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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야 Feb 01. 2021

라면 지옥

나는 종종 라면 지옥에 빠진다.


인생의 몸무게를 기억해보면 요즘 나의 무게는 상상해본 적 없는 숫자를 보인다. 코로나를 핑계로 운동 하지 않고, 코로나 블루를 핑계 삼아 마음껏 먹는 즐거움을 느껴보았다. 원래도 먹고 싶은 건 다 먹고살았지만 나이가 늘어남에 따라 기초대사량은 떨어지고 움직임은 적어졌다는 다소 따분한 전개다. 군살이 많아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음식양을 줄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집 밖을 마음껏 다니지도 여행을 가지도 못하는데 먹는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부터는 예상치 못한 전개다.


라면의 짝꿍은 김치 또는 단무지라 생각하고 살아왔건만 라면과 함께하는 맥주의 맛은 기가 막혔다. 면의 짠 맛뒤 맥주의 쌉쌀하고 톡 쏘는 탄산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은 참으로 멋다.


이렇게 멋진 맛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라면은 맛있고 허기를 달래주었지만 영양가 있는 음식이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부족한 영양이 걱정되어 라면으로 채워진 몸안에 종류별 영양제를 한 움큼 털어 넣는다.


운동을 하지 않고 움직임조차 적어진 내 몸은 자꾸만 할 일을 찾는다.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한다. 오늘 할 일을 생각하고 내일 할 일까지 생각한 뒤에도 여유가 남는지 어제 일들을 생각하고 어제의 어제 일들을 생각한다.


과거의 일들을 곱씹으며 얻을 수 있는 것은 일말의 교훈 정도일까 아니 그마저도 없다. 아주 좋게 생각해야 다음에는 그렇게 행동하지 말아야지 정도일 것이다.


좋았던 과거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고 추억으로 남지 못한 기억은 미련과 여운으로 남는다. 미련과 여운을 굳이 끄집어내어 후회를 만들었다.


'했더라면'


'하지 않았더라면'


'열심히 했더라면'


'버텼더라면'


'참았더라면'


라면 앞에 붙일 것이 생각보다 많다. 라면 라면 라면 라면 라면 지옥에 빠졌다. 라면을 먹으며 ~라면을 생각하는 라면 지옥이 꽤나 피곤다. 결국 한발 물러서기로 한다.


조리하기 쉽고 맛있지만 영양가 없는 음식 생각하기 쉽만 기분만 더러워지는 영양가 없는 생각


불필요하게 쌓인 지방과 불필요하게 쌓인 미련을 털기 위해 라면을 대충 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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