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죄송합니다.
아내의 해외 발령이 금요일 저녁 6:10분에 회사의 게시판에 공지되었습니다. 바로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여보 나 호찌민으로 발령 났어!”
아내가 바라던 1 지망 후보지로 발령이 났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이젠 저에게 공이 넘어왔습니다. 아내가 발령을 받을 거라는 믿음은 90% 정도 있었지만 회사 팀장님에게는 연초에 면담 시에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기원을 따지자면 첫째를 낳고 5년 전부터 아내의 해외 발령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회사에 계속 알려왔죠. 팀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팀장님이 오실 때마다 그렇게 업데이트를 해왔는데 무려 처음 알린 이후 6년이 지난 뒤 정말로 발령이 났습니다. 첫째와 둘째의 임신과 육아로 아내의 발령이 계속 미뤄졌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발령은 동기들은 이미 다 다녀오고 난 뒤라 더 이상은 미룰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아내가 해외로 발령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언제나 있기 때문에 저와 아내는 미리 모종의 합의가 있었습니다. 첫 발령일 때에는 아이들도 어리니 제가 육아휴직을 내고 함께 따라가는 것입니다. 합의는 쉽게 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막상 월요일 출근 전 일요일 저녁부터 팀장님께 이 소식을 말씀드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월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밤을 지나는 동안 천근만근이 된 육아휴직을 하겠다는 말을 우선 언제든 꺼낼 수 있도록 목구멍 앞에 억지로 끄집었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한주의 업무를 계획하고 해야 할 업무를 처리해 나갑니다. 아침 내내 회의로 팀장님이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목에 걸친 ‘육아휴직’이란 말은 점점 무거워져 나를 조급하게 만듭니다. 아,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습니다. 퇴근시간이 1시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 계신 팀장님 옆으로 가서 두 손을 모으고 서서 목구멍에 걸친 것을 꺼냅니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시 시간 되실까요..?”
“어? 어. 여기서 하면 안 되나?”
“아, 팀장님 저기 회의실이 비어있는데 저기 가서 하면 좋겠습니다.”
회의실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아 잠시 업무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더 이상 지고 있을 수 없는 말을 조심스레 꺼냅니다.
“팀장님, 저 아내가 해외로 주재원 발령을 받아 육아휴직을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예상한 반응입니다. 사실 시기상 새로운 해가 되었고, 제가 계속 일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팀원의 업무 분장이 딱 일주일 전에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인원이 부족한 옆 조직에는 이미 신규 인원들의 배정이 끝난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뒤의 대화는 굳이 적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팀장님은 제가 미리 알려주지 못한 섭섭한 마음, 그것이 컸다고 느껴집니다.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온 두 명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한 달 뒤부터 휴직을 들어가게 됩니다. 제가 맡았던 일들의 인수인계와 10여 년간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의 잠시 이별의 인사가 남았습니다.
저는 그래도 큰 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이곳도 남성의 육아휴직에 대해서는 아직 낯선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육아휴직을 하고 함께 나가는 것을 권장해 준 아내가 정말 고맙고, 그리고 부모님들의 지원, 동료들의 응원도 감사했습니다.
제가 속한 조직의 리더들과 여러 차례 면담을 하였습니다. 팀장님의 저에 대한 섭섭함은 많이 수그러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잘 다녀오란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얼핏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의 담긴 팀장님의 마음이 읽힙니다.
육아휴직이 끝난 뒤 다시 조직으로 돌아왔을 때, 조직에 잘 스며들 수 있게 다녀오면 좋겠다는 것. 아직은 남성의 육아휴직이 조직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가야 함에 있어 들뜨거나 하는 모습은 계속 일할 동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에게 다시 돌아와야 하는 저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길 수 있다는 걱정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일하는 층에서 처음으로 1년 이상의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자 직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