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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주재원]#24. 육아휴직 한다고 어떻게 말할까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남자 사원에게

by 남산


육아휴직, 아빠들에겐 황금과도 같은 이야기지만 역시 진짜 황금과도 같이 내 주변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적었다. 엄마에게 있어 육아휴직은 당연히 사용할 것이란 예상이 이제는 대부분의 조직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되어 있다. 물론 일부 기업의 성격이나 규모에 따라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미성숙한 곳이 있을 것이다.


정부의 통계를 찾아보면 `24년 남성 육아휴직자의 비율이 전체 육아휴직자의 31.6%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선배들도 그렇고 주변에 쓴 사람이 그만큼 실제로 보이지는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남자가 많은 회사였지만 육아휴직을 쓰고는 싶어도 실제로 외벌이 거나 회사 내 조직마다의 분위기에 따라 망설이는 분들이 많았다. 언감생심이다.


모든 경우를 일반화할 수 없다. 나의 경우도 특별한 케이스에 속한다. 아내의 해외 주재원 발령으로 인해 휴직 또는 퇴사 두 가지의 방법 중에 나에게 유리한 육아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사유는 주변 동료들이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배우자 육아휴직 복귀, 배우자의 육아 우울증 등 불가피한 상황도 이해받을 수 있다. 물론 대외적인 명분일 때의 이야기이다. 숨은 이유들도 있다. 현재 회사 생활이 견디기 힘들어 휴식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육아휴직 제도는 육아와 함께 개인의 정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어떤 이유이든 육아휴직은 남자에게 있어 남초 회사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며, 사회적 통념상으로도 사용하기에 앞서 스스로 위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 내는 자가 얻을 수 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많은 가족이 내가 되어 보는 경험, 그동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아이의 일상과 생각이 뜻깊게 다가온다.

한 번 해본 경험자로서 성공적인 육아휴직 선언을 하지는 못했다. 리더와 나는 서로 마음이 상했고, 괜히 눈치가 조금 보이는 환경이 되어버려 오래 보지 못할 정든 동료들과 적극적인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다시 한다면 어떻게 스무스하게 육아휴직 선언을 할 것인가.




1. 미리 정보를 슬슬 흘린다


육아휴직을 마음먹고 바로 리더와 면담을 하거나 시스템으로 휴직 신청을 한다? 이는 하수다. 내가 그랬다. 정보를 먼저 흘려한다.

"배우자의 복직이 다가오는데, 아이를 봐줄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서 걱정이에요."

"배우자가 육아휴직을 요청하네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요즘 걱정이에요. 할머니 할아버지들 집도 멀고, 고용은 또 부담스럽네요."

"아내가 조만간 해외 주재원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직 확정되지 않아 확정되면 말씀드릴게요."


리더들은 보통 육아휴직 이야기를 들으면 한 대 맞았다고 생각한다. 알고 맞으면 덜 아프다. 하지만 모르고 있다가 맞으면 어리둥절하고 나중에는 배신감이 생길 수 있다. '육아휴직'이란 단어는 먼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육아휴직'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은 상황을 미리 계속 흘린다.



2. 육아휴직 선언은 연간 성과평가 확정 후


육아휴직자는 법적으로 평가의 잣대에서 최소한 평균 이상의 평가를 보장받는다. 법으로 육아휴직자에 대한 불이익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해에 평가가 보통 이하로 나오게 된다면 이는 고용노동부에 신고가 들어갈 시 기업에서는 큰 부담이 된다. 이게 불이익이 아니라는 증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나의 성과가 우수할 것으로 예상되고 인센티브와 연봉 인상과 연결된 연말 평가에서 잘 받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성과평가 발표 후로 최대한 미루기를 바란다. 아무리 앞선 성과가 좋아도 육아휴직으로 들어간 이상 올해 성과가 좋아 상/최상 정도로 생각하여도 법적 최소한인 보통으로 마무리되기 십상이다.


복리처럼 상승하는 연봉인상과 한 해 가장 기분 좋은 인센티브에서 가정 경제와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성과평가가 발표 나고 들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더라도 앞에 적은 것처럼 미리 정보를 슬슬 흘리는 것은 병행해야 한다.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육아휴직을 들어간 것은 회사 입장에서 볼 때 하늘과 땅 차이다.


3. 육아휴직에 들어갈 때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게 무슨 말일까. 아직 남초회사에 덩치가 큰 기업들에서는 남자의 육아휴직이 복직 후 낙인처럼 찍힐 수 있다. 복직 후 업무를 시작하면 이 낙인은 사람의 기억처럼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조용하고 차분하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육아휴직을 다녀온 사람이라는 지칭어는 아직 남자 육아휴직의 사용이 활발하지 않은 곳에서는 문신과도 같은 낙인이 되기도 한다. 돌아왔을 때 애매하게 한직으로 발령을 낸다거나, 일을 할 때마다 휴직한 동안 있었던 일은 모르겠구나 같은 말들을 들을 수도 있다. 이에 휴직에 들어갈 때는 가까운 동료 위주로 이야기를 한다. 굳이 애매한 거리의 관계에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경우 나의 소식이 천리를 간다. 서울에 근무하면 부산에서도 알게 된다.


아직은 조용히 갔다가 조용히 돌아와 업무를 잘 수행해 성과로 보여주면 다 잊힌다.



남자의 육아휴직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물론 여자의 육아휴직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누군가 이 글을 찾아 검색을 하고 들어왔다면 이미 이를 생각하고 있고, 실행은 시간싸움이라 생각한다. 나의 커리어가 휴직한 뒤 복직할 때에도 긍정적으로 지속되기를 희망한다면 앞의 방법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굳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육아휴직자가 없으면 좋겠고, 그런 부정적인 경험으로 육아휴직을 시작하는 건 사회적으로도 좋지 않은 영향들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다 함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힘을 만들어 보자. 흐름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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