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착한 것은 올바름이 아니다
선과 악.
보통 선은 '좋은 것', 악은 '나쁜 것'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해왔다.
나쁜 사람보다 착한 사람으로 보이는 게 훨씬 좋은 포지션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이야기가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C가 소개해준 어른, D님의 이야기였다.
D님은 불교 공부를 깊이 해오신 분이다.
만날 때마다 세상의 이치, 본질, 마음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그 대화들은 늘 나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D님을 처음 만났던 날, 그분이 해주신 말씀이 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한 마디.
"미옥이는 정말 착해. 그런데, 착한 건 무조건 좋은 걸까?"
그분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세상은 음과 양이 동시에 존재하고, 두 가지는 서로 이어져 있으며, 양쪽 끝단은 결국 반대편을 향하고 있다는 것.
내가 착한 포지션을 취함으로서 누군가는 나쁜 포지션을 취해야하고,
너무 착하기만하면, 반대로 나쁨을 향해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조금 불편해진 관계가 있다고 해보자.
서로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한 채, 계속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한다.
이미 관계 속에는 미묘한 금이 생겨 있는데도, 둘 다 '착한 사람'의 자리를 고집한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균형이 무너진다.
선과 악이 음과 양처럼 공존하는 세계에서는, 한쪽이 ‘착한 사람’에 머무르려고 할수록 다른 쪽은 ‘나쁜 사람’의 역할을 맡게 된다.
결국 나는 ‘착한 사람인 나’를 지키는 대신,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게 되는 셈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상대가 나를 험담하거나 오해하게 되면,
나는 의도하지 않게 상대를 험담하게 만든 존재, 즉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
그런 관계를 만든 것도, 어쩌면 착한 사람이고자 했던 내 고집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착함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착하다’는 것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어딘가에 '착하지 않음'이 함께 있어야 한다.
선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것을 ‘좋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모르게 누군가를 '그렇지 않은 쪽'으로 밀어 넣게 된다.
그렇다면, 착하고 선하다는 것은 정말 무조건 좋은 걸까?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착함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관계를 만들고 있는지 우리 모두 각자의 포지션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