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의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쉽게 말하곤 한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안 해?”
“이 정도는 누구나 다 견디는 거 아냐?”
하지만 애초에 모두의 시작점이 다르기에, 노력의 크기 또한 다르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아니면, 통증의 강도가 사람마다 다르듯 단순히 ‘노력의 역치값’이 달라서, 개개인의 한계치가 서로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이건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서로에 대해 짐작하며 이해할 뿐,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완전히 알 수는 없는 영역일 것이다.
통증 역치가 사람마다 다르듯, 감정도 그렇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기준선.
그 역치의 차이는 누구도 쉽게 가늠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말 한마디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무너뜨릴 만큼의 자극이 되기도 하니까.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을 다했지만
어쩌면 누군가의 눈에는 여전히 부족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 말에 상처받지 않으려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나는 나만의 역치 위에서 조용히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반복된 상처에 무뎌질 수도 있고,
어떤 자극에는 도리어 더 민감해질 수도 있다.
익숙해진다는 건 때로는 방어력을 높여주지만,
한편으로는 더 큰 자극 없이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안팎의 자극 속에서, 마음의 역치값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변해간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는 더욱더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노력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노력도, 고통도, 상처도
그 어떤 것도 쉽게 객관화할 수 없는,
각자의 삶 안에서 쌓여온 너무도 고유한 크기들이니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다가갈 수는 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누군가에겐 긴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작지만 큰 힘이 되기도 하니까.
서로의 우주를 존중하며, 그 곁에 다정히 머무는 일.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