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헬스케어의 다섯 가지 아이콘
미국에서 드럭스토어는 생필품 판매나 약국 이상의 장소이다. 주택가 근처나 사람들이 모이는 상점 단지 안에는 드럭스토어가 으레 하나씩 있다.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으로 약을 조제할 때뿐만 아니라 아프거나 생필품이 필요할 때 언제든 달려갈 수 있기에,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단골 드럭스토어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미국의 드럭스토어를 생각하면, CVS, Walgreens, 그리고 Rite Aid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시장에서의 존재감에는 차이가 있다. 2019년 미국 내 처방약 판매량 기준으로 1위는 CVS(24.5%), 2위는 Walgreens Boots Alliance(18.9%)이다. 2017년 1,932개의 매장을 Walgreens에 넘긴 Rite Aid는 이제 규모가 많이 줄어 처방약 판매량 기준 순위에서 슈퍼마켓인 Walmart 내 약국(4.7%)이나 Kroger 내 약국(3.1%)보다도 입지가 작아졌다(2.5%).
사진. 위치에 따라 같은 브랜드의 드럭스토어의 모습에도 차이가 있다. 위의 사진은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동네의 CVS, 아래 사진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CVS.
Consumer Value Stores의 약자인 CVS는 1963년 세 명의 동업자에 의해 세워졌다. 처음에 건강 및 미용용품 상점의 체인으로 시작한 후 약국 사업을 추가했다. 1980~1990년대에 성장을 거듭한 회사는 CVS라는 이름으로 1996년에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CVS는 급성 인후염, 독감과 같은 가벼운 질환에 대해 진료를 제공하던 MinuteClinic(2000년에 QuickMedx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2003년에 MinuteClinic으로 개명)을 2006년에 인수했다(참고. CVS 홈페이지 내 History). 2007년에는 PBM(Pharmacy Benefit Manager, 약의 구입을 협상하기 위해 고용주들과 보험사들에게 고용된 중개인)인 Caremark Rx를 합병 후 CVS Caremark로 이름을 바꾼 후, 2014년 CVS 약국에서 담배 판매를 중단하면서 CVS Health로 이름을 다시 바꾸었다. CVS Health는 2015년에 Target을 인수했고, 미국의 주요 보험사 중 하나인 Aetna의 인수를 2018년 말 완료했다(참고. Wikipedia - CVS Health).
Walmart와 Kroger 같은 주요 마트 브랜드들이 점포 내에 약국을 운영하고 매장 한편에 상당량의 일반의약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미국의 소매 매장에서 일반 상품들과 의약품이 같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CVS가 미국 내 주요 소매업체 중 하나인 Target을 인수해 본래 Target이 매장 내에 운영하던 약국과 리테일 클리닉인 Target Clinic을 CVS pharmacy와 MinuteClinic으로 리브랜드하고 Target 매장과 함께 CVS 약국과 MinuteClinic을 늘려가면서, Target 매장은 일반 상품과 의약품을 함께 구매할 수 있는 대표적 장소가 되었다(참고. CVS Health and Target Announce Completed Acquisition of Target's Pharmacy and Clinic Businesses (CVSHealth, 2015/12/16)).
사진. 산호세 Target 매장 안에 자리 잡은 CVS pharmacy. CVS와 Target 모두 빨간색을 메인색으로 사용하는데, Target 매장 내 CVS pharmacy는 흰색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차이를 표시했다.
미국 내 CVS 매장 중 1,100개 이상에는 리테일 클리닉인 MinuteClinic이 있다. 급성 후두염, 방광염, 유선염처럼 바로 치료가 필요해도 클리닉 예약 시 대기 기간이 길거나 진료 비용이 부담되어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경우, 마트에 설치된 리테일 클리닉은 Nurse Practitioner(NA)나 Physician Assistant(PA)를 통해 클리닉이나 응급실보다 저렴하고 투명한 가격에 예약 없이 바로 진료를 제공한다.
사진. 산호세 CVS 내 약국 옆에 위치한 MinuteClinic 진료실
MinuteClinic으로 리테일 클리닉 사업에서 앞서가던 CVS는 2019년 한발 더 나아가 커뮤니티 기반으로 고객들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통합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상점 컨셉인 헬스허브(HealthHUB)를 텍사스 휴스턴에서 선보였다. HealthHUB는 기존 상점의 20% 이상의 공간에 건강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갖추고 고객들이 있는 지역에서 고객들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추는 상점 컨셉이다. 기존에 덜 위급한 건강문제를 신속히 해결해주는 데 초점을 맞추던 클리닉 서비스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서비스로 방향을 전환했다. CVS는 2021년 말까지 미국 내에 1,500개의 HealthHUB를 열겠다는 계획을 야심 차게 밝혔었지만(참고. CVS Plans National Rollout Of 1,500 ‘HealthHub’ Stores (Forbes, 2019/7/4)), 코로나의 유행으로 HealthHUB로의 대대적인 매장 전환은 보류된 상태다(참고. Healthcare goes retail (Managed Healthcare Executive, 2020/9/22)).
영상. 유튜브 CVS Pharmacy 채널 내 'Get a sports physical at a CVS® HealthHUB®'
; 초등학생 맨디가 스포츠용 신체검진이 필요해 즉시 HealthHUB를 방문해 Nurse Practitioner에게 검사를 받고 맨디의 주치의에게도 업데이트하고 약국에서 바로 천식 약도 리필해서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했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코로나의 유행은 CVS에게 호재다. 사람들이 외출을 주저하는 상황에서, 진료와 검사와 의약품 구매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드럭스토어는 오히려 매력적일 수 있다. 더욱이 코로나로 직장을 잃고 동시에 건강보험도 잃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때,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진료 후 사후정산이 일반적인 클리닉과 달리 서비스 이용 전 가격을 확실히 알려주는 리테일 클리닉의 정산 방식은 보다 설득력을 갖는다(참고. Healthcare goes retail (Managed Healthcare Executive, 2020/9/22)).
건강 및 미용용품 상점에 약국을 추가해 드럭스토어가 된 후, NP나 PA를 통해 저렴한 가격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리테일 클리닉까지 추가한 CVS가 이제는 아예 지역에서 고객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헬스허브가 되겠다고 나섰다. 나라가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하고 비싼 헬스케어의 대안을 비즈니스가 만들어내는, 미국식 해결 방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