나는 당신 you이거나 Hyojin일 뿐이었다.


참고로, 주치의의 진료와 유전학 컨설턴트와의 상담 후 내게 청구된 비용은 없었다. 청구서를 기다리다 확인해보니, 내 보험상품이 모든 온라인 상담의 비용을 100% 커버해 KP는 보험사에만 비용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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