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말이 되는 세계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수업
말보다 눈빛이, 행동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를 향해 날아올 때가 있다.
얼마 전, 상사가 조용히 이야기를 하자며 나를 불렀다.
처음엔 담담하게 시작된 대화는 곧 불편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회사 내 소모임에서 장비를 각자 구입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약간의 비용이 들게 되었다. 상사는 혹시 누군가는 부담스럽지만 말하지 못하고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내가 평소 의지하던 선배에게 멤버들 분위기를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그날 선배는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혹시 비용이 부담되지는 않아?”
나는 비용보다는 건강상의 이유로 모임에서 빠져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배는 “그럼 부담 갖지 말고, 이참에 빠지는 것도 좋겠다”며 상사에게 먼저 말씀드리고,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가면 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화가 있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그 내용이 상사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말하기도 전에.
알고 보니 퇴근길에 선배가 같은 소모임 멤버에게 “아마 미옥 씨 빠질 것 같다”라고 말했고, 다음 날 상사가 그 멤버에게 소모임 관련 질문을 하자 “미옥 씨는 빠진다던데요?”라고 답했던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상사가 나를 불러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왜 그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 통해 들어야 하죠?”
(솔직히 이 포인트는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본인이 직접 말하기 어려울 테니 부하직원에게 분위기를 살펴보라고 해놓고…)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지만,
상사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결과는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어진 상사의 이야기, 요지는 이랬다.
“요즘 우리 사이에 대한 얘기가 돌고 있어요. 정말 불쾌합니다.
제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입에 오르내리고, 그게 제 의도와 전혀 다르게 해석되니까요.
내 할 일만 해도 바쁜데 이런 데까지 신경 써야 하니, 너무 스트레스받아요.”
알고 보니 내가 입사 초기부터 의지하던 그 선배에게서 “상사가 미옥 씨 싫어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고, 그 말이 상사 귀에 들어갔다고 했다.
상사는 내가 회사 생활의 고충이나 본인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한 것이라 생각한 듯했다.
어쩜 그렇게 타이밍도 상황도 절묘하게 어긋나는지.
억울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험담을 한 적도 없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조용히 누군가의 입을 통해 ‘이야깃거리’가 되어 있었다.
올해가 삼재의 시작이라더니, 괜히 그런 말이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상사의 말들은 마치 “너, 내 얘기하고 다니는 거지?”라는 확신을 품고 나를 탓하는 것처럼 들렸다.
조금은 화도 났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피하지 않고 꺼내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억울함이 들끓는 마음에도 나는 상사의 말을 한 번도 끊지 않았다.
상사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흘러가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끝까지 들었다.
이야기는 이어졌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한 말이 편집되어 상사 귀에 들어갔다.
그 일 이후 상사는 나에게 말했다.
“사람은 듣고 싶은 대로 들어. 그래서 말조심해야 돼.
난 그래서 일적으로 엮인 사람들과는 사적인 만남이나 연락을 하지 않아요.”
그 뒤로 나는 정말 말을 아끼고 조심했다.
특히 의지하던 선배에게는 더더욱.
그런데 이번 사건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 문제라고 하셨다.
상사는 말했다.
“지금 회사 분위기에서는 작은 행동, 눈빛, 자세 하나도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측의 재료가 돼요.
미옥 씨의 ‘행동’을 보고 추측을 하는 거라면, 왜 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 돌아보세요.”
또,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안쓰럽고 짠해 보여서 더 쉽게 오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하셨다.
내가 입사하기 전엔 회사에 편 가르기가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물을 흐리고 있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내가 편 가르기를 한다고?
억울해하지 말고, 화낼 필요도 없단다.
모든 건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남 탓할 필요도 없다고.
사회생활이 원래 그런 거라고. 그래서 어려운 거라고.
맞는 말이었다. 상사의 말, 하나하나 틀린 건 없었다.
오해가 반복되고, 그 중심에 늘 내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든다.
내 행동을 보고 사람들이 판단하는 것,
상사의 행동을 보고 사람들이 판단하는 것.
주어만 바뀌었을 뿐인데
상사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받는 상황이 싫다”라고 말하고,
나는 “내 의도가 어떻든 그 판단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상사의 말은 아마도, 회사 돌아가는 분위기에 내가 일조한 부분이 크니
내가 돌아볼 지점이 있다는 뜻이었다는 걸 안다.
상사의 말에는 항상 ‘뼈’가 있고, 그 뼈엔 늘 ‘가시’가 있다.
그런 말들이 쌓이다 보니, 상사와의 대화가 시작되면
내 머릿속은 얼어붙고, 나는 더 위축되고, 실수도 하게 된다.
정말 모든 말과 행동의 원인을 나로부터 찾아야 한다면,
나는 도대체 어디까지 조심해야 하는 걸까?
마치
성폭행범이 있으니 노출 있는 옷을 입지 말고, 밤늦게 다니지 말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돌고 돌고 돌아
결국 책임은 나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고, 입을 닫고 싶고, 사람을 피하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놓이면 어떤 마음이 들까.
어떤 선택을 할까.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같은 말을 듣고도, 같은 상황을 겪고도
사람은 결국,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는 것.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결국,
자신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