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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야 Jan 26. 2021

있잖아 엄마

#10


우리나라 품 안에 자식 중 1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괜스레 엄마를 주제로 한 글이 쓰고 싶어 진다.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 중 엄마는 단연 으뜸이다. 요 근래 나에게 관심이 가장 많은 사람도 내가 아는 한 엄마일 것이다.


그녀의 둘째 딸은 결혼도 하지 않고 독립도 하지 않고 좁은 방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몇 년 전부터 독립을 하겠다 말만 한다. 좁은 집에서도 둘째 딸의 방은 심적으로 먼 거리에 위치할 것이다. 둘째 딸의 방은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 정도의 섬 같은 곳 일지 모른다. 신랑은 딸의 방문을 웬만하면 열지 않는다. 할 말이 있을 땐 거실로 부르거나 맛있는 간식을 먹이고 싶을 땐 꼭 노를 하고 열어도 된다는 허락이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나마 이 문을 덜 불편하게 여는 것이 자신임을 알 것이다. 문을 열면 누워 핸드폰을 보거나 앉아있으면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거나 어떤 날엔 방에 없기도 하다.


짜증을 잘 내지만 자신을 살뜰히 챙기는 큰딸은 시집가서 집에 없고 새침하지만 자신의 주방을 대신 정리해줄 정도로 깔끔하고 애교 많은 막내딸은 타지에서 직장 생활하느라 집에는 잘 오지 않는다. 막내아들은 집에서 가까운 회사를 다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기숙사로 가버렸다. 주말이면 여자 친구를 만나느라 바쁘고 집에 들르라고 전화하지 않으면 얼굴 보기 힘들다. 

 

유일하게 독립을 하지 않은 둘째 딸의 하루가 자꾸 궁금해진다. 제 구실 하고 사는 건가 걱정이 되지만 직장생활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화장실 갈 때 외출할 때 외에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 밥 먹고사는 건지 밥 먹으라고 할 때마다 먹었어 내지 이따 먹을게 라고 말한다.


말을 듣는 것 같기는 한데 싫은 게 많고 무뚝뚝하고 버럭 하는 게 신랑과 제일 닮아있다. (가끔 엄마가 나에게 하는 말 부정적인 뜻이다)


퇴근 후 언제나 둘째 딸의 방문을 열여 본다. 벽을 보고 누워있는 딸의 등을 보며 침대 끝에 살짝 앉아본다. 몇 마디 말이라도 걸어본다. 둘째 딸은 졸린 척하며 이불을 끌어 덮는다. 귀찮고 피곤해하는 것 같아 방문을 닫고 나온다.  


열 번 중 일곱 번 반복되는 상황이내가 엄마라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엄마한테 화를 내고 싶지 않지만 화를 자주 낸다. 미안한 게 아주 많.



우선 고지식한 아빠랑 살아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가족이 되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선택으로 가족이 되었다. 짐작하건대 이 둘은 자식들을 위해 무언가를 참아가며 여전히 부부 지내고 있을 것이다.


성향이 다르고 결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자녀들로 인해 관계가 계속되는 가정에서는 참는 것이 많아야 한다. 서로 참는 것이겠지만 나는 엄마의 인내에 좀 더 마음이 쓰인다.



그동안 많은 것을 참고 희생하며 살았겠 직장생활을 하 집에 와서는 밀린 설거지를 한다. 출근 전 음식을 만들고 부랴부랴 출근한다. 주말에는 밀린 빨래를 하고 동네 아줌마들과 놀러 가서도 신랑 눈치가 보여 늦지 않게 귀가한다. 와서는 또 밥을 한다.


이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고단한 삶이다.



그녀의 삶 속 희망과 위로가 나라니 숙연해진다. 다행히도 엄마에게는 딸이 셋이고 아들이 하나 있다. 우린 돌아가며 부모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우린 돌아가며 부모에게 걱정을 끼친다.


가지 많은 나무는 쉴 틈이 없다.


현재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자식은 나 하나라 무언의 책임감을 느낀다. 그들은 나의 보호자지만 그들의 보호자는 어른이 된 자녀들일 것이고, 그중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많은 내 몫이 클 것이다.


 

엄마는 소녀 같은 사람이다.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며 어디든 놀러 가고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 알려준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딱 질색인데 엄마가 좋아해서 그래도 맞춰본다.


코로나로 멀리 갈 수 없어 산책을 함께 가기도 하고  수십 장의 사진을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찍기도 하고  늦은 밤 둘이 몰래 내 방에서 야식을 먹기도 한다. 아빠는 회를 좋아하지 않는데 엄마는 회를 너무 좋아해 가끔 둘이 맥주에 회를 먹는다. 엄마가 너무 좋아해서 괜히 미안하다. 원래 엄마랑 딸 사이이기만 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친구끼리 이야기하는 것 같아 좋다는 엄마 말에 친구처럼도 지내보기로 했다.


평소 하지 않았던 사소한 이야기를 해보며 웃고 떠든다. 이 상황은 열 번 중 세 번의 상황이다. 다시 일곱 번 반복되는 상황으로 돌아가 대면대면 굴어본다.


29살 즈음 엄마는 자꾸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지인들이 준 청첩장이 쌓여가며 엄마의 걱정도 쌓인 것 같다. 주변에서 자식들을 다들 시집 장가보내는데 내 딸은 언제 가려고 하는 거지 이런 생각 아니었을까 한다. 왜 자꾸만 결혼을 하라고 하는지 이해가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싫었다. 결국 엄마처럼은 못살아 라는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재수 없는 말들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파국이었다.


사실 나는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 결혼에 자신이 없던 거였는데 쑥스러워서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자식들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내 자식에게 해줄 자신도 없고 마음도 안 생긴다. 여전히 아직까지도 말이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해야 하나


엄마는 언제나 내 엄마였지만 요즘은 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와 정신적인 독립 희망한다. 희망으로 인해 내적 갈등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엄마가 너무 좋다는 것 너무 사랑한다는 것


휴대폰, 노트북처럼  덜 중요한 많은 것들을 대충하고 중요한 엄마에게 많은 정성을 들이기로 한다. 


'있잖아 엄마 그때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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