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B가 나에게 물었다. “책을 읽으면 뭐가 좋아요?” 그 물음에 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그리고 나 하나만의 경험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책을 통해서 다양한 간접경험을 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이것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어쩌면 날 이렇게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도 담긴 것 아닐까? 생각은 또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쓴다.
우선 책을 읽으면 '재밌다.' 선후를 따지긴 어렵겠지만, '책을 읽는 나 좀 멋있지'라는 것도 있다. 어쩌면 지적허영심이다. 하지만 지적허영심은 시작이 될 수 있고, 발판이 될 수 있다 여긴다. '멋있지'에서 시작된 책 읽기는 멈추지 않고 '재밌다'로 이어졌다. 읽은 책이 쌓일수록 사람에 따라 다양한 생각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일이 잦아졌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넘쳐난다. '왜 저런 행동을 하지?' '왜 저런 말을 하지?' '나라면 하지 않을 텐데' 같은 생각. 이건 타인과 나를 동일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을 덜어내고 사실을 이야기해 보자면 타인과 내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람마다 주어진 환경과 경험들은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오직 그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에 경험이 덧씌워져 쌓이는 것이니 동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타인은 타인, 나는 나'라는 명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으며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은 다양한 체감이 들게 한다.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구나.' 하며 내가 타인의 경험치과 생각을 다 알 순 없으며,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의 영역에서 받아들임의 영역으로 변하게 된다. 그 변화는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라는 생각과 '그럼 이런 부분은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쉽게도 세상에 나와 딱 맞는 사람은 없는 것에 가깝지만, 사람은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니 나와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더 다양한 시선이 필요하다.
타인의 말과 행동이 나에게 옳지 않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생각에 걸러져 판단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현실은 냉정하게도 내가 원하는 사람, 나와 맞는 사람들과만 지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때때로 도망가야 할 순간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순간들은 견뎌내야만 한다. 그러니 견디기 위해서 계속 읽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다름을 체감하고 타인의 감정과 말은 내 몫이 아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는 계속 책을 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