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아함을 베푸는 방법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다행히 타자마자 몇 자리가 비어 있어서 앉을 수 있었다.
왼쪽에는 졸고 있는 아주머니, 오른쪽에는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청년이 있다.
지하철을 탈 때는 노이즈캔슬링이 되는 헤드셋을 챙긴다. 이건 지하철을 북카페로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내가 타는 호선에는 어르신이 많아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많다.
노이즈 캔슬링 없이는 책에 집중하기 어렵다.
어르신과 지하철에서 공존할 수 있다.
인상 찌푸리며 불평하는 것보다 이 편이 맘에 편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노이즈 캔슬링으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오늘의 책 제목은 ‘햄릿’이다. 도서관에서 얇은 고전책을 빌려왔다.
단순히 얇아서였다. 이번 대여기간에는 바쁠 일이 많고, 밖에 들고나가려면 얇은 책이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문장력과 구성력에 감탄하며 책에 집중하고 있을 때 어떤 할아버지께서 내 앞에 자리 잡으시고 서셨다. 다른 곳에도 설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나 내 앞에 선 것은 ‘내가 이 중에 젊어 보여서겠지…?’라는 긍정회로를 돌리며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갈색 베레모를 쓰시고 갈색과 베이지가 섞인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올려다보자마자 눈이 딱! 마주쳤고 나는 그대로 책을 덮고 일어나 양보해 드렸다.
그 순간 할아버지가 내 팔을 밀며 자리에 억지로 앉히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놀래서 “억”하는 소리를 내며 눈이 동그랗게 떴다. 헤드셋을 듣고 있는데도 들릴 정도였으니 꽤 큰 소리를 냈다.
할아버지가 너무 강력히 밀어서 앉히시는 바람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또는 “괜찮아요. 앉으세요”라고 했어야 하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그대로 앉아서 책을 이어서 읽었다.
더 열심히 읽었다.
그게 할아버지의 양보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이 들얐다.
책의 내용이 꽤 흥미진진하고 재밌어서 쉽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내릴 역이 다가와서 책과 짐을 챙겨 일어났다.
할아버지께서 나를 보며 미소 지으셨다. 나도 할아버지께 미소 지었다. 입모양으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소리를 내지 못한 것은 노이즈캔슬링이 되는 헤드셋 때문이다.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아 목소리의 크기가 조절되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미소가 아직 잊히지 않는다.
손주를 바라보는 흐뭇한 미소였다.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일찍 돌아가셔서 그 미소를 느껴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스치듯 지나간 할아버지의 따뜻함.
요즘 보기 드문 진짜 어른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