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사 세계여행] 남는건 이야기 그리고 사진들 - 한국 대전
장기여행을 준비하는건 장편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한 번의 여행을 축소된 삶의 판형을 만들 듯 여행하는 것이 나의 스타일인데, 이건 짐작이 안된다.
일시적 이벤트를 만나는 것이 아닌 생의 일정 시간들을 살아낸다는 것,
떠나는 순간까지도 이 것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출발하는 것이다.
처음 여행을 준비할 때 걱정거리가 무수히 많았다.
현실의 문제, 가기 전과 다녀온 후에 부딪히게 될 현실들.
지속의 문제, 세계여행을 할 만한 금전적, 체력적인 요건을 갖추었는가.
안전의 문제, 무엇보다 안전하게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을까.
허나 이런 것들은 내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였다.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는 소양에 대한 부분이었다. 나는 유독 소양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많은 소양들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점철된 것이 나의 시간이기도 했다.
허나 객관적으로 보면 욕구만 강하다. 아마 지적 허영 혹은 인정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어쨌든 책을 읽지는 않아도 항상 가지고는 다녔다. 수학여행 가는 가방에도 책이 두세권씩 들어 있었고 명절엔 더욱 심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얘는 특이한 애라면서 뭐라고 한마디씩 하셨다.
지금도 그 욕구는 강하다. 1년을 되돌아보면 완독하는 책은 손가락 발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지만 손을 대는 책은 꽤나 많은 편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돌이켜보니 그 간의 나의 삶은 정의조차 명확치 않은 '나만의 소양'을 수집하는 데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목적없는 소양은 어쩌면 더 이상 필요없는지도 모르겠다.'
서른 중반에 들어서서야 생각을 조금 진전시켜보게 된다. 이제까지의 시간은 아마 나의 '취향'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던 건 아닌가 싶다.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소양은 이것저것에 눈돌리게 만들 뿐 목적이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에 미치자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네가 좋아하는 건 뭔데?
편도 항공권으로만 계획을 세워간다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을 변수로 만드는 것이어서,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는 커녕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국의 버스에 오른 것처럼, 습관의 관성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놓게 만들 일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지 어떤 지향점을 향해 살아왔는지는 이 여행의 결론과 무엇보다 밀접하게 맞닿아 있을지 않을까.
이 번 여행의 큰 목적 중에 하나를 꼽자면 나의 취향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직 발견 못한 것도,
내가 밋밋하게 생각했던 것도,
내가 취향이라 여기던 것도,
모두 뒤집을 수 있다면 꽤나 값진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