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삐-삐-삐-딕>
나는 보통 비주류로 향한다. 영화, 연극 등등 다양한 예술적 영역의 비주류를 선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가치판단과 무관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건네는 이야기가 있다. 대체로 내밀하다. 한 사람 또는 소규모의 집단의 이야기이며 감정들은 나 하나의 경험의 한계를 해소해 주는 것이 있다. 이 해소는 대체로 매일이 반복되는 생활에서 한 줄기 빛 같은 것이며 그 이야기들은 내 안으로 흘러와 감정과 생각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꺼이 자주 보려 하는 것이다. 한 줄로 설명하자면 "그러므로, 다채로운 인간이 됨"으로 설명된다.
호적메이트가 소개해준 이 연극도 흥미로운 마음이 앞섰다. 우선 쉬이 보기 어려웠던 일인극이라는 것과 모비딕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시놉시스를 보고 난 뒤 눈에 밟히던 질문이 있었다. "실패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였다.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도착한 곳은 협소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협소한 공간과 일인극이라는 제한적인 설정은 되려 집중도를 높였다. 보는 내내 대단하다 여겼던 부분은 여러 역할의 목소리, 말투, 디테일한 행동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용을 이해하기 충분했다.
꿈이 있는 어떤 이들은 현실의 문제들에 의해 가는 길을 가로막히곤 한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행한다. 세상은 그들을 자신의 잣대로 걱정하며 폄하한다. 가령 '그 정도면 됐어' '안 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 '이젠 그만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말들. 물론 이 말을 건네기까지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잣대로 생채기를 낼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이런 유의 말들을 싫어하고 동의하지 않는다. (한 때 예술계 종사자였기에 조금은 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누구도 다른 이의 삶의 태도나 꿈에 대해 판단할 권리는 없다. 그저 따뜻한 눈빛과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없어 걱정과 폄하 그 사이의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면 그냥 지나가길 바란다. 꿈을 꾸는 이도 그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있다. 비록 현실에 치이더라도 될 때까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쩌면 주어진 현실 같은 건 타인보다도 본인이 훨씬 잘 알 것이다. 체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야 하는 숙명 같은 일 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잣대를 들이밀며 상처는 주지 말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연극이 하고 싶은 이준경과 모비딕을 잡고자 하는 이스마엘선장의 마음은 맞닿아 있다. 난 이런 이들이 타인의 말로 실패를 재단하지 않길 바란다. 뜯어말리는 이들이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향해 걸어가는 그 길 그 자체가 꿈을 이룬 일이라 생각한다. 그 누구도, 그것이 자기 자신일지라도 실패라 명명할 수 있는 건 없으며 그저 시행착오의 불과하다 여긴다. 생은 결론짓는 것이 아닌 과정에 속해 있는 것이니까.
연극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 다짐을 했다. 꿈을 향해 가는 나 그리고 가까운 이들을 응원하고자 하며 끝끝내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해 걸어가는 이유를 존중하자. 그리고 난 이런 질문이 하고 싶어졌다. "모두가 현실과 타협한다면 예술은 탄생했을까?" 하는 것이다. 난 충분히 삶에 안착하고자 한다면 예술은 인생에서 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본 글은 <모삐-삐-삐-딕> 측의 티켓을 제공받아 관람 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