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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Oct 06. 2020

진료비도 약값도 할인해주는, 쿠폰

미국 헬스케어의 다섯 가지 아이콘

미국의 가계 소비지출은 국내총생산(GDP) 통계에서 70%에 육박한다. '소비의 나라'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다. 다녀 본 나라들 중 그 어디보다 구매도 쉽고 환불도 쉽다. 할인을 받고 핫딜을 찾게 해주는 방법들도 많아, 무언가를 살 때 늘 쿠폰과 할인 코드를 찾게 된다. 병원 진료와 약 구입도 예외가 아니다.


두 번째 유산 후의 산부인과 진료 때 의사가 제안을 했다. 자신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난임클리닉의 쿠폰을 줄 터이니 한번 가서 나에게 무슨 옵션이 있는지 상의해보면 어떻겠냐고. 의사의 입에서 쿠폰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한국에서 온 순진한 나는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 유산 후 진료에서 나를 꼬옥 안아준 후 내 마음속에서 최고의 의사로 자리 잡은 분께 선택받은 것 같아 설레었다. 의사는 상담 후 진료실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자신이 사인을 한 두 장의 쿠폰을 건네주었다. 둘 다 조지아주에 여러 브랜치를 두고 있는 난임 클리닉들이었다. 두 쿠폰 모두 첫 번째 진료에 대해 할인을 제공한다고 나와있었다. 난임 클리닉을 가보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던 때였다.


사진. 산부인과 의사에게서 받은 난임클리닉 초진 무료 쿠폰

쿠폰을 소중히 챙겨 들고 집으로 돌아와 두 개의 클리닉에 대해 조사했다. 클리닉들이 내 건강보험의 네트워크에 속하는지를 확인한 후 집에서의 거리를 고려해 한 곳의 진료를 예약했다. 예약 담당자와 통화를 하며 산부인과 의사에게 쿠폰을 받았다고 말하니 진료 때 와서 제출하면 된다고 했다.


며칠 후 방문한 난임 클리닉에서 접수 담당 직원에게 건강보험 회원카드와 함께 산부인과에서 받은 쿠폰을 제출했다. 진료실에서 만난 난임 클리닉 의사는 그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일을 들은 후 가지고 간 검사 결과지를 보며 30분 정도 상담을 해주었고 몇 가지 추가 검사를 권했다. 초진 무료 쿠폰을 가지고 갔지만, 클리닉은 내 건강보험에 정상적으로 진료 비용을 청구했다. 내게 내 몫의 co-pay인 $40을 요구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쿠폰이 최대 $265의 혜택을 준다고 나와있었는데,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는 내가 받은 실제 혜택은 $40의 할인이었다. 후에 건강보험의 정산 내역을 보니, 난임 클리닉은 건강보험에 $234를 청구했고 보험사는 그중 $160.11만을 인정해서 전문의 진료 시의 환자 co-pay인 $40을 제외한 $120.11을 클리닉에 지불했다.


한 달 후 검사의 결과 상담을 위해 난임 클리닉을 다시 찾았다. 같은 의사를 만나 상담을 마치고 나가는 길, 이번에는 직원이 우리를 붙잡았다. Co-pay를 당일에 바로 지불하기를 원했다. 내 건강보험 회원카드에 표시된 대로 전문의 진료 시의 co-pay인 $40을 현장에서 결제했다.


내 의사는 왜 내게 쿠폰을 준 것일까? 나는 특별한 대우를 받은 걸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안쓰러웠나? 궁금한 마음으로 미국 병원의 쿠폰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쿠폰의 실체는 마케팅이었다. 내가 받은 진료 쿠폰은 미국의 병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서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진료 의뢰 쿠폰으로 의사들은 네트워크를 이뤄 서로 진료 볼륨을 키워주는 상호 이익 관계가 된다. 쿠폰으로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 의사는 새로운 환자들을 얻고, 원래 자기 환자에게 쿠폰을 제공한 의사는 자기 환자에게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충성도를 확보한다. 두 의사는 협력 관계에 있기 때문에 환자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참고. https://getreferralmd.com). 사실을 알고 나니, 왠지 선악과를 따먹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특혜를 받은 환자가 아니라 마케팅의 대상인 소비자였다.


진료 쿠폰은 생소했지만, 약에 대한 쿠폰은 늘 접하게 되어 아주 쉽게 익숙해졌다. 임신테스트기와 같은 제품의 상자 안, 집으로 배달 온 광고지들에서 제조사의 쿠폰, 마트와 드럭스토어의 쿠폰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검색을 해서 찾을 수도 있었다(참고. https://coupons.com).


사진. 집으로 배달된 광고지들에 나온 일반의약품 할인 광고. 알콘(Alcon) 사의 인공눈물인 시스테인(Systane) 제조사 쿠폰과 미국의 국민 감기약인 나이퀼(NyQuil)과 데이퀼(DayQuil)의 슈퍼마켓 쿠폰 할인 정보를 보여준다.

병원비도 약값도 다른 나라보다 비싼 미국에서, 쿠폰은 소비자가 조금이라도 절약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쿠폰을 받을 때마다 진료를 받고 약을 먹는 것 역시 소비 행위임을 기억하게 된다. 헬스케어에서도 역시 가격에 민감하고 따지고 찾고 챙겨야 하는 소비자로서의 의무감을 느낀다. 같은 제품이라면 보다 더 할인을 해주는 곳에서, 같은 기능이라면 보다 저렴한 제품으로 구입하지 못하면 현명하지 못한 소비자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약 하나, 반창고 하나를 살 때도 가격을 비교하고 쿠폰과 할인 코드를 찾고 핫딜을 기다린다. 끊임없이 날아오는 쿠폰과 할인에 대한 광고지를 보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럴 것이라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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