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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주재원] #17. 이젠 메이드가 필요해

혼자서는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by 남산


가정 주부가 된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간 하나의 목표로 주부력(主夫力) 상승을 위해 다양한 미션을 클리어해 왔지만, 이제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건 저의 시간과 저의 성격의 문제로 이어진다고 반성합니다.


하루가 24시간이니 시간을 한 번 쪼개 봤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은 아래 시간별로 활동을 봐주시면 됩니다. 매일 두 시간씩 베트남어 공부를 하고, 유치원 하원이 한국보다 빨라 집을 청소할 시간이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가 됩니다. 이 시간을 다 청소나 빨래 등 집안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쉬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보기도 합니다. 팀장도 임원도 없기 때문에 땡땡이도 제 마음대로입니다. 왜 메이드를 쓰지 않냐고 묻는 주변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사실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여러 이유로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①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불편하다.


성격 상 내가 했으면 했지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서 메이드를 시켜서 집안일을 맡긴다는 게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도 막내를 오래 하고, 지시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다 보니 내가 맡은 일은 내가 해내는 것이 익숙합니다. 그리고 이게 마음이 편합니다. 굳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목표했던 결과물이 안 나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② 이것은 나의 숙명, 내가 제대로 해내야 한다.


휴직을 하고 가정의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로 생각하고, 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집안일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 급여가 저렴한 이곳의 현실을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다 보니 보이는 부분은 어느 정도 해 나갔습니다. 부엌, 창고, 바닥 이 정도는 커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왬나한 집 방 1칸 규모의 발코니, 넓은 2개의 화장실, 세탁실 베란다 등 손길이 잘 미치지 않는 곳들은 청소가 잘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설거지를 하는 중 아내가 화장실 청소를 땀을 뻘뻘 흘리며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에 괜히 마음이 뜨끔 하고, 죄지은 것처럼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회사에 다니던 시절 다양한 리더십 강연을 들을 때 안 좋은 케이스들을 모아놓은 생각과 비슷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료를 믿고 맡기고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명확한 가이드와 멘털 관리까지... 가끔 팀원들과의 관계나 본인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해 고민이 있으신 팀장님들과 면담을 하며 들었던 내용들과 맞아떨어집니다.


어찌 보면 저는 이 가정이라는 조직의 집안일 리더로서 깔끔한 집안 환경 조성과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목적을 이뤄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내가 가진 자원을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시간, 체력, 자본, 지식 등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자본이 충분하다면 타인의 시간과 체력, 지식을 레버리지 할 수 있습니다. 오! (합리화의) 생각이 여기까지 이릅니다.


아내가 메이드 구하는 게 어떻니라고 문 지 1개월이 지나서야 실행에 옮겨봅니다. 괜히 고집스럽게 혼자 해내려다가 제가 있는 포지션이 위태로울 수 있겠습니다. 아직 4개월 밖에 안되었는데 조금 더 저의 시간과 체력을 저에게 가치 있는 일에 써야겠습니다. 이제 마음먹었습니다. 저의 게으름을 대신하여 자본을 활용해 타인의 노동력과 시간을 구매하겠습니다. 이 '집안'의 리더로서 거듭나 보겠습니다. 인사 업무를 했던 사람으로서 들었던 다양한 리더십 강의와 조직관리를 바탕으로 메이드 분과 깨끗한 집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음은 먹었는데 아직 메이드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얼른 SNS에 올리겠습니다. 지금은 다 자는 시간이니 내일 아침에 올리기로 합니다. 깔끔하게 일하시는 분을 만날 수 있길, 나도 그분에게 깔끔하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길.







[부록. 주재원 남편 하루 일과]


06:00~07:00 운동(최소 6:30에는 기상)

07:00~07:30 아침식사 준비/샤워

07:30~08:30 애들 깨우기 / 밥 먹이기 / 등원준비

08:00~09:00 등원 (걸어서)

09:00~09:30 청소기 돌리기, 쓰레기 버리기

09:30~10:00 학교 이동

10:00~12:00 베트남어 수업

12:00~13:30 점심식사

13:30~14:00 집으로 이동

14:00~15:00 번갈아 가며 빨래 정리 / 베란다 청소 / 화장실 청소

15:00~15:10 아이들 유치원 하원

15:10~16:00 키즈룸에서 친구들과 놀기

16:00~17:00 (월/수) 축구, (화/목/금) 수영 또는 키즈룸 놀기

17:00~18:00 저녁준비

18:00~19:30 아내 COME BACK!, 저녁식사 및 수다

19:30~20:30 아이들 샤워 / 설거지 / 각자 자유시간

20:30~21:30 (나 or 아내) 책 읽어주고 재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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